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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38)화 (438/500)

438화. 절망과 희망(1)

『각성, 그 후』에서 백시준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즉,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는 말.

그가 가지고 있는 <[특수 스킬] : Delet>은 『각성, 그 후』에서 원래 저세상의 것이었다.

‘정확히는 이매.’

그 망할 탈쟁이의 것이었다가, 저세상이 그를 죽이면서 강탈한 거였다.

어쩌다가 백시준의 스킬을 이매가 가져갔는지는 모른다.

그저 짐작할 수 있는 건, 이매. 그 빌어먹을 탈쟁이가 백시준을 죽인 후, <[특수 스킬] : Delet>을 빼앗았다는 것.

나는 물끄러미 백시준을 쳐다봤다.

그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상태는 그렇지 못했다.

창백하게 질린 낯은 금방에라도 죽을 것 같았다. 비가 오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고.

“리사, 우리 아빠 살 수 있겠지?”

“응.”

눈물이 가득 맺힌 도윤이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내가 꼭 살릴게.”

나는 광혜원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단언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낮게 목소리를 내었다.

“대도깨비 님.”

〖그래, 아해야.〗

모습을 감추고 있던 그가 웃는 낯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주위에 있던 환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놀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시준이 아저씨를 살릴 수 있죠?”

〖흐음.〗

대도깨비가 백시준을 한 번 살펴 본 후, 난처하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려울 것 같구나. 그 녀석이 대체 무슨 능력을 사용한 건지, 이대로면 곧.〗

“죽는다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얼른 대도깨비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친구랑 약속했어요. 꼭 살릴거라고요.”

〖아해야,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나는 약속했다.

백시준, 그를 꼭 살리겠다고.

이미 내뱉은 말.

도로 거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저세상이 바라는 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도깨비님이니까요.”

천지해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 곧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참, 정말이지. 너한테는 도무지 당해 내지 못하겠구나.〗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러거라, 뭐. 아예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니.〗

그러면서 대도깨비는 윤리오를 향해 말했다.

〖네 아비 좀 데리고 오거라.〗

“네?”

〖아니, 아니다. 네 아비가 아니라, 그래.〗

천지해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의외의 이름을 내뱉었다.

〖사희.〗

그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 녀석을 데리고 오거라. 이곳이 노망난 녀석들에게 공격받고 있으니 그 녀석도 지금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겠지.〗

“사희라니…….”

윤리오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대도깨비님. 그런 사람은 이매망량에.”

“있어, 오빠.”

그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은 대도깨비님의 말을 들어줘. 부탁할게.”

윤리오가 당황한 낯을 보이고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사.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는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그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깐만, 리오! 어디 가는 거야?! 길드장님이 너는 여기에 있으라고 한 거 그새 잊었어?!”

“안 잊었어요!”

윤리오가 광혜원의 말에 빼액 소리 지르고는 곧장 밖으로 튀어 나갔다.

광혜원이 멈추라며 그를 잡았지만, 윤리오는 이미 나간 뒤였다.

“리사! 네 오빠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니?”

“리사는 별 말 안 했어요.”

광혜원에게 능청맞게 대꾸해 주고는 방긋 웃어 줬다.

그런 나를 보며 광혜원이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환자를 보러 갔다.

〖크게 될 녀석이구나.〗

“저요?”

〖아니. 네 오라비.〗

난데없이 윤리오를 칭찬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빠는 이미 다 컸는데요?”

〖그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맹랑한 것아.〗

천지해가 내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먹이고는 말했다.

〖그보다, 사희가 오기 전까지 이 녀석의 숨을 붙잡고 있어야겠구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백시준의 상태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도윤이는 그 옆에서 아주 오열 중이었고.

〖아해야, 네 아비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 진정하고 좀 비켜보거라.〗

“그, 그치만.”

“도윤아, 괜찮아.”

도윤이의 어깨를 감싸며 소중한 친구를 달랬다.

“내가 시준이 아저씨 꼭 살릴 거라고 했잖아.”

도윤이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되는지, 아님.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까 두려운지 벌벌 몸을 떨었다.

아니, 아니었다.

“리사.”

“응.”

“우리 아빠 저렇게 만든 거, 혹시 세상이 형이야?”

