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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39)화 (439/500)

439화. 절망과 희망(2)

“삼키다니요?”

“음?”

윤사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잘못되는 거 아니죠?”

“시준이가 말이냐?”

“아니요! 할머니요!”

윤사희가 내 말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당연하죠!”

그 말에 윤사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할머니가? 사람 속 타들어 가는 줄 모르고!

윤리오는 놀란 눈치였다.

아마, 윤사희가 우리의 증조 할머니라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시간따위 없었다.

“할머니를 희생해서 시준이 아저씨를 살리는 건 안 돼요.”

그렇다고 백시준이 죽게 둘 수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요.”

나는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이 녀석아.”

윤사희가 키득거리며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오해요?”

“그래. 그보다 목소리 좀 낮추거라. 온전히 살아 있는 몸도 아닌데, 그리 말하면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알 바에요?”

“네 아비는 알 바겠지.”

그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윤사희가 그런 나를 보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사해 녀석이 딸 하나는 참 잘 뒀구나. 아들 녀석도 잘 뒀고.”

어쨌든.

“삼키는 건, 이것.”

윤사희의 주위로 그림자가 솟구쳐올랐다.

“이 그림자가 삼킬 것이다.”

마치, 이지라도 가진 것처럼 윤사희의 그림자가 춤을 추듯 움직였다.

“내가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다를 바 없는 몸이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떤 신이었을 것 같으냐?”

나긋하게 묻는 목소리에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대답했다.

“장난의 신?”

“예끼, 이 녀석아.”

윤사희가 내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먹이고는 말했다.

“나는 무엇이든, 어떤 존재든 그 흔적을 없앨 수 있었다.”

“네?”

“소멸의 신이었다는 거다. 어둠의 신이라고 해도 좋고.”

윤사희가 백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그녀의 그림자 역시 그를 향해 움직였다.

“이 세계에 대한 것은 아마 그 녀석에게 다 들은 것 같고.”

그 녀석이라면, 장천의를 말하는 것일 터.

“내가 사람들의 염원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건 알고 있겠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혼란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런 후, 자신들을 위한 세상이 새로 탄생하기를 바랐지.”

그렇게 하여 윤사희.

“바로 내가 태어나게 되었지.”

“그럼, 유랑단의 수장은…….”

“창조.”

윤사희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 녀석이 아마 이번 일을 일으킨 거겠지. 시준이 녀석에게 이 상처를 입힌 녀석과 함께. 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대체 무슨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지는 모른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 산에 묶여 있는 몸. 더욱이 이렇게 숲을 벗어나게 된 것도 귀수산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귀수산 바깥의 일에 자신은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어찌됐든, 자.”

윤사희가 팔짱을 낀 채로, 백시준 옆에 앉았다.

백시준은 윤사희의 그림자에 모두 삼켜진 상태였다.

“아, 아빠!”

도윤이가 놀라 물었다.

“아빠, 괜찮은 거죠?”

“그럼, 괜찮고 말고. 그러니 더는 울지 말거라. 눈물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게 좋다.”

윤사희의 말에 도윤이가 두 눈을 세게 닦았다.

도윤이는 피로 범벅인 된 윤사희가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슬금슬금 윤사희한테서 물러나고 있는데 말이지.

“그럼, 아해야.”

윤사희가 백시준이 치료되는 모습을 확인하고 말했다.

“가 보거라.”

“네?”

멍하니 묻자, 윤사희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러기 무섭게 온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광혜원의 치료와는 꽤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놀라 내 몸을 살피는 나를 향해 윤사희가 말했다.

“내 말했지 않느냐? 귀수산 밖의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없다고.”

그러니.

“네가 움직이거라. 이제 몸도 꽤 개운해졌을 테니. 사해, 그 녀석은 지금 바쁘거든.”

윤사희를 대신해 귀수산으로 온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다는 말일 터.

그때였다.

“천지해.”

윤사희가 나지막하게 대도깨비의 이름을 불렀다.

〖이것, 참.〗

광혜원의 곁에 있던 그가 순식간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 하게 됐군.〗

“어쩔 수 없지 않소? 우리 귀여운 손주 녀석을 잘 부탁하오.”

〖당연히 그래야지.〗

천지해가 윤사희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는 내게 손을 건넸다.

