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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27)화 (427/500)

427화. 열아홉의 아침(1)

“아, 시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열아홉의 나이로 처음 맞이하는 아침이 간밤에 꾼 꿈으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왜 하필 그때 꿈을 꿔서는.’

저세상.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궁금하면 장천의를 찾아가서 한 번 물어봐. 너라면 분명 그 자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니, 분명히 너는 찾을 거야.’

‘저세상!’

‘윤리사, 다음에 만날 때는 손이 아닌 다른 걸 뻗어야 할 거야.’

‘내가 해 줄 말은 이게 끝이야. 그럼, 안녕.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라는 말을 지껄이고 사라졌던 그 날을 꿈으로 꾸고 말았다는 거다.

악몽이나 다름없는 꿈이었다.

‘짜증 나.’

새해 첫날부터 기분을 이런 식으로 망치게 되다니.

“후우.”

작게 숨을 내쉰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러기가 무섭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리사, 일어나 있었네?”

“리오 오빠.”

윤리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서 나와. 아침 먹자.”

“응!”

윤리오와 아침을 먹는 것도 이제 일상이 됐다.

물론.

“리사, 일어났니?”

“윤리사, 늦었어.”

윤사해의 다정한 인사와 윤리타의 불만 어린 목소리를 듣는 것 역시 꽤 익숙해졌다.

“윤리타, 리사는 내가 깨우기도 전에 일어나 있었어. 너와는 다르게 말이야.”

“크흠!”

윤리오의 지적에 윤리타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윤사해는 사이 좋은 두 아들의 모습에 미소를 그렸다.

“자, 어서 먹자꾸나.”

윤사해가 숟가락을 들었다. 아침은 당연히 떡국이었다.

“떡국 먹기 싫어.”

이렇게 한 살을 먹게 되다니.

투정 어린 내 목소리에 윤리오가 싱긋 웃었다.

“그래도 먹어야지.”

“물론, 리오 오빠가 만든 떡국이니 먹을 거야.”

아주 남김없이 먹을 거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나이를 먹는 게 정말 싫었다.

‘윤리사가 되기 전의 나이와 똑같아서 그런 건가?’

그러니까, 열아홉.

내가 마리아로 보낸 삶과 똑같은 나이가 새삼 새로워서 이런 기분인 듯했다.

지금까지는 나이를 먹든 그러지 않든 별 상관없었으니까.

‘오히려 윤리오의 떡국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지.’

윤리오가 만들어 주는 떡국은 새해 첫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니까.

그러고 보니.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도 이제 스물아홉이네?”

“응, 벌써 그렇게 됐네.”

“내년이면 서른이야. 끔찍해.”

윤리타가 윤리오의 말을 이어받으면서 투덜거렸다.

“아빠 눈에 우리 리오와 리타는 아직 아이란다.”

윤사해의 말에 윤리오와 윤리타가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웃음을 멈췄다.

“오빠들, 장가갈 나이 다됐네.”

내 말 때문이었다.

그 말에 윤사해가 굳었다. 윤리오와 윤리타도 마찬가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너무 천진난만하게 물은 걸까?

윤사해가 크게 당황한 얼굴로 허둥거렸다.

“리, 리사. 네 오빠들은 아직 어리단다! 장가는 무슨! 절대 안 돼!”

“아빠, 내가 알기로는 화홍이 오빠가 딱 리오 오빠랑 리타 오빠 나이에 사야 언니한테 장가를.”

“여하튼 안 돼!”

윤사해가 내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는 두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너무 격한 반응을 보인 걸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윤리오는 윤사해의 반응에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었고, 윤리타는.

‘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윤사해가 보고 말았다.

“리타, 왜 그러니?”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윤리타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기는.”

윤리오가 픽 웃었다.

“아버지, 윤리타 요즘.”

“시끄러, 윤리오!”

윤리타가 윤리오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떡국을 퍼먹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떡국 맛있네! 아빠, 어서 드세요! 윤리사, 너도 안 먹고 뭐 해?”

“어? 어, 응.”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윤리타가 억지로 내 손에 떡국을 퍼 올린 수저를 쥐어 줬거든.

***

“그런 일이 있었어. 어떻게 생각해, 해진이 오빠? 리타 오빠한테 여자 있는 거 같지?”

“글쎄.”

청해진이 피곤함이 가득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진지하게 좀 말해 주지?”

“리사, 오빠 피곤해. 남해에서 조금 전에 도착한 거 몰라?”

“알아!”

