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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41)화 (441/500)

441화. 절망과 희망(4)

“이야, 징글징글하게도 몰려왔네.”

짙은 분홍생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대단하신 수장님께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쿵! 쿠웅―!

남해 전체에 쳐진 결계가 여러 차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 그들이 합심하여 남해를 무너뜨리고자 찾아온 거다.

“야, 너도 거주자잖아.”

〖아니오만…….〗

청정하의 옆에 서 있던 가람이 우물쭈물 말했다.

〖쇤네는 한낱 미물인지라.〗

미물은 무슨.

청정하가 코웃음을 쳤다.

가람이 미물이라면, 인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청정하는 물었다.

“저것들, 어떻게 안 돼?”

봉인당했기에 미지 영역으로 가지 못했다고 하나, 가람 역시 어떻게 보면 ‘신’이나 다름 없었다.

“같은 신이니까 말이라도 걸어 봐. 엄한 곳 그만 쑤시고 다른 곳으로 좀 가라고. 아니, 이왕이면 영영 이 땅에서 꺼지라고.”

청정하의 말에 가람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쇤네가 여러 차례 말을 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저 자식들은 네 말을 무시 중인 거고?”

가람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청정하가 신경질적인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남해는 한반도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였다.

청(淸)이 수호하는 곳.

그의 후손들이 모여 몇 번이고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을 막아 낸 곳이 바로 남해였다.

신들의 어떤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던 남해는, 지금.

쿵! 쿠궁!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청정하가 답답한 상황에 한숨을 작게 내쉴 때였다.

“여기 계셨습니까!”

청(淸) 가문의 일원 중 하나가 급히 그를 찾아왔다.

청정하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청해솔을 대신하여 그녀의 일을 처리할 때,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수장은?”

“결계를 유지 중이십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어?”

청정하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결계가 저렇게 공격 당하고 있는 중인데, 멀쩡할 리가 없잖아.”

분명 결계가 받는 충격을 그대로 흡수 중일 터.

“몸 상태는 어떤데?”

“그게,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예상했다는 듯, 청정하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야, 가람.”

청정하의 부름에 가람이 고개를 휙 들었다.

“나랑 저것들 좀 대충 처리하러 가 보자.”

“위험합니다!”

남자가 다급하게 말렸다.

“수장님께서 괜히 결계를 펼쳤겠습니까?!”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왔다.

그 때문에 청해솔은 결계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남해에는 청(淸)의 후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난민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청정하 님께서 혹 다치기라도 하면!”

“그럴 일 없으니까 신경꺼.”

청정하가 남자의 말을 끊고는 픽 웃었다.

“애초에 다치거나 죽을 운명이었음 진작 그랬을 거야.”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는 목소리에 남자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럼, 다녀온다.”

“청정하 님!”

남자가 급히 그를 불렀지만, 청정하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람도.

대외적으로 청해솔과 계약을 맺은 거주자라고 알려진 그 역시 사라진 뒤였다.

“아아…….”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이 이 땅에 강림한 후로도 남해의 하늘은 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지금 남해의 하늘은 붉게 적셔진 상태였다.

그 붉은 하늘에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이 떼로 몰려와 남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청(淸)이시여…….”

인간이었던 반려와 함께 인간으로 죽기를 택했던 용왕.

그를 부르며 남자는 기도했다.

“제발, 저희를 구해 주소서.”

***

우르르―!

산사태라도 일어난 듯,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세상에.”

나와 함께 남해로, 아니. 그 근처까지 이동한 최설윤이 하늘 위를 보며 탄식했다.

“저 녀석들 모두 거주자들이지?”

“네.”

담담하게 대꾸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덮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

‘신’으로 추앙받았던 그들이 오만하게 땅을 쳐다보며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한데.”

“해솔이 언니잖아요.”

청(淸)의 위대한 가주, 청해솔.

본디 그녀는 자신의 고향애 어떤 애정도 없었다.

애초에 『각성, 그 후』에서는 삶에 대한 의지도 없었던 그녀다.

그래, 그랬지마는.

‘이제는 아니야.’

청해솔은 청(淸)을 이끌고 가기로 결심했고.

