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화. 열여덟의 겨울(2)
정리는 금방 끝났다.
애초에 내가 이름을 외우고 있는 지하 길드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 모여 있던 곳이라는 말.
“이런, 젠장! 왜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여기에 있는 거야?!”
“이매망량의 전 길드장이에요.”
지하 길드원의 말을 고쳐 주며 싱긋 웃었다.
“지금 이매망량의 길드장은 우리 아빠라고요. 이 자리에 아빠가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텐데요?”
윤사해였다면 이렇게 잡기는 개뿔, 바로 죽였을 테니까.
지하 길드원들도 그걸 아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하나같이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말이다.
“자, 그래서 바깥과 이곳을 차단한 사람은 누구죠? 억지로 부숴 버리기 전에 어서 풀어 줬으면 하는데요?”
그때였다.
“저, 저요…….”
한눈에 봐도 체구가 꽤 작은 아이가 손을 들었다.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 틈에서 말이다.
아이를 보고서 지하 길드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질렀다.
“야! 너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시발, 왜 말을 안 들어?!”
“지금 바로 아니라고 해! 저 망할 꼬맹이가!”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들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아이를 윽박지르고 있는 지하 길드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 피골이 상접한 몸이 한눈에 잘 들어왔다.
또 앞머리는 얼마나 덥수룩한지,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름은?”
“네? 아, 그게.”
아이가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야, 너. 멍청이, 꼬맹이. 다들 이렇게만 불러서…….”
그러니까 이름이 없다는 말이었다.
하!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림자를 움직여, 아이를 향해 못 할 말을 지껄인 지하 길드원들의 팔다리를.
우드득!
부러뜨려 버렸다.
뼈가 부러지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지하 길드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림자에 의해 입이 틀어막혀 있는지라 그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마는.
“얘, 너 몇 살이니?”
“어, 음, 잘 몰라요. 하지만 열일곱은 됐을 거라고 했어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다들 그럴 거라고 하던데.”
아이가 아니라 내 또래였다고?
이렇게 작은데?
하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열일곱이 분명할 거다.
단이의 경우처럼 그 이전에 각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얘도 그런 경우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이 스킬 좀 해제할 수 있을까?”
“그, 그치만…….”
아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붙잡혀 있는 지하 길드원들을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시선을 막으며 최대한 상냥하게 웃어 줬다.
아이는 나를 믿기로 했는지 곧 스킬을 해제했다.
쿠구궁―!
건물이 진동하는 것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AMO에서 나왔습니다! 안심하십시오!”
AMO가 연락을 받고 출동한 모양이었다.
“백시진 팀장, AMO만 여기 온 것도 아니잖아? 우리 아래아도 왔다고? 왜 우리는 없는 것처럼 굴어?”
“아니, 최설윤 길드장님.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안고 일어나니 최설윤이 백시진과 투닥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백시진 팀장님, 최설윤 길드장님.”
그런 그들을 부르며 다가갔다.
“어머, 리사!”
“윤리사 전 길드장님.”
“백시진 팀장, 뭘 그렇게 딱딱하게 불러?”
“제 마음입니다.”
최설윤과 백시진이 티격태격하면서 내게 인사했다.
“저것들, 모두 네가 제압한 거니? 그렇게 보이는데.”
“네, 오늘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 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저 자식들이 훼방을 놓아서 그냥 잡아 버렸다며 최설윤을 향해 웃어줬다.
“역시, 리사. 덕분에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네.”
“감사합니다, 윤리사 전 길드장님. 제가 알기로는 오늘 도윤이도 이곳에서.”
“네, 보기로 했어요. 상황이 빨리 정리돼서 다행이죠.”
아니었다면 윤사해가 나섰을 거다.
백시진이든 최설윤이든 누가 저를 말리든 간에 이곳에 펼쳐진 결계를 부서뜨리려고 했겠지.
만약, 그랬다면…….
‘이 아이는 무사하지 못했겠지.’
스킬이 억지로 파괴되면 그 반동이 시전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니까.
그때였다.
“리사, 품에 안고 있는 그 아이는 누구니?”
최설윤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AMO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상황을 흘긋 본 후에 그녀에게 일러 줬다.
“저도 모르는 아이에요.”
하지만 이 아이가 바깥과 건물을 차단했으며.
“지하 길드에게 붙잡혀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일단,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걸 보면 열일곱 이상인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단정짓기에는 체구가 워낙에 작야야지, 원.
“흐음.”
최설윤이 내 말을 듣고는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그것이 부담스러운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아주 벌벌 떨면서 말이다.
“얘, 언니 나쁜 사람 아니야. 어디 예쁜 눈 좀 한 번 봐 볼까?”