도윤이가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뭐……?”

멍하니 묻는 내 목소리에 도윤이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말했다.

“나, 세상이 형한테 여러 가지 배운 게 있어서 알아. 저거, 세상이 형이 낸 상처야. 분명해.”

“도윤아.”

“하지만 아니지?”

도윤이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곧, 도윤이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내게 물었다.

“세상이 형이 우리 아빠를 죽이려 할 리가 없잖아.”

“……응.”

다행히도 내뱉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지 않았다.

나는 도윤이와 똑같이 억지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세상이 그런 거 아니야.”

“아.”

도윤이가 탄식하듯 말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러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말없이 꼭 끌어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아해야.〗

대도깨비가 내게만 들리도록 말을 걸어 왔다.

〖거짓말은 나쁘단다.〗

나도 안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것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대도깨비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때문에 그를 보며 다시 내 생각을 전했다.

‘저세상을 적으로 생각하는 건, 저 하나로 족하니까요.’

〖나참, 정말이지.〗

대도깨비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미소를 그렸다.

〖너는 사희를 많이 닮았다.〗

‘칭찬이죠?’

〖아무렴, 칭찬이지.〗

대도깨비가 짓궂게 웃는 순간이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빛이 터져나왔다.

“뭐, 뭐에요?”

도윤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 아빠한테 혹시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니란다.〗

대도깨비가 부드럽게 놀란 아이를 진정시켰다.

〖보거라. 호흡이 꽤 진정됐지 않았느냐?〗

“그렇네요!”

어느새 다가온 광혜원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백시준 씨의 상태가 암만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도대체 무슨 신기한 방법을 쓴 거예요?”

광혜원의 칭찬에 천지해가 나잇값 못하고 으쓱거렸다.

〖방법을 쓸 것도 없이, 나는 대도깨비이니.〗

“대도깨비고 자시고 힘이 남아돌면 저 좀 도와주세요.”

〖음?〗

“환자들 많은 거 안 보여요?”

광혜원의 말대로, 곳곳에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저 혼자 무리니까 좀 도와주세요! 리사 아가씨!”

“네?”

“빌려가도 되죠?!”

천지해가 물건은 아니지만, 뭐.

“네, 상관 없어요.”

〖뭐라?! 아해야!〗

“사람들 좀 도와주고 와 주세요.”

〖아니, 그 녀석은 어쩌고!〗

대도깨비가 백시준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 질렀다.

“위대한 대도깨비님께서 치료를 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오실 거잖아요. 그럼, 바로 낫겠죠.”

천지해가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마는.

“불쌍한 인간들 좀 도와주세요.”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그가 광혜원을 돕게끔 했다.

때마침 기다리던 사람도 도착해서 말이지.

“리사! 모시고 왔어!”

윤리오가 그새 검댕을 가득 묻힌 얼굴로 돌아왔다. 그 뒤로 피로 흠뻑 적셔진 윤사희가 보였다.

“할머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묻지는 말거라.”

윤사희가 씨익 웃고는 말했다.

“그보다 나를 부른 이유는? 우리 도깨비께서는 왜 저러고 있으시고?”

윤사희가 천지해를 보며 물었다.

대도깨비는 광혜원을 도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오랜만에 인사 좀 제대로 나누려 했더니.”

“인사는 나중에 하세요.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남는 게 시간이라.”

윤사희가 픽 웃었다.

“그래, 그렇지.”

그러고는 물었다.

“내가 뭘 해줬으면 하느냐?”

“여기, 이 아저씨 좀 살려주세요.”

“흠?”

윤사희가 백시준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준이구나.”

“아세요?”

“당연히 알지.”

윤사희의 손이 백시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사해, 그 녀석의 몇 없는 친구였으니 내 잘 알다마다. 네 옆에 있는 녀석은.”

“도윤이라고 해요. 시준이 아저씨 아들이요. 하나뿐인 아들이에요.”

“그래…….”

윤사희가 감상에 젖은 눈으로 도윤이를 한 번 보고는 씨익 웃었다.

“울지 말거라, 이 녀석아. 내가 사해 그 녀석의 몇 없는 친구를 이대로 죽게 둘 것 같으냐?”

그러고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상처를 얻고 돌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삼켜 버리도록 하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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