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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29)화 (429/500)

429화. 열아홉의 아침(3)

진달래는 말했다.

“장천의 회장님에 대해 뭔가 알게 되면 바로 말해 줄게.”

“네, 언니 부탁드릴게요.”

진달래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곧장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들어 왔다.

“장천의 회장님은 왜 찾는 거니?”

진달래의 검은 두 눈이 빤히 나를 담았다. 마치,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

곧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윤사해 길드장님께서 장천의 회장님을 찾는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지만, 리사는 아니거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진달래가 두 눈을 크게 뜨거니 이어 미소를 그렸다.

“그야, 장천의 회장님은 리사에게 있어 그냥 돈 많은 삼촌이었잖아.”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저세상의 말이 아니었다면 장천의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저세상한테서 장천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그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지게 됐다는 뉘앙스가 듬뿍 담긴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니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진달래에게 답을 들려줄 수는 없으니.

“보고 싶어서요.”

대신, 터무니없는 말을 들려주기로 했다.

CW의 똑똑한 회장 대리님이라면 내가 일부러 대답을 피한다는 걸 금방 알아차릴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진달래가 픽 웃고는 말했다.

“그래. 돈 많은 삼촌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 모양이구나? 하긴, 그럴 수 있지.”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겠어, 리사.”

내가 장천의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 더는 묻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회장님에 대해 무언가 찾는다면.”

“네, 바로 알려 주세요.”

그렇게 진달래에게 꾸벅 고개 숙인 후, CW를 나섰다.

‘결국 장천의에 대해 알아낸 건 없네.’

혹시, CW가 이미 그의 행방을 알고 있으면서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장천의가 CW를 떠나면서 한동안 회사는 위태로웠다.

그렇지만 진달래가 그의 자리를 임시로 맡게 되며 안정화되게 됐다.

『각성, 그 후』에서는 없던 일.

‘진달래가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인 거겠지.’

아무래도 그녀는,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지난 테러에서 죽는 모양이었으니.

‘청해진과 함께.’

불현듯 떠오르는 『각성, 그 후』의 이야기에 머리를 휙휙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이 세상에 『각성, 그 후』가 동기화됐다고 해도 아직 평화로운 세상이다.

윤리오가 백정이 되고, 윤사해가 저세상의 손에 의해 죽고, 그로 인해 윤리타가 자살하는 일 따위 절대 벌어질 일 없다는 거다.

‘그래, 그렇지만.’

왜 이렇게 불안할까?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불안감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를 깊게 찌른 후에야 정신이 맑아졌다.

하지만 언제 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지 모르니 가볍게 뺨을 때려 정신을 챙기기로 했다.

“야! 윤리사! 뭐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리타 오빠?”

윤리타가 무척 가볍게 차려입은 채 달려왔다.

“멀쩡한 뺨은 갑자기 왜 때려?!”

“어? 아니,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 그보다 리타 오빠는 CW에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윤리타가 고장난 기계처럼 비꺽거렸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CW에 온 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그, 청해진이.”

“해진이 오빠가?”

나무에 묶여 있는 주제에 아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모양이다.

하지만 진달래는 말했다.

내가 자신한테 찾아올 거라고 미리 알려 줬다고.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가?’

그게 신경쓰여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다 이매망량에서 청해진의 말을 들었고.

‘이렇게 달려온 거구나?’

거참, 지극한 사랑이었다.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해진이 오빠가 CW에 내가 간 걸 알려 줬다고 쳐도.”

그대로 성큼, 윤리타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왜 리타 오빠가 그렇게 급한 모양새로 찾아온 건데?”

윤리타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얼굴을 붉힌 채, 입술을 달싹거릴 뿐이었다. 그 반응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었다.

‘진달래 때문이구나?’

내가 진달래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할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다.

“리타 오빠.”

“으응?”

“진달래 언니 좋아하지?”

그렇지 않았도 붉게 달아올라 있던 윤리타의 얼굴이 아예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정말, 어릴 때나 지금에나 속마음 감추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숙맥처럼 구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말했다.

“좋아하면 빨리 고백해. 좋은 사람 바보같이 놓치지 말고.”

