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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32)화 (432/500)

432화. 져 버린 곳에서(3)

장천의가 사라졌다.

내게 한없이 충격적인 ‘진실’만을 남겨 두고.

또 모습을 감춰 버렸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가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확히는,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 때문에 말했다.

“장천의 아저씨.”

아니.

“장천의.”

그는 내게 있어 더는 친근한 ‘아저씨’가 아니었다.

장천의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그에게 있어 나는 주인공을 대체할 ‘장기’였을 뿐이다.

저세상.

그를 대체할 또 다른 주인공.

단지 그거였을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리사 양!’

친근하게 내게 건네던 인사들이 모두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알았다.

저세상이 그를 경계하던 것도.

장천의 또한 그를 볼 때마다 의미심장한 눈을 보였던 것을.

“장천의!”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나는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야!”

주인공?

“이 세계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야!”

적을 죽이라고?

하! 코웃음을 친 후 말했다.

“내가 저세상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한때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저세상에 의해 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후, 좌절하며 꼭 그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저세상.

그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한 걸까?

동시에 알 수 있었다.

『각성, 그 후』에서, 아니.

이 세상에 ‘주인공’이었던 그가, 자신이 그 역할에서 버림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내게 그런 말을 했겠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윤리사랑 약속했어!”

가족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그 가족에는, 당연히.

“저세상 역시 내 가족이야!”

어릴 적부터 함께해 온 나의 가족.

“장천의! 내 마음대로 절대 되지 않을 거야!”

더욱이.

“세상이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에 의해 멸망하게 될 거라고?!”

웃기지 말라지!

“그것 역시 막겠어!”

장천의.

그가 주어 준 ‘주인공’이란 역할에 의한 것이 아닌,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윤리사로 내뱉는 말이었다.

이매망량의 전 길드장이었던, 내가 말하는 다짐이었다.

“그러니까 똑똑히 보고 있으라고!”

겁쟁이처럼 숨어서.

고귀한 관찰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냥, 당신은……!”

보고 있어.

지금까지 쭉 그래 왔던 것처럼.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킨 후, 휙 몸을 돌렸다.

꽃잎이 모두 떨어진, 아니.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피어난 것이 없는 황량한 정원을 뒤로하며 끝없이 걸었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장천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시바.”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니, 아니다.

나는 추억을 보러 온 거다.

장천의 때문에 이곳에 걸음한 게 절대 아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서차윤.

해바라기 정원에서 만났던 씁쓸히 웃던 그를 떠올렸다.

“아…….”

그러고보니, 서차윤 역시 비슷하게 말한 것 같다.

애초에 장천의는 말했다.

‘그 분기점이 바로 우리 마리아 양의, 아니. 우리 리사 양의 오빠들. 리오 군과 리타 군께서 서차윤에 의해 납치됐던 시간이었습니다.’

윤리오와 윤리타.

그들이 서차윤에 납치됐던 바로, 그 시간.

그 시간을 중심으로 끝없이 회귀를 반복했다고.

서차윤은…….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사해한테는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지 마.’

그래, 분명 기억했다.

어린 날의 기억 속에서도, 그가 애달프게 웃으며 내게 애원하던 목소리가.

또한, 떠올랐다.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는 건, 나는 다시 시작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란 거야.’

장천의가 시간을 돌리는 존재라면, 서차윤은 그 시간을 다시 시작하는 존재였던 거다.

하지만 이제 서차윤은 없다.

그러니까 장천의는 말한 거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 하하…….”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서차윤.

그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네 줄걸.

더 손을 내밀어 줄걸.

아저씨가 아니라 삼촌이라고, 좀 더 제대로 불러 줄 것을.

후회해 봤자 늦은 일이건만, 계속 그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괜찮으냐?〗

나지막하게 건네지는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눈가를 닦고는 물었다.

“대도깨비님은 알고 있었어요?”

〖이 세계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을 말이냐?〗

“네.”

〖아무렴, 알고 있었지. 물론, 그걸 알고 있는 건 나뿐이다. 뭐, 그걸 정확히 인지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천지해가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말 그대로 모든 세계의 시간을 그 미친 것이 계속 되돌려 왔단다.〗

대도깨비가 말한 ‘미친 것’이란 바로 장천의를 말하는 것일 터.

