445화. 부네(3)
“도깨비……!”
부네가 짓씹듯이 그를 불렀다.
그에 천지해는 히죽 웃었다. 마치, 그녀의 분노가 우습다는 듯이.
〖자, 청(淸)의 아이야. 여기, 네게 건네주면 되겠느냐?〗
대도깨비는 보란 듯이 웃는 낯을 유지하며 물었다.
청해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오냐.〗
천지해가 가볍게 들고 있던 것을 청해솔에게 넘겨줬다.
청해솔이 상자를 건네받고는 안도했다.
청정하.
청해솔에게 있어 어느새 소중한 사람이 된 그의 심장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야.’
청해솔이 그렇게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리사는요?”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게다. 보아하니, 저 위.〗
대도깨비가 고개를 들었다.
건물의 천장이 뻥 뚫린 채, 하늘을 내보이고 있었다.
쿠르릉―!
하늘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대도깨비가 비딱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내 계약자께서 아주 신명나게 싸우고 계신가 보군.〗
“괜찮나요?”
〖아무렴, 괜찮지. 내 계약자가 그리 약한 것도 아니고.〗
천지해가 뿌듯하게 웃었다.
그 말대로였다.
윤리사는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나마 이매망량의 길드장직을 맡았던 그녀다.
그녀라면 거주자들과의 싸움에서 아무 부상도 입지 않고 돌아올 터.
‘문제는’
부네였다.
청해솔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동생을 불렀다.
“청해진.”
“응?”
“가서 리사를 도와.”
“뭐?!”
청해진이 놀라 소리 질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 혼자 두고 가라고?! 저 탈쟁이 새끼가 누나 노리고 있는데?”
빽빽 지르는 목소리에 청해솔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시끄러.”
그러니까 입 다물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청해진은 누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누나, 정말 진심이야?!”
“응, 진심이야.”
그러고는 대도깨비를 향해 정중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웃었다.
〖애초에 내 계약자께서는 자네를 도와 이곳을 지키라고 했거든.〗
천장이 무너진 지금에 와서는 별 의미가 없어진 이야기나 다름 없었지만.
〖그래도, 뭐. 자네를 지켜야 하니 말이지.〗
대도깨비의 말에 청해솔이 미소를 그렸다.
“감사합니다.”
동시에 청해진을 향해 말했다.
“대도깨비님 말 들었지? 그러니까 어서 내 말 들어.”
“아, 진짜!”
청해진이 마뜩찮은 얼굴을 보였지마는.
“어서.”
가주의 명령에 별 수 없었다.
그렇게 청해진이 윤리사와 다른 청(淸)의 후손들을 돕기 위해 떠나고.
“자, 그럼.”
청해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네, 우리 한 번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 볼까?”
그녀가 부네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당신, 나랑 할 이야기가 있지?”
“제가요?”
부네가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청(淸)의 가주께서 왜 그리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왜냐고?”
청해솔이 오만하게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그야, 네가 도망도 치지 않고 얌전하게 있으니까.”
대도깨비, 천지해.
그에게 한때 초랭이였던 녀석의 심장을 빼앗겼음에도 말이다.
청해솔을 협박할 수단이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도깨비에 의해 초랭이의 심장을 빼앗긴 순간 도망쳐야 하지만.
‘그러고 있지 않지.’
그때문에 청해솔은 물었다.
부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쳐다봤다.
이윽고.
“하, 하하! 아하하!”
부네가 재미있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실성이라도 한 건가?’
청해솔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아, 정말이지.”
부네가 웃음을 멈췄다.
“청(淸)의 가주님께서는 암만 생각해도 얄미운 분이시라니까요.”
***
쿵! 쿠웅―!
굉음이 울릴 때마다, 하늘을 차지하고 있던 거주자들이 쓰러졌다.
나는 그들 시체를 밟으며 그림자를 휘둘렀다.
〖이런, 빌어먹을!〗
가까스로 내 공격을 피한 거주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개미 같은 놈이! 죽여 주마!〗
개미라니.
“너무하네.”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향해 놀리듯이 재잘거렸다.
“혹시 눈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뭐라?〗
“아니, 그게. 개미라니요?”
싱긋 웃으며 이어 말했다.
“어떻게 봐도, 저. 개미보다 훨씬 더 크잖아요.”