“아, 아니, 그게. 따,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럼, 진달래 언니한테 다른 남자 소개 시켜 줘도 돼? 언니 너무 좋은 사람이라 소개 시켜 주고 싶은데.”

“절대 안 돼!”

윤리타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놀란 눈을 보였다. 격한 반응을 보인 스스로가 무척 놀라운 모양이었다.

‘바보.’

픽 웃고는 물었다.

“왜 안 되는데?”

“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왜 안 되냐면.”

“내가 나쁜 사람 소개해 줄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

“그, 그래!”

윤리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설마 언니한테 나쁜 사람을 소개해 줄까 봐?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짓궂게 입을 열었다.

“리타 오빠가 무슨 상관인데?”

내 말에 윤리타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할 말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그를 향해 진달래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어 줬다.

“언니는 대체 오빠랑 자기가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다더라?”

“응?”

“분명, 한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뭐 그런 시간이 있는데…….”

바보같은 오빠가 제대로 고백을 하지 않고 있으니, 원.

“리타 오빠. 어물쩍거리다가는 진달래 언니 영영 놓치게 될 걸? 그러고 싶어?”

윤리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싫어.”

그럼, 그렇지.

“싫으면 빨리 고백해. 진달래 언니 헷갈리게 하지 말고. 계속 그러면, 나 진짜 언니한테 오빠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 소개 시켜 줄 거야.”

“네 주변에 그런 사람 있던가?”

“리타 오빠, 내가 이매망량의 길드장으로 꽤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걸 모르구나?”

씨익 입꼬리를 올리면서 윤리타를 놀렸다.

“하긴, 우리 리타 오빠는 나잇값 못하고 한창 방황하고 있었으니.”

“윤리사!”

“잔소리는 사절. 그보다 제대로 마음 먹었을 때 진달래 언니한테 고백하기나 해.”

윤리타가 우물쭈물거리다 CW가 있는 쪽으로 휙 몸을 돌렸다.

“잠깐, 리타 오빠!”

그 꼴로 진달래한테 고백하려고?!

그렇지만 내가 붙잡기도 전에 윤리타는 이미 CW의 건물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나도 이제 몰라.”

등을 떠민 사람은 나지만, 윤리타가 설마 저렇게 급발진할 줄은 절대 몰랐다.

‘그래도, 뭐.’

오늘 윤씨 집안에 경사 하나 날 것 같으니 다행인 건가?

‘윤사해를 생각하면 불행일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매망량이 아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니, 아니야.’

집으로 옮기던 발을 멈췄다.

“대도깨비님, 곁에 계시죠?”

〖그래.〗

부르자마자 쾌활한 목소리가 곧장 들려왔다.

〖우리 아해가 무슨 일로 먼저 나를 찾는지 궁금하구나.〗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흐음?〗

천지해가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도깨비님은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이상 어디든 갈 수 있다 했잖아요.”

〖뭐, 그렇기는 하지.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이상 소멸할 일도 없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꽤 뿌듯해 보였다.

〖물론, 가 본 적 없는 곳은 쉽게 이동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 윤사해를 데리고 오고자 미국에 있는 에일린한테 갈 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가 보지 않은 곳은 없을 거 아니에요.”

천지해는 윤사희와 유랑했다.

실제로 그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분명했다.

대도깨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이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래, 미지 영역에 의해 우리가 이 땅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곳곳을 다녔다.〗

한반도에 한하는 이야기지만 그랬다면서 천지해는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고 싶으냐?〗

묻는 말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해 줬다.

“여름이면 해바라기가 잔뜩 피어나는 곳이요.”

〖지금은 겨울인데?〗

“셜명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천지해에게 그곳에 대해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어디인지 알겠구나. 사희가 꽤 마음에 들어 했던 곳이지.〗

추억에 잠긴듯한 말과 함께 풍경이 바뀌었다.

대도깨비와 함께 도착한 곳은 바로 우리 가족의 여름 별장이었다.

서차윤.

그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한 이곳.

왜 갑가지 이곳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해바라기는 역시 모두 졌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죠.”

여름이 아닌, 겨울.

해바라기는 피어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적막만이 가득한 이곳에 나 혼자 찾아오는 것도.

‘괘 운치가 있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해바라기꽃이 저문 땅,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사람.

CW의 회장, 장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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