〖장천의가 말한 대로, 이곳은 네가 있던 세계를 기반으로 쌓아 올려진 세계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 역시 그렇다면서 천지해가 말했다.

〖뭐,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가 아주 데이터화 되어 버린 거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 모든 데이터를 그 미친 것이 말한 분기점으로 끝도 없이 되돌렸지. 그 짓을 몇 번이나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마는.〗

적어도 수천 번은 될 거라며 대도깨비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말이다. 이 세계는 지금까지 되돌아온 세계와 다르단다.〗

“다르다고요?”

〖그래.〗

천지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친 것도 말한 것 같지만, 네가 아닌 다른 주인공이 있던 세계는 버려졌다.〗

그래서 대도깨비는 지금까지 모든 시간이 계속 끝없이 되풀이 됐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나는 하늘과 땅,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니.〗

뿌듯하게 웃는 그를 향해 멍하니 물었다.

“그럼, 이 세계는.”

〖이전의 세계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세계다. 그 미친 것이 아주 작정한 거지.〗

아마, 끝없이 시간을 되돌리면서 그는 알게 됐을 거라고 한다.

세계를 결말까지 끌고 가는데 꼭 필요한 존재와 그러지 않은 존재를.

〖그 존재는 지웠겠지. 아니, 버렸을 거다.〗

다름 아닌, 지난 세계에.

“저세상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주인공이었는데.”

내 최애도, 차애도 아니었지만 그는 주인공이었다. 싫어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닥친 고난과 고통, 상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

“그랬는데.”

저세상은 부정당했다.

다시 실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장천의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줄 걸, 아니. 그 뺨을 힘껏 내리친 후 저세상을 찾아가 머리를 박으라고 할걸.

“바보 같아요.”

저세상은 어릴 적부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기억 속, 아주 어릴 적에 죽어 버렸던 ‘윤리사’가 가족의 모든 사랑을 받는 걸 보며.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대체 어떤 시선으로 나를 본 거야?

그러면서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나를, 주인공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야?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두 주먹 역시 꼭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으며 생각했다.

저세상이 왜 유랑단에 붙은 건지.

주인공은, 세상의 적을 처치해야 한다.

그 적이 ‘저세상’에게 있어서는 모든 악(惡)이었지만.

‘실패했어.’

유랑단을 해치우는 게 끝이 아닌,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 모두가 저세상에게 있어 적이 됐을 테니.

‘어쩔 수 없었어.’

당장, 내가 읽은 부분까지만 해도 저세상은 함께 싸울 동료를 모두 잃은 상태였다.

이운조도, 청해솔도.

그 두 사람을 잃은 상황에서 저세상은 자신의 손으로 윤사해의 목숨 역시 거뒀다.

그런 와중에 미지 영역에서 나온 악(惡)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겠지.’

그래서 세계는 실패했고, 장천의는 그 대체제로 나를 찾았다.

버려진 주인공은.

‘너는 내게 있어 적이야.’

자신을 대체하여 새롭게 ‘주인공’이 된, 나의 적이 되기로 했다.

‘바보 같은 새끼.’

버려진 세계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넘어온 건지 모르겠지만.

‘넘어왔으면 발버둥을 쳐야지.’

아님.

‘나와 함께 싸워야지.’

나의 적이 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아수라장에서 내 힘이 되어 줬어야지.

‘정말로.’

저세상은, 정말 바보같은 놈이었다.

〖어떻게 할 것이냐?〗

“돌아가야죠.”

내가 내뱉을 말은 하나 뿐이었다.

쿠구구궁―!

급격하게 땅이 흔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지진인가?’

라고 생각할 것도 없이, 또 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음이 잠잠해졌을 때.

〖아해야.〗

천지해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모든 걸 돌아키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온 세상이 모두 붉게 적셔졌다.

동시에 하늘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안에서.

〖아하하하하! 인세다! 인세야!〗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장천의가 왜 내 앞에 이제 와서 모습을 드러낸 건지 깨달았다.

장천의.

그 망할 인간은, 세상이 곧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에 의해 침범당할 것을 안 거다.

그래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말한 거다.

세상과 싸우라고.

또한.

적과 싸워…….

끝없이 되풀이됐던 이 이야기를 끝내 달라고.

“하, 하하.”

상황에 맞지않게 허탈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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