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좌절과 절망(3)
윤사희.
윤사해는 그녀가 귀수산에 몰려온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을 말이다.
항상 다퉜던 부모님이 끝내 파국을 맞이했을 때, 윤사해는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됐다.
아니,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다.
‘네가 사해니?’
AMO의 본부장인 강산에.
그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는 홀로 죽어 갔을 거다.
윤사해는 강산에가 건넨 손을 잡고 돼지우리나 다름없던 집을 떠났다. 그게 살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귀수산이었다.
***
“어르신, 손주 분입니다.”
귀수산에서 만난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가족이었다.
윤사희.
윤사해는 그녀를 올려다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강산에의 뒤로 숨고 말았다.
저와 똑같은 눈이 한없이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주라고?”
“네, 하연이의 아들입니다.”
윤하연.
제 어머니의 이름에 윤사해는 다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보니 윤사희는 제 어머니와 꽤 닮은 얼굴이었다.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그야, 어머니는 새까만 머리칼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두 눈이야 저와 똑같은 보라색이었지만 여하튼 달랐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어려운 이야기가 오갔다.
“하연이, 그 녀석은 어쩌고?”
“죽었습니다. 남편을 죽이고 수감 되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습니다.”
윤사해는 발 밑을 쳐다봤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어머니의 친구나.
“그래, 그렇군.”
그 어머니의 죽음을 또한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나.
그들 모두 윤사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아이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성격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손길은 모두 내쳤고, 언제나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아버지에게도 그랬다.
결국에는 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 또한 죽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거겠지.’
자신의 딸이 죽었는데도.
어른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하연이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윤사희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귀수산으로 옮겨 주려무나.”
“네, 어르신.”
강산에는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돌렸다.
윤사해가 저도 모르게 그 옷을 붙잡았으나.
“사해야.”
강산에가 다정하게 말했다.
“앞으로 저 어르신께서 너를 돌봐 주실 거란다. 네 외할머니 되시는 분이지.”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거라.”
윤사희가 곰방대를 꺼내들며 말을 고쳐 줬다.
“그래, 사해라고 했던가?”
그녀의 짙은 보라색 눈이 아이를 담았다.
“닮았구나.”
읊조리듯 나지막한 목소리에 윤사해는 말했다.
“안 닮았어요.”
“응?”
“저, 안 닮았다고요.”
강산에의 옷을 놓은 아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무도 안 닮았어요.”
그 말에 강산에는 안타깝다는 듯이 아이를 쳐다봤다.
윤사희는.
“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픽 웃었다.
그러고는 윤사해에게 성큼 다가왔다.
‘맞으려나?’
윤사해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윤사희는 아이를 때리거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읏차.”
겁에 질린 아이를 다정하게 안아 번쩍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아이가 놀라 눈을 떴다. 윤사희가 그런 손주를 보며 웃었다.
“네 어머니도 아버지도 닮지 않은 거라면 나를 닮은 거라고 하자꾸나. 산에, 네가 봐도 그렇지 않느냐?”
“네, 어르신.”
강산에가 미소를 그렸다.
“어르신을 많이 닮았지요.”
“그래.”
윤사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들었지? 너는 나를 닮은 것이다.”
“그치만…….”
“어른 말에 토다는 것 아니다.”
윤사희의 말에 윤사해가 입을 앙 다물었다. 윤사희가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윤사해에게 가족이 생겼다.
이후, 청(淸)의 저주를 받아 저와 같은 처지나 다름없었던 ‘에일린 리’와 같이 살게 됐고.
그 이후…….
윤사희가 죽었다.
하나뿐인 가족의 유언은 정말이지 간단했다.
‘행복하거라.’
윤사해에게 있어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내가 계속 지켜볼 거다, 이 녀석아. 그러니 행복하거라.’
윤사해는 망할 할머니가 속 편한 소리를 잘도 한다 싶었다.
이매망량에 대한 이야기는 왜 일절 하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말했다.