〖그럼, 가 보도록 할까?〗

천지해가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잡으려는 찰나.

“리사야.”

윤리오와 도윤이가 동시에 나를 불렀다.

“어, 음, 형부터 하세요.”

“그래.”

윤리오가 흔쾌히 도윤이의 호의를 받아들이고는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마. 또 다쳐서 돌아오면 그때는.”

“감금이라도 시켜 줘.”

“응?”

“이왕이면 황제 감금.”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 윤리오를 향해 배시시 웃어줬다.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걱정말고 오빠는 오빠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여기 있고 싶지 않잖아?”

내 말에 윤리오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도윤이, 너도.”

“응?”

“시준이 아저씨는 살거야. 무조건 살거야. 그러니까.”

“울지 않을게.”

도윤이가 내 말을 끊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빠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든, 원망도 하지 않을게.”

도윤이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사실, 알고 있었던 거다.

‘나, 세상이 형한테 여러 가지 배운 게 있어서 알아. 저거, 세상이 형이 낸 상처야. 분명해.’

‘도윤아.’

‘하지만 아니지? 세상이 형이 우리 아빠를 죽이려 할 리가 없잖아.’

‘……응.’

저세상이 자신의 아버지 해치려고 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도윤이는 말한 거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아니, 안심했다.

내가 거짓말을 한 걸 알았음에도. 그럼에도 안심을 한 거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윤이는 말했다.

“그러니까, 리사야.”

천지해의 손을 잡으려던, 내 손을. 자신이 꼭 붙잡고서는.

“돌아와 줘.”

결연한 의지를 가진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이왕이면 세상이 형도 함께. 이제 곧, 벚꽃이 필 시기잖아?”

아, 그랬다.

겨울이 끝나가고 새로 봄이 다가온 시간이었다.

도윤이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럴게.”

내 대답에 도윤이 역시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마주보며 웃고, 손을 놓았다.

윤리오의 시선이 너무 따끔한 탓도 있었고.

“소꿉놀이 끝났으면 어서 가거라.”

윤사희의 재촉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귀수산 바깥의 상황이 썩 좋지 않은 모양이다.

부상자들이나 피난민들이 계속 이곳 이매망량 내부의 대피소로 오고 있는 것도 그랬고.

그러니까.

“네, 할머니.”

나는 천지해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긴…….”

익숙한 곳이구나.

“네, 그런데 알아보지 못하게 엄청 변했네요.”

도착한 곳은, 바로 CW 소유의 쇼핑 센터였다.

어릴 적, 단아와 단예의 생일 파티를 했던 곳. 그리고 그대로 선비에 의해 사령의 숲으로 떨어진 곳.

‘그러고보니 운조 언니는 괜찮을까? 선비, 그 자식이랑 함께 있으니 이미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을지도.’

물론, 이운조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완전히 무너졌네요.”

내 여러 추억이 담겨 있던 건물은 불에 활활 타오른 후, 뼈대만 남은 채였다.

“왜 이곳으로 이동한 거죠?”

〖나도 모른다. 네게 있어 가장 강렬했던 기억의 장소를 쫓아 온 것뿐인지라.〗

천지해가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여하튼 얄미운 도깨비였다.

그래도 덕분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니, 현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귀수산의 바깥,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놀았던 나의 현실은 반쯤 무너졌다는 것을.

저세상과 이매.

그 두 사람에 의해 잠시 쓰러졌던 동안에 세상이 이렇게나 무너지고 말다니.

〖아하하하! 벌레들이다! 밟아 죽이자! 저 벌레들을 밟아 죽이자!〗

멀지 않은 곳에서 어느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 것이냐?〗

“당연하죠.”

그림자를 이용해 창을 만들어내 쥔 후,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도윤이의 부탁을 들어주기 이전에 세상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저 망할 신을 죽여야 하니까요.”

내 말에 천지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닮았구나, 닮았어. 너는 사희와 가장 닮은 녀석일 거다.〗

칭찬인지 모를 소리였지만.

타앗!

나는 달렸다.

벚꽃이 필 봄, 그 전에 세상을 모두 원래대로 되돌리고 저세상 역시 찾아오기 위해서.

***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쉽게 나의 ‘적’을 생각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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