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좌절과 절망(5)
잡으라고……?
저세상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작은 손을 봤다.
저보다 마디 두 개 정도는 차이가 날 정도로 작은 손.
그 여린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굳은살이 곳곳에 박혀 있는 건 물론, 자잘한 상처까지.
‘원래 이런 손이 아니었는데.’
그 어떤 손보다 부드러웠는데.
저세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윤리사의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
자신이 이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왜일까?
저세상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윤리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손이었다.
그렇지만.
‘더 예쁘네.’
자신의 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윤리사의 손은 무척 아름다웠다.
‘정말로 예뻐.’
눈이 부실 정도로.
그만큼 정말 예뻤다.
쉽게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저세상은 윤리사의 손을 잡는 대신.
짜악!
그녀의 손을 쳐 냈다.
윤리사의 보랏빛 두 눈이 한없이 흔들렸다.
그 동요를 보며 저세상이 말했다.
“윤리사, 네가 말했지?”
자신의 적이 되고 싶다면, 똑바로 하라고 했던가?
촤르륵―!
저세상의 주위로 그의 무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네 말대로 똑바로 할게.”
저세상이 그렇게 말하고는 이매를 쳐다봤다.
제게 닿는 시선에 이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 군도, 참.”
이매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윤리사의 앞에 다다른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잖아요?”
윤리사가 짧게 혀를 차고는 창을 들었다.
그 순간, 윤리사의 옆으로 저세상이 파고들었다.
“배신 같은 거 안 해.”
윤리사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순간, 닿은 시선에 저세상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는 쇠사슬의 끝을 움직였다.
푸욱!
윤리사의 옆구리에 저세상의 무기가 파고들었다.
“윽……!”
윤리사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를 향해 이매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저세상이 두 손에 힘을 줬다.
그의 행위를 막지 않기 위해, 손에 자국이 나도록 무기를 쥐었다.
여기에서 이매를 막으면 모든 일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 그러니까.
‘참아.’
참아야 해.
저세상이 일그러진 얼굴로 이매의 검에 베어지는 윤리사의 몸을 쳐다봤다.
촤악!
이매의 검에 윤리사가 기어코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다.
“끝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매가 암만 콧노래를 부르며 윤리사를 죽이려고 해도.
〖그건, 좀 곤란하군.〗
윤리사는 죽지 않을 거다.
쓰러져 있던 윤리사의 몸이 이매와 저세상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이매가 놓친 사냥감에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의 위에서 대도깨비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계약자에게 손을 대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하군.〗
“도깨비…….”
〖내가 도깨비는 맞지만, 제대로 불러 줬으면 하는군.〗
천지해가 유쾌하게 웃었다.
〖나는 도깨비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대도깨비라네.〗
그 말에 이매가 비딱하게 웃었다.
“대도깨비든, 윤사해가 부리는 다른 도깨비든 상관없어요.”
그는 눈 앞에서 놓친 사냥감만 다시 찾아오면 됐으니.
“대도깨비라고 했나요? 당신도 죽으면 이제 곧바로 소멸인 것을 알고 있겠죠?”
〖그래서?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못 할 것도 없죠.”
이매가 싱긋 웃고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대도깨비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대도깨비가 윤리사를 품에 안은 채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그는 이매의 뒤로 눈 깜작할 사이에 이동해서는 말했다.
〖아서라, 아해야. 네가 왜 탈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괜한 일에 힘을 쓰는 건 좋지 않단다.〗
이매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러나 대도깨비는 다시 몸을 옮긴 뒤였다.
바로, 저세상의 뒤로 말이다.
〖아해야.〗
나지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저세상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그를 향해 대도깨비가 말했다.
〖불쌍하구나.〗
가엾게 여기는 그 말에 저세상이 이를 드러냈다.
“닥쳐.”
날선 목소리와 함께 저세상이 분노어린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 없어.”
〖그래, 그렇지.〗
대도깨비가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아해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 계약자가 이리 슬퍼하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장천의. 그놈을 분명 막았을 거다.〗
저세상이 표정을 굳혔다.
〖뭐, 그렇게 됐다면 너는 이 녀석을 만나지 못했겠지.〗
대도깨비가 가리킨 사람은, 바로 윤리사였다.