그러니까 말장난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라도 한 건지, 거주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비루한 인간 녀석이! 감히 신인 나를 놀리는 것이냐?!〗
분노 섞인 목소리와 함께 주위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태양신과 비슷한 녀석인가 보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거주자.
태양신인 그 역시 저 녀석과 같이 광명을 내뿜고는 했었다.
그보다 훨씬 약한 열기지만.
‘좋을대로 날뛰게 둘 수는 없지.’
그랬다가 결계가 부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었으니까.
나는 흘긋 아래를 내려다봤다.
결계에 막힌 시야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십.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 남해로 온 피난민이었다.
결계가 깨지면 저들 모두 죽게 될 거다.
거주자의 손과 발에 의해, 눈 앞의 망할 ‘신’이 말한대로 개미처럼 밟혀 목숨을 잃게 될 터.
‘그렇게 둘 수는 없어.’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그림자를 휘둘렀다.
눈 앞의 ‘신’이 암만 광명을 뿜어 내고 있다고 해도 그림자가 없는 곳은 없으니까.
그렇게 내가 휘두른 그림자가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신을 향해 쇄도할 때였다.
“청해솔, 진짜 싫어!”
라는 목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그 ‘신’의 턱을 걷어차 버렸다.
〖컥!〗
비명과 함께 눈이 부시도록 빛나던 ‘신’의 기세가 꺾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곧장 그림자를 움직여 그를 꿰뚫어 버렸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
여하튼.
〖이런, 빌어먹을……! 내가 인간들에게 당하다니……!〗
처치했다.
그와 함께 남해에 몰려온 거주자의 무리가 주춤거렸다.
아무래도 거주자들 중 강한 축에 속해 있던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코웃음이 절로 나오는 사실이었다.
‘강하다니.’
청해솔의 곁을 지키고 있을 우리 도깨비가 훨씬 더 강한데.
어쨌든 나는 거주자의 턱을 날린 남자를 향해 웃어 보였다.
“해진이 오빠!”
씩씩거리고 있던 청해진이 내 목소리를 듣고 활짝 웃었다.
“리사!”
청해진이 순식간에 내 앞에 다가와서는 물었다.
“다친 곳은?”
“보다시피 없지.”
그럼에도 청해진은 꼼꼼하게 나를 살폈다.
“왜 이래? 다친 곳 없다니까?”
“혹시 모르잖아! 무엇보다, 네가 조금에라도 다치면 내가 죽는다고!”
“오빠가 왜?”
“말을 말지.”
청해진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한대로, 나는 다친 곳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그런 말 하기에는 아직 일러.”
남해에 몰려온 거주자들이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그들의 기세가 암만 꺾였다고 해도 수적으로 열세인 우리였다.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합류해 주신다면 금방 끝낼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최설윤은 지금 백정을 상대 중이었으니.
시간이 걸리는 걸 보니, 그의 실력이 꽤 대단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래도 탈이니까.’
어중이떠중이같은 실력은 아닐 터.
“빨리 정리하고 도와주러 가자.”
“누구를?”
청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먼저 도와주러 갈 건데? 우리 누나? 아님, 최설윤 길드장님?”
누구를 도와주러 가도, 상황이 먼저 정리되어 있을 것 같다면서 청해진이 말을 덧붙였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청해솔도, 최설윤도.
그 두 사람은 강자(强者)였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이 튀어나온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으며 이 세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내가 잠시 얕봤네.’
스스로 반성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도와주지 말고 여기 빨리 정리하자.”
“응?”
“해진이 오빠가 그랬잖아.”
누구를 도와주러 가도, 상황은 진작 정리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자.”
내 말에 청해진이 밝게 웃었다.
“좋아, 리사!”
그러자마자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살랑이며 불기 시작했다.
청(淸)의 후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 청(淸) 하리다>가 그렇게 시전되려는 순간.
〖아이고, 도령!〗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으헉!”
누군가 청해진을 덮쳤다.
다행히 청해진은 추락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늘 위에 대(大)자로 뻗는 기이한 풍경을 보여 줬을 뿐이지.
하여튼 그를 덮친 사람은.
“이, 미친! 심장, 심장이 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
유랑단의 아홉탈 중 하나, 초랭이였던 청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