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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42)화 (442/500)

442화. 절망과 희망(5)

이매?

아니, 아니다. 우리를 붙잡은 건 이매가 아니었다.

“백정…….”

최설윤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 백정이요?! 그 새끼가 왜 여기 있어요?!”

청해진이 놀라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최설윤이 비딱하게 웃었다.

“그 이유는 저 탈쟁이 새끼가 알고 있겠지.”

“맞아요.”

남자가 최설윤의 말에 동의하고는 얼굴에 뒤집어 쓰고 있던 백정탈을 벗어 던졌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최설윤 길드장님과도 그리고 도깨비의 따님과도 한 번 꼭 싸워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아, 물론 청해진과도 한 번 검을 맞대고 싶었다면서 ‘백정’은 히죽거렸다.

“무려, 청(淸) 가주의 하나뿐인 동생이잖아요! 제 검에 찢겨 죽으면 그 얼굴이 볼만해질 텐데 재미있지 않겠어요?!”

당연히 그가 말한 얼굴은 청해솔일 게 분명할 터.

“저 개자식이…….”

청해진이 분노했다.

“참아, 오빠.”

그런 그를 말리고는 눈 앞의 ‘백정’을 노려봤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백정들과는 꽤 달랐다.

『각성, 그 후』의 ‘윤리오’도.

그리고 윤리오를 위협했던 이전 백정과도 꽤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더니! 과연 제게 이런 날이 찾아오는군요!”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백정들과 아주 똑같이 호승심이 강했다.

좋게 말하면, 승부욕.

백정이 히죽 웃고는 양 손에 검을 쥐었다.

이전 대의 백정과 똑같이 양손잡이 검술에 특화된 스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리사, 너는 청(淸)을 도와. 청해진 헌터도 집안일 도우러 가고.”

“최설윤 길드장님은요?”

“나?”

최설윤이 뒷목을 주무르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저 새끼 족쳐야지.”

그러면서 말했다.

“탈쟁이가 친히 내 앞에 나와 주셨는데 환대해야지.”

그 ‘탈쟁이’는 최설윤의 비아냥에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 또라이.’

역시 이전 대의 백정과는 다른 의미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녀석인 것 같았다.

뭐, 어쨌든.

“그럼, 부탁할게요.”

최설윤이 탈쟁이 새끼를 막는다고 했으니.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청(淸)을 돕는 것.

애초에 그들을 돕기 위해 왔으니 어서 몸을 움직여야했다.

“가자, 오빠.”

청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결계가 펼쳐진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어? 안 되는데!”

백정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마는.

“어디 가려고? 너는 나랑 놀아야지. 안 그래도 나도 너랑 한번 붙고 싶었거든.”

최설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나는 청해진과 함께 빠르게 그들에게서 멀어지며, 그와 반대로 가까워지는 결계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해진이 오빠.”

“응?”

“저 결계 부술 수 있어?”

“아니.”

청해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누나가 펼친 결계인 것 같은데, 무리야. 더욱이 함부로 부쉈다가는.”

분명 청해솔에게도 무리가 갈 거다.

그 뿐이랴?

저 위에 득실거리고 있는 ‘신’이란 작자들이 한꺼번에 남해를 공격하기 시작할 터.

‘어쩔 수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대도깨비님.”

〖그래, 아해야.〗

모습을 감추고 있던 그가 웃으며 나타났다.

“저 결계에 작게 틈을 만들어줄 수 있죠?”

〖너와 청(淸)의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만?〗

“네.”

그리고.

“결계의 시전자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요.”

〖흐음.〗

천지해가 고개를 기울였다.

꽤 난처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대도깨비, 천지해.

그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또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눈 앞에 펼쳐진 결계 역시 땅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

천지해라면 분명 쉽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물론이지!〗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

“허억……!”

청해솔이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결계에 금이 쩍쩍 갈 때마다 청해솔은 앓는 소리를 삼켰다.

그럴 때마다 온 몸의 내장이 비틀리듯 아릿하게 아파왔기 때문이다.

‘버티자.’

청해솔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전해 듣기로는 청정하가, 가람과 함께 남해를 침범하려는 더러운 작자들을 상대 중이라고 했다.

‘청정하뿐만이 아니야.’

다른 청(淸)의 일원들도 그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원.’

청해솔은 결계를 펼치기 직전, 남해 바깥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곳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원은 왔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거친 숨소리뿐.