〖물론, 나 역시 이 녀석을 만나지 못했겠지.〗
저세상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대도깨비의 말에 틀린 구석 따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장천의에게 버려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면, 이 세상은 만들어질 일이 없었을 거다.
당연히, 그렇게 됐다면…….
저세상이 두 손을 꽉 주먹 쥐고는 대도깨비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윤리사 데리고 꺼지기나 하시죠.”
정중하게 변한 말투에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웃고는 말했다.
〖그래, 내 그러마.〗
그 말과 함께 대도깨비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저세상은 그에 안도했다.
대도깨비는 분명, 윤리사를 데리고 귀수산으로 이동했을 테니까.
그곳에는 이매망량이 있다. 그리고 광혜원이 있다.
뛰어난 힐러인 그녀라면 윤리사를 적절하게 조치할 터. 걱정할 필요 없을 거다.
그래, 그런데.
“……빌어먹을.”
저세상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뭐야, 세상 군. 울어요?”
“닥쳐, 이매.”
저세상이 거칠게 눈물을 닦아 냈다.
“윤리사를 좇는 건 포기해.”
“그래야죠.”
이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큰일이네요. 백시준이라 했던가요? 그가 가진 특수 스킬은 꼭 뺏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그건 걱정하지 마.”
저세상이 음울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은, 결국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테니.”
***
“리사! 윤리사!”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힘겹게 두 눈을 떴다.
곧바로 보인 얼굴은.
“……리오 오빠?”
눈물범벅인 윤리오였다.
“리사!”
운리오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는 물었다.
“나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여기는?”
“이매망량이야.”
윤리오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대도깨비님께서 부상을 입은 너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어.”
아, 그래.
이매의 검에 당했지.
그리고.
‘윤리사, 네가 말했지?’
저세상.
그에게도 당했다.
‘네 말대로 똑바로 할게.’
내 적이 되고 싶은 거라면, 이매의 편에 서서 나를 죽여라.
저세상은 그 말을 착실히 따랐다.
내가 내민 손을 잡는 대신, 나의 적이 되기로 한 거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 무섭게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리사?”
윤리오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불렀다.
“왜 그래? 아파? 아파서 그래?”
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혜원이 누나!”
그 목소리에 뒤늦게 내가 있는 곳이 무척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신’에게 당한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급히 윤리오를 잡았다.
“오빠, 나 괜찮아.”
“하지만!”
“정말이야.”
눈물을 닦아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나를 윤리오가 다시 눕혔다.
“아직 일어나면 안 돼!”
광혜원은 기본적인 치료만 해 주고 갔다며,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윤리오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기세라 얌전히 누워 있기로 했다.
대신 물었다.
“시준이 아저씨는? 대도깨비님이 시준이 아저씨도 데리고 왔을 텐데.”
“아, 시준이 삼촌은…….”
윤리오가 입을 열 때.
“아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이의 목소리였다.
“아빠, 정신 차리세요!”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우는 그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리사!”
윤리오가 나를 말렸지만.
“오빠, 도윤이 내 친구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진이 오빠가 저러고 있어 봐. 리오 오빠라면 얌전히 누워서 쉴 수 있겠어?”
윤리오가 입을 다물었다.
“부축해 줄게.”
광혜원은 정말 기본적인 조치만 해 준 듯,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 고통을 이를 악물며 참아 냈다.
그렇게 백시준이 누워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백시준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동시에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당장,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처럼 보였다.
상처라고는, 저세상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는 작은 상처밖에 없는 데도 그랬다.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백시준의 특수 스킬, <[특수 스킬] : Delet>’
그 스킬은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의 것으로 나온 스킬이었다.
“도윤아.”
“리사……?”
백시준의 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도윤이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리사! 아빠가, 우리 아빠가!”
“괜찮으실 거야.”
친구를 달래며 미소를 그려줬다.
“걱정 마, 도윤아.”
저세상이 왜 백시준을 노린 건지 알겠다.
그러니.
‘막아야지.’
내 ‘적’이 된, 그를.
그에게 있어 ‘주인공’인 내가 막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백시준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