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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23)화 (423/500)

423화. 가족이란 이름(4)

최설윤과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녀는 자신의 가정사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 버렸다.

붙잡고 위로를 할까?

그런 고민을 잠시 했지만, 가만히 있기로 했다.

최설윤은 내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닐 테니까.

동시에 할미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역시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최설윤이라면, 그녀가 AMO의 감옥 안에서 어떻게 됐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 관심도 없을 테고.

이상하게도 최설윤이라면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아온 길드.

“리사, 최설윤 길드장은?”

윤사해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초조하게 물었다.

윤리오와 윤리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잠시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윤사해의 질문에 답해줬다.

“최설윤 길드장님은 떠났어. 아마, 아래아로 갔을 거야.”

“그러니?”

윤사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것도 잠시, 그가 나를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이 괜히 너한테 무슨 해코지를 했다거나 그런 건.”

“아빠.”

윤사해의 말을 끊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설윤 길드장님이 나한테 그럴 분이 아니란 거 잘 알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알다가도 모르는 게 바로 사람 일이란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나나 윤사해가 지금까지 겪은 일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

하지만 최설윤은 내게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았고, 그저 속에 담고 있던 가족 이야기를 전해 줬을 뿐.

“최설윤 길드장님을 너무 나쁘게 보지마.”

“그런 적 없단다.”

거짓말.

최설윤을 나쁘게 보고 있었으니 내게 그런 식으로 물은 거겠지.

“아빠.”

“응?”

왜 부르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그를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리사?”

윤사해가 놀라 나를 불렀다.

나는 더더욱 힘주어 그를 안고는 웅얼거렸다.

“아빠, 사랑해.”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가 싶을 거다.

하나뿐인 딸이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하고 있으니.

그렇지만 나는 그의 놀란 얼굴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랑 오빠들, 밀어내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마워. 아껴줘서 고마워.”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내비쳐줘서 정말 고마워.”

윤사해가 우리를 향한 속마음을 계속 감췄다면, 최설윤의 가족과 다를 바가 없게 됐을 거다.

아니, 『각성, 그 후』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게 됐겠지.

윤사해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 픽 웃음을 흘렸다.

“아빠도 고맙단다.”

그러면서 그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예쁘고 마음씨도 착한 우리 리사가 아빠 딸이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물론, 윤리오랑 윤리타도 자신의 아들이라서 행복하다며, 윤사해가 말을 붙였다.

“최설윤 길드장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리사, 우리 가족이 서로 떨어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을 겪을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없을 거란다.”

그 말에 잠시 두 눈이 흔들렸다.

울컥, 치밀어오르던 감정을 꾹 누른 후 활짝 웃었다.

“응!”

윤사해가 입가에 가득 웃음을 담은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저어, 길드장님?”

불청객이 끼어든 건 그때였다.

“보셔야 할 서류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만.”

서차웅의 말에 윤사해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평소 자주 보던 모습인 걸까?

서차웅은 겁먹은 기색 없이 아주 덤덤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걸 보니 무섭기는 한가 보다.

그 때문에 윤사해를 서차웅 쪽으로 밀며 말했다.

“자, 일하러 가 보세요.”

“리사…….”

윤사해가 도와달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지만.

“길드장님, 파이팅! 일하는 우리 아빠, 정말 멋지다!”

어림도 없었다.

윤사해는 결국 서차웅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집무실로 향했고, 나는 그 길로.

“야, 윤리사! 어디가?!”

“마저 순찰 돌러. 해진이 오빠도 오려면 와.”

귀수산으로 향했다.

청해진에게 따라오고 싶으면 오라면서 말했는데, 절대로 싫다고 기겁하더라.

여하튼 나는 귀수산의 가장 높은 나무에 올랐고.

‘리사한테 털어놓고 싶었어. 또한, 말해 주고 싶었단다.’

‘무엇을요?’

‘너희 가족을 잘 지키라고. 너로 인해 만들어진 울타리잖아.’

최설윤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

―우우……!

자욱하게 깔린 안개 사이로 귀신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상념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지만, 시간이 꽤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라고 생각할 때였다.