청해솔이 치밀어 올라오는 핏물을 삼킨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원은?”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에 그녀 주위를 지키던 청(淸)의 후손들이 말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곧 올 겁니다.”

“어쩌면 이미 도착해, 청정하와 함께 오만방자한 신들을 상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만방자한 신들.

청해솔이 그 말에 픽 웃었다.

감히, 저들이 신들에게 ‘오만방자하다’고 할 수 있을까?

청해솔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사실은 밖으로 나가 싸우기 무서워 이 자리에 있는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참에, 가주님. 그냥 포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군가 개소리를 시전했다.

그래도 어떤 개소리를 시전하려는 건지 들어보고자, 청해솔이 물었다.

“포기라니?”

그 질문에 개소리를 시전한 청(淸)의 원로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가주님께서 힘들게 결계를 펼친 건, 남해까지 꾸역꾸역 내려온 인간들 때문이지 않습니까?”

“청로 원로께서도 인간입니다만.”

“저는 다르지요!”

원로가 버럭 소리 질렀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두 팔을 활짝 펼치고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도,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 위대한 청(淸)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핏줄들입니다!”

“그래서요?”

청해솔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되묻는 목소리에 원로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 청해솔이 말했다.

“도망가고 싶으면 혼자 도망가도록 하세요, 청로 원로. 추잡한 말 늘어놓지 말고.”

“추, 추잡하다니요! 말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가주님과 청(淸)의 모두를 위해 말한 것뿐인데!”

자신을 어떻게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느냐며 원로란 작자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시끄러.’

청해솔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지 않아도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원로란 작자가 개소리를 한껏 늘어놓고 있으니.

‘치워 버리고 싶네.’

아니, 그냥 치워 버리자.

‘한 번 물을 갈 때도 됐지.’

가주직에 오를 때, 쓸만한 인물만 남겨 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 제 모습을 보인다고 하던가?

딱 그 말대로였다.

쿠궁!

하늘이 울린 건 그때였다.

“헉!”

청해솔이 가슴을 부여잡고는 숨을 토해 냈다.

내뱉은 숨과 함께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주님!”

그녀 곁을 지키고 청(淸)의 모두가 경악하며 외쳤다.

“포기하십시오! 이곳을 포기하고 함께 바다로 일단 피신합시다!”

“맞습니다! 애초에 한낱 인간일 뿐인 피난민들을 우리가 왜 보호해 줘야하는 겁니까?!”

내질러대는 목소리에 청해솔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다들 시끄럽군요.”

옥색이 구르듯 고운 목소리가 꽥꽥 질러대고 있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청(淸)의 가주께서도 정말 고생이네요. 이런 멍청이들을 다스려야하는 입장이라니.”

“무, 무엄한! 누구냐!”

원로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아하니 청(淸)의 후손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이곳까지 들어온 것이냐! 밖에 누구 없느냐?! 여기, 외부인이!”

“시끄럽답니다.”

“컥!”

여자를 향해 소리 지르던 원로가 목을 부여잡았다.

“저는 청(淸대)의 가주님과 대화를 하러 온 거라서요. 다른 분들은 그 입 조용히 다물고 계셔 줬으면 하는군요.”

나긋나긋 이어지는 목소리에 청해솔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제야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연갈색의 머리칼을 늘어드린 채, 똑같은 색의 눈을 휘게 접고 있는 여자.

그 손에는 탈이 쥐어져 있었다.

“모두, 나가.”

여자의 손에 쥐어진 탈을 보자마자 청해솔이 명령했다.

“하지만. 가주님.”

“두 번 말 안 합니다.”

청해솔이 짜증스레 또 한 번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든, 아님. 밖에서 열심히 이곳 남해를 지키려고 들고있는 어린 녀석들을 돕든.”

청해솔의 푸른 눈이 원로들을 하나하나 훑고는 차갑게 내뱉었다.

“일단, 모두 이곳에서 꺼지십시오.”

그 말에 원로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켰다. 군말 않고 따르는 모습에 여자가 웃었다.

“저 뻔뻔한 청(淸)의 후손들이 꼼짝도 못하네요.”

“그러는 당신 앞의 나도 청(淸)의 후손인데.”

“뭐, 그렇겠지요.”

“그래서?”

청해솔이 입가에 닦은 피를 닦아 내고는 물었다.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 부네. 당신이 찾아온 이유는 뭐지?”

무엇보다.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온 거지?”

차갑게 묻는 목소리에 부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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