‘제게 있어서 행복은, 할머니께서 이끄셨다는 이매망량을 다시 세우는 겁니다.’
그 말에 윤사희는 웃었다.
‘바보같은 놈.’
저를 욕하는 말을 끝으로 윤사희는 숨을 거뒀다.
자신에게 있어 하나뿐인 가족의 죽음이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그야, 윤사해는 알았기 때문이다.
윤사희.
그녀가 귀수산에 제 일부를 남겨두고 갔음을.
그러하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될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엇보다.
‘윤사해, 괜찮냐? 우는 거 아니지?’
‘사해는 울지 않아. 찌르면 피도 안 나올만큼 매정한 녀석이니까.’
‘우리 사해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왜 매정하다고 하는 거야?’
‘린, 미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친구들도 있었다.
윤사희의 죽음 이후, 윤사해는 다시 이매망량을 일으키고자 고군분투했다.
빌어먹을 결혼도 하고 귀수산을 올라 망할 할머니도 다시 만났다.
‘나참, 행복하라고 말했거늘.’
‘제게 있어서 행복은 이매망량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놈.’
자신을 욕하는 목소리와 함께 지금 생각해도 끔직한 시험이 시작됐다.
여하튼 그렇게 윤사해는 윤사희의 시험을 통과했고, 이매망량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됐다.
때를 맞춰 아이들도 태어났다.
윤리오와 윤리타.
소중한 두 아들이었다.
자신의 손가락을 꼭 잡는 아이들을 보며 윤사해는 다짐했다.
윤사희가 말한대로, 행복해지기로.
***
“사해, 이 녀석아.”
나지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신 안 차리느냐?”
그림자에 뚫린 ‘신’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을 해치려다가 윤사희에게 가로막힌 듯 했다.
윤사해가 머리를 쓸어올린 후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그 말과 함께 윤사해를 보호했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윤사희가 곰방대를 물며 말했다.
“나머지는 네가 처리하거라. 나는 저 위에서 기분 나쁘게 내려보는 녀석들을 처리해야겠으니.”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무슨.”
윤사희가 픽 웃었다.
“자식들 좀 보더니 성질머리가 꽤 예뻐졌구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고 어서 움직이시죠.”
“아무렴, 그래야지.”
윤사희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곧, 하늘 위에서 끔직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윤사희의 학살에 ‘신’들이 울부짖기 시작한 거다.
윤사해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미지 영역에서 튀어나온 거주자들.
한때, ‘신’이라 불리었던 자들이 겁에 질린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윤사해는 그들을 향해 담담히 말을 내뱉었다.
“지금 돌아가면 그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으나.”
그러지 않으면 죽을 거다.
윤사해가 삼킨 말을, ‘신’들은 모두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들은 도망치기로 했다.
이곳에서 맞는 죽음은 곧 소멸.
그들은 죽고싶지 않았다.
어떻게 나온 미지 영역인데!
겨우 다시 맞게 된 바깥세상의 공기를 이대로 저버릴 수는 없었다.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그들을 보며 윤사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으로 류화홍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류화홍이 다시 물었다.
“저기 위에 있는 분은요?”
류화홍의 질문에 윤사해가 하늘을 보고는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윤사희.
그녀는 이곳, 귀수산을 지키기 위해 현세에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간 존재.
그 작은 일부만으로도 그녀는 귀수산에 몰려든 ‘신’들을 압도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지.”
마음 같아서는, 딸아이와 둘째 아들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윤사해는 그러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무사할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소식이 들어왔다.
첫 번째 소식은, 윤리타.
제 둘째 아들에 관한 것이었다.
CW와 함께 ‘신’들의 침공을 막아 내고 있는 중이라던가?
다친 곳은 없다고 하여 안도했다.
두 번째는, 윤리사.
제 하나뿐인 딸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 윤사해는 안도하지 못했다.
“리사가 누구랑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그게…….”
각지에서 전투 상황을 보고받고 있던 서차윤이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세상이입니다.”
윤사해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