“어, 저기.”

지난날, 청(淸)의 후손들이 범한 과오를 자신의 손으로 청산하고 또한 보상하기를 결심했다.

홀로 거주자들과 맞서고 있는 짙은 분홍빛 머리칼의 남자가 증거였다.

그는 웬 뱀을 타고 있었다. 뱀의 정체를,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가람.’

나참, 정말이지.

“저 오빠도 참 겁이 없다니까요.”

가람 역시 미지 영역의 거주자나 다름없는 몸.

먼 옛날, 미지 영역이 생기기 전에 봉인 당하지만 않았다면 그 역시 지금 인류의 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저렇게 타고 다니면서 거주자들과 맞서고 있다니.

〖대단한 녀석이구나.〗

천지해가 감탄하며 웃었다.

〖하긴, 청(淸)의 피를 타고난 녀석이니 대단하겠지.〗

“청(淸)의 피를 타고났어도 별 볼 일 없는 인간도 많아요.”

어릴 적, 남해에서 구경했던 가주 경합.

그때 나는 청(淸)의 후손이라 볼 수 없는 녀석들을 많이 만났었다.

그걸 생각해 보면 청해솔이 청(淸)의 가주가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보다.

“빨리 도와줘야겠네요.”

청정하.

그 혼자 거주자들을 당해 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점점 밀리네.”

최설윤이 머리를 벅벅 긁고는 귀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비행 스킬은 없는데.”

“그건 걱정 마요. 오기 전에 비행 스킬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좀 보내달라고 연락했거든요.”

“그래? 누구한테?”

“당연히 아빠한테 연락했죠.”

윤사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도 못했다.

“그래서 비행 스킬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인데?”

최설윤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상대가 쉽지 않아. 저 정도 수면, 막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고.”

“그래도 막아야만 해요.”

남해에 친구들이 있어서? 물론, 그 이유도 있었다.

단예와 단아, 그리고 단이.

한태극과 그의 세 손주는 내게 있어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니.

하지만 말이다.

“최설윤 길드장님과 제가 남해를 돕지 못하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최설윤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

그 때문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가 남해를 돕지 못하면 누가 돕겠니? 네 아버지는 귀수산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CW의 진달래 회장 대리님께서는 망할 신들로 인해 망가진 세상에서 고군분투 중이니까요.”

인류 문명의 이기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가죠. 마침, 아빠가 사람도 보내 준 것 같으니.”

말하기 무섭게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우왓! 화홍이 형! 넘어질 뻔 했잖아요!”

“나는 잘못 없어. 해진이, 네가 자꾸 움직여서 그런 거지! 그러게 누가 이동 스킬 사용하는데 그렇게 움직이래?”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나는 그럼 이만 간다! 아가씨께 안부 좀 전해 줘!”

그 아가씨, 바로 여기 있건만 류화홍은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나참…….”

청해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고는 나를 쳐다봤다.

“이해해 줘, 리사. 화홍이 형이 지금 좀 많이 바쁘거든.”

“그래 보여. 여하튼 잘 왔어.”

“당연히 와야지.”

청해진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기억이라고는 별로 없지만, 어쨌든 고향이잖아. 누나가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더욱이, 청해진 역시 청(淸)의 후손인 몸.

그가 하늘을 보고 탄식하듯 숨을 내쉬고는 이내 최설윤을 향해 꾸벅 고개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최설윤 길드장님. 지난, 태양신 처치 이후 처음이죠?”

“그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최설윤 길드장님께서 그때 활약해 주신 덕분이죠.”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소리를 뒤로하며 작게 손뼉을 쳤다.

“자, 다들 인사는 이쯤하고.”

쿵! 쿠궁!

남해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결계가 금방에라도 깨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저 충격 모두 결계를 유지 중인 청해솔이 모두 감내하고 있을 터.

‘얼마 못 버틸 거야.’

결계에 금이 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서 돕죠. 저 위에 있는 신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청해진이 가지고 있는, 스킬인 <[특수 스킬] : 청(淸)하리다>로 청정하와 합류하려는데.

“죄송하지만 그건 곤란해요.”

낯선 목소리가 우리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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