너무 당당하게 대답했나 보다.

청해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러는 거야?”

“응!”

나는 안 피곤하거든!

물론, 간밤에 꾼 꿈 때문에 기분이 무척 나빴었지마는.

청해진이 남해에 내려갔던 이유는 간단했다.

남해 용왕에게 올리는 제사.

청(淸) 가문의 일원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 한다고 하던가?

‘오빠가 그런 행사에 참석하는 걸 잘 본 적이 없는데?’

‘그야, 안 갔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해야 하는 일이라며?’

‘참석 안 해도 별일 안 생기던데? 누나도 가주가 되기 전에는 참석 안 했어.’

이번 제사에는 청(淸청)의 가주인 청해솔이 꼭 얼굴을 비춰야 한다고 윽박을 줘서 다녀온 거란다.

“진짜 피곤해.”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해진이 오빠, 정말 몰라?”

“그러니까 뭐를?”

“리타 오빠한테 여자 친구 있는 거! 리오 오빠는 뭔가 아는 눈치인 것 같던데.”

물어보면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해줬다. 쌍둥이 나름대로 의리를 지키는 듯했다.

청해진이 크게 하품하고는 말했다.

“CW.”

“응?”

“걔 가출했을 때 떠올려 봐. 누구 집에서 지냈었는지.”

그 말에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 크게 입을 벌렸다.

“진달래 CW 회장 대리님!”

그래, 윤리타는 집을 박차고 나간 후 그녀의 집에서 한동안 지냈었다.

“리타 오빠, 진달래 언니랑 사귀어?”

“아마도?”

청해진이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윤리타가 진달래 누나 이야기만 꺼내도 아주 그냥 호들갑을 떨어서 제대로 물어본 적은 없어. 하지만.”

청해진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남녀가 몇 날 며칠을 한 집에서 내내 붙어 있었는데, 마음이 안 생기면 이상한 거 아니겠어?”

맞는 말이었다.

청해진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곧 조카 생기겠네.”

“너무 간 거 아니야?”

“원래 사람은 먼 미래를 봐야 하는 법이야.”

청해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윤리타도 윤리타지만, 리사 너도 참 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에 어깨를 으쓱여 준 후 걸음을 돌렸다.

“어디가?”

“CW.”

“뭐?!”

청해진이 놀라 나를 붙잡았다.

“설마, 윤리타랑 만나지 말라고 돈 던지러 가는 건 아니지?!”

이 오빠가 뭐라는 거야?

“해진이 오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같아.”

“그치만! 타이밍이 그렇잖아! CW에는 왜 가는 건데?”

“그냥, 진달래 회장 대리님께 볼일이 있어서?”

“볼일은 무슨 볼일?”

“해진이 오빠는 몰라도 되는 그런 게 있어.”

장천의.

이왕 이렇게 된 거, 진달래 CW 회장 대리를 찾아가 그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라고 수 년 동안 종적을 감춘 상태인 장천의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진달래가 윤리타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지금을 기회 삼는 게 좋을 듯했다.

물론, 윤리타가 아면 청해진이 말한 바와 같이 아주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를 칠 테지만.

‘미안, 리타 오빠.’

진달래에게 장천의에 대해 묻는 게 더 중요했다.

‘궁금하면 장천의를 찾아가서 한 번 물어봐. 너라면 분명 그 자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니, 분명히 너는 찾을 거야.’

저세상이 그런 말도 했으니.

어떻게든 장천의를 만나봐야 했다.

그런 식을 말을 한 걸 보면, 그가 죽은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그런데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애초에 장천의는 『각성, 그 후』에서도 ‘이름’만 언급됐었다.

즉,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금과 같이 모습을 감췄었다는 말.

‘그때와는 다르게 CW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저세상이 그렇게 우리 가족을 배신하고 유랑단에 붙은 게, 장천의와 관련된 일일 지도.

‘뭐가 됐든 그 망할 아저씨를 만나봐야 할 테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야! 윤리사! CW에서 사고칠 생각 아니지? 새해 초부터 그러면 안 돼! 내 직장이 매스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아!”

청해진이 내 발목을 붙잡으며 질척거렸다.

“아오,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는 그런 청해진을 그림자로 꽁꽁 묶어 나무에 매달아 버렸고.

그 상태로 곧장 CW로 향했다.

하지만 몰랐다.

“어머?”

CW에 도착하자마자.

“안녕하세요, 이매망량의 윤리사 전 길드장님.”

진달래를 만나게 될 줄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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