최설윤이 그렇게 말하고는 덥수룩하게 자란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굳었다.
“언니?”
왜 그러냐고 부르자마자 최설윤이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붉은 눈이네.”
“네?”
“이 아이, 붉은 눈이야. 그것도 우리 어머니와 설아랑 똑같은 기운을 가진 붉은 눈.”
그 말에 아이가 몸을 움츠리면서 입을 열었다.
“저, 저주 받았다고 했어요.”
“저주는 무슨.”
최설윤이 픽 웃고는 내게서 아이를 안아들었다.
“이름이 뭐니?”
“어, 음. 몰라요. 그냥 다들 야, 너. 멍청이, 쓰레기, 꼬맹이라고 불러서 그냥 편하게 불러 주시면 돼요.”
“뭐?”
최설윤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AMO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지하 길드원을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제가 팔다리 하나씩 부러뜨려 줬으니까 안심하세요.”
“고마워, 리사.”
최설윤이 나를 향해 싱긋 웃고는 백시진에게 말했다.
“백시진 팀장, 이 아이. 내가 잠시 맡아도 될까?”
“안 됩니다. 윤리사 전 길드장님의 말에 의하면 그 아이가 바깥과 이곳 건물을 차단한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조사는 착실하게 받을 테니까 내가 돌보게 해 줘.”
최설윤은 그러면서 백시진과 실랑이를 했고.
“고마워, 백시진 팀장.”
결국 승리했다.
“태지인 부장님이 나중에 한마디 하러 찾아가도 모릅니다.”
“찾아올 수 있으면 찾아오라고 해. 대신, 찾아오면 뺨에 입 맞출 거라고 해 줘.”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백시진이 질색하는 얼굴을 보이곤 내게 말했다.
“윤리사 전 길드장님은 잠시 상황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것만 알려주면 되죠?”
“네. 덕분에 상황이 빠르게 정리됐기에 다른 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넵!”
백시진이 AMO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기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럼, 저 녀석들은 결국.”
“저 아이를 믿고 까분 것 같아요. 이름도 들어 본 적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백시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삼촌?”
그의 조카가 등장했다.
“도윤아, 안녕! 일찍 왔네?”
“어? 딱히 일찍 온 건 아닌데.”
도윤이가 멋쩍어하며 물었다.
“리사, 무슨 일 있었어? 차가 너무 막혀서 늦었는데…….”
AMO의 백시진이 있다니, 꽤 당황스러울 거다.
백시진이 조카를 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삼촌은 곧 갈거야. 오늘 재미있게 놀아. 너무 늦지말고.”
“네, 삼촌.”
도윤이가 밝게 답하고는 물었다.
“리사, 진짜 아무 밀도 없었어?”
“있었는데 해결됐어. 우리는 단아랑 단이, 단예가 오면 그냥 신나게 놀면 돼.”
“으응.”
도윤이가 마뜩잖아하며 대답하던 순간.
“그럼, 윤리사 전 길드장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윤사해 길드장님께 연락을.”
“하겠습니다!”
하지 않았다가는 그가 직접 이곳에 찾아와, 나를 집으로 끌고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백시진 팀장님!”
“네, 그럼. 도윤아, 너도.”
“아빠한테 연락드릴게요. 나중에 봐요, 삼촌.”
“그래.”
그렇게 백시진이 떠났다. 최설윤도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아이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최설윤이 말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을 신나게 즐기기로 했다.
그럴려고 지하 길드원들을 붙잡은 거였으니 말이다.
“단아랑 단이, 단예가 늦네?”
“도로가 많이 막혀서 그럴 거야. 오는 길에 무슨 일인지 엄청 막히더라고. 사고라도 났나 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네?”
“뭐, 그렇지.”
도윤이의 말에 어색하게 대꾸해 주고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정체가 풀렸을 테니 곧 올거야.”
“맞아. 애들 오면 먼저 점심부터 먹자. 리사,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네가 먹고 싶은 곳으로 가자.”
내가 먹고 싶은 거야, 뭐.
“피자?”
“응?”
갑자기 생각난 음식이었다.
놀라서 나를 보는 눈에 배시시 웃으면서 말해 줬다.
“단아랑 단예 생일 파티 때 기억나? 우리 일곱 살 때. 그때 피자집에서 했었잖아. 갑자기 그게 생각나는 거 있지?”
망할 선비 새끼, 아니. 이제는 ‘하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그의 등장으로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그 집에 가고 싶네.”
뜬금없다고 생각할 법도 하건만, 도윤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거기 가자!”
이후 단예와, 단이, 단아. 한태극의 세쌍둥이 손주가 도착했고 다 함께 피자집에 방문했다.
10여 년 전과 다르게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만나게 됐다.
다 함께가 아닌,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