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화. 열여덟의 겨울(1)
시간이 빠르게 흘러 겨울이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열여덟이 벌써 저물고 있었다는 말이다.
“곧 첫눈 오겠네.”
윤리타가 길게 하품하며 말했다.
“그러게. 날이 많이 쌀쌀해졌어.”
윤리오가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오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러니까, 걷는 데도 헌터로 일을 하는데도 무리가 없어졌다는 거다.
당장 며칠 전에 윤리타, 그리고 청해진과 함께 A급 던전을 공략하고 돌아왔다.
윤사해가 그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때였다.
“리사, 오늘 따뜻하게 입고 가야 해. 괜히 오랜만에 친구들 만난다고 춥게 입고 나가지 말고.”
윤리오가 당부했다.
그의 걱정에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내 대답에 윤리오가 픽 웃었다.
가끔은 아직도 꿈만 같다.
윤리오가 웃으며 나를 걱정하고 있는 저 모습이, 그리고 그런 윤리오를 향해 윤리타가 장난을 거는 모습이.
또한.
“리사, 오늘 친구들이랑 언제 만난다고 했지?”
윤사해가 내게 말을 걸어 주는 모습 모두 말이다.
하얀 두루마기 코트를 챙겨 입은 그를 향해 밝게 말했다.
“오전 11시! 만나자마자 바로 점심 먹고 영화 보고 놀거야.”
오늘은 비나리 고등학교가 교직원 행사로 인해 휴교하는 날이었다.
도윤이와 단아, 그리고 단이와 단예가 놀자고 했고 나는 좋다고 길드 일을 하루만 쉬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일개 길드원이니까!
윤사해가 이매망량으로 출근할 준비를 하며 내게 말했다.
“저녁 되기 전에는 돌아오렴.”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볼게.”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윤리사.”
타이르듯 부르는 목소리에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일곱 시 전에는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윤사해가 픽 웃고는 집을 나섰다.
“리오, 리타. 둘 다 늦지 않게 오렴. 오늘 아래아와 함께 회의 있는 거 잊지 않았지?”
윤사해는 집을 나서기 전, 아들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밝게 웃으면서 동시에 대답했다.
“네엡! 잊지 않았습니다!”
쌍둥이의 씩씩한 대답에 윤사해가 미소를 그리고는, <[S, 숙련 불가] 장승 행차>를 통해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이후 윤리오와 윤리타가 이매망량으로 떠났고,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오전 10시 30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기에는 넉넉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해야.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 참고로 대단하신 도깨비께서는 여전히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곁에 붙어 있는 중이다.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아주 제멋대로인 미지 영역의 거주자셨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거냐고 물어봐도 의미심장한 미소만 보일 뿐, 망할 도깨비는 답해 주지 않았다.
어쨌든 간에.
“왜요?”
말의 의도가 궁금해진 나는 물었다.
내 질문에 어느새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작은 도깨비가 웃으며 말했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에 이리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진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대도깨비님, 혹시 미래를 볼 수 있다거나 그러세요?”
〖그건 아니다만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아서 말이다.〗
“그래요?”
기분 좋아 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대도깨비는 웃고 있는 낯이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대도깨비가 말했다.
〖내 기분이 이렇게 안 좋을 때는, 언제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구나.〗
“그래요? 그나저나 기분은 왜 안 좋은데요?”
〖글쎄다.〗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
어처구니없어하는 나를 보며 대도깨비가 말했다.
〖너희 인간들도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왔다 갔다 하지 않느냐?〗
뭐, 그렇기는 하지만.
“미지 영역의 거주자도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줄은 몰랐는데요.”
〖하하! 그냥 대충 그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거라.〗
대도깨비가 유쾌하게 웃었다.
〖여하튼 내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은 상태이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으면 되도록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거라.〗
나 참,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뭐, 알겠어요.”
들어서 나쁠 일은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미리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니까.
그렇게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때.
쿠구궁!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만나기로 했던 CW 백화점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거다.
“꺄아악!”
“으악! 지진이다!”
“으아앙!”
울고불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바닥을 짚었다.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스킬.’
누군가 의도적으로 스킬을 사용해 건물을 흔들리게 만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조용! 지금부터 이 건물은 우리 스콜피언이 점거한다!”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나타나선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조금 전의 진동은 건물과 바깥을 차단하는 스킬의 영향이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무장한 지하 길드원을 보고 겁에 질려 무릎 꿇고 앉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흐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무섭게.
타앙!
지하 길드원이 쥐고 있던 무기를 쏘아 댔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희게 질린 얼굴로 스콜피언인지 뭔지 하는 지하 길드원들 앞에서 덜덜 떨기만 했다.
나 역시 우선 사람들과 똑같이 무릎 꿇고 앉았다.
내가 암만 이매망량의 길드장으로 한때 매스컴을 탔다고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떻게 봐도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때, 천지해가 키득거리며 웃는 얼굴로 으스댔다.
〖거봐라, 아해야.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느냐?〗
어처구니가 없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소곤거리며 묻자 천지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네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조금만 일찍 도착했으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당장, 스콜피언에 의해 총에 맞은 남자가 흐느끼며 쓰러져 있었으니.
“이곳을 점거하고 있는 녀석들이 총 몇 명이에요?”
〖마흔이 조금 넘는 것 같구나.〗
많기도 하네.
“결계가 부서질 것 같아요?”
〖이 건물을 바깥으로부터 차단하고 있는 것 말이냐?〗
“네.”
천지해가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아비가 오지 않는 한 부서지기는 힘들 거다.〗
S급 결계란 말이지?
그런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지하 길드에 속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제대로 친구들이랑 노는 날인데.”
망할 도깨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를 놀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지 않느냐? 친구들이랑 놀기 전에 몸 좀 푼다고 생각하거라.〗
“네네, 알겠습니다아.”
그렇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대답할 때였다.
“거기! 저 새끼처럼 총 맞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무릎 꿇어! 우리는 애새끼라고 봐주지 않아!”
“그래요?”
발 밑으로 그림자를 움직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어쩌죠? 저도 어른이라고 봐주지 않는데?”
말을 끝마치는 것과 동시에 나를 향해 경고하던 지하 길드원을 잡아 올렸다.
물론, 그림자를 이용해서 말이다.
“으아아악!”
지하 길드원이 비명을 질렀다. 곧장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거기 뭐야?!”
“헌터인가?”
“어차피 B급 정도 되는 녀석일 거야! 인질 몇 명 죽어도 상관없으니 그냥 죽여!”
스콜피언의 길드원들 몇몇이 달려와선 당장에라도 스킬을 사용할 것처럼 굴었다.
“대도깨비님, 사람들 좀 보호해 주세요.”
〖아무렴, 그래야지.〗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것만 불가능하다.
즉, 보호하는 건 가능하다는 뜻.
나는 인질들의 안전은 대도깨비에게 맡긴 후,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스콜피언의 앞으로 나섰다.
겁에 질린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당당한 걸음걸이 때문일까?
지하 길드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다 몇몇이 내 얼굴을 보곤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 윤리사?”
“윤리사? 그게 누군데?”
“누구기는! 이 멍청아! 이매망량의 길드장이잖아!”
“뭐?!”
스콜피언의 길드원이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경악하며 외치는 그 목소리에 담담하게 답해줬다.
“전 길드장이니까요. 길드장 자리는 아빠한테 다시 넘겼거든요.”
그러면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놀기로 한 날이거든요?”
그러니까.
“빠르게 갈게요.”
윤사해가 소식을 듣고 놀라 달려와 가슴을 쓸어내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