〖최설윤이라고 했던가? 금강산의 수호자.〗

천지해가 말을 걸어왔다.

“대도깨비님, 사실 귀신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있는 거예요?”

〖그야, 애초에 돌아간 적이 없으니까 말이지.〗

내 옆에 앉아 있는 대도깨비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 그런가? 웃는 모습이 정말 얄미워 보였다.

저 모습의 정체가 대도깨비가 아닌 걸 알았다면 귀여워해 줬겠지마는.

“이제 그만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면 안 되나요?”

저 어린 아이는 대도깨비.

모든 도깨비의 정점에 군림해 있는 놈이다.

천지해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싫다. 돌아가지 않을 거다. 그런 재미없는 곳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랑야 님은 잘만 돌아가시던데.”

이곳에 자신의 딸과 손주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놈은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 돌아가는 거고.〗

천지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가 이곳 바깥세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계약자도 공유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네.”

〖하지만 너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지. 내가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그랬다.

지금 천지해는 누가 봐도 정말 기분 좋다는 듯이 웃고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거짓인가요?”

〖음?〗

“사실, 즐겁지도 않은데 웃고 있는 거냐고 물은 거예요.”

〖하하! 설마!〗

천지해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나는 무척이나 즐겁단다. 네가 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적당히 조절 중이기 때문이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대단하지?〗

결국은 자기 자랑이었다.

“네네, 대단하시네요.”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며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님 보고 금강산의 수호자라고 했죠? 무슨 말이에요?”

그 누구도 최설윤을 그런 식으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대도깨비는 나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답해 줬다.

〖말 그대로다. 그 아이는 금강산의 수호자다. 설마, 그 자리가 대를 이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천지해가 이곳에서는 보일 리가 없는 금강산을 보는 것처럼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아이가 지닌 기운이 말해 주고 있더구나. 금강산의 수호자라고. 뭐,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지마는.〗

하긴, 그런 눈치였다.

그렇지만.

“이상하네요.”

〖무엇이?〗

“최설윤 길드장님이 금강산의 수호자라면서요?”

하지만 최설윤은 금강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저세상이 이끄는 지하 길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내 말에 천지해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붉은 눈이 오래전, 많은 핍박을 받은 건 알고 있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천지해가 말을 이어나갔다.

〖붉은 눈이 가장 많이 박해받고 핍박받은 곳이 바로 금강산이다.〗

“그런……!”

〖사희는 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자들에게 말했지. 멈추라고. 그들 역시 같은 인간이라고.〗

하지만 금강산의 사람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며 대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결국, 사희도 포기하더구나. 그래도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몇 구했지.〗

“하지만 최설윤 길드장님은 붉은 눈이에요. 그분의 가족도 모두 붉은 눈인 것 같았고요.”

〖그거야 그 아이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붉은 눈 중에서도 타고나는 귀신을 보는 힘.

그 힘을 지닌 사람은 자신들을 가장 저주하고 미워했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고 하던가?

〖아마, 금강산의 수호자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박해하고 핍박했던 붉은 눈과 사랑에 빠졌을 거다.〗

그런 후, 지닌 힘을 대부분 잃고 말았을 거라며 천지해가 웃었다.

〖자업자득이지. 그러게, 사희의 말을 따르면 좋았을 것을.〗

허심탄회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조의 잘못으로 후손이 고통받고 있어요.”

〖그렇지.〗

“더군다나 붉은 눈을 향한 박해와 핍박은 여전한 것 같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지해가 단호하게 말을 뱉어 냈다.

〖붉은 눈 중에서도 특별하게 지닌 힘. 귀신을 보는 그 힘은 주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피하게끔 만든다. 불길하다면서 말이지. 그렇게 붉은 눈의 저주가 계속 대물림 되고 마는 거다.〗

“그럼, 그 저주를 끊어야겠네요.”

〖무슨 수로 말이냐?〗

글쎄,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는 나였다.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일단 내뱉은 말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성물을 이용하거나, 뭐. 세상을 한 번 제대로 갈아 엎어 버리면 되는 일 아닐까요?”

무너진 천장이라고 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까.

천지해가 내 말에 멍하니 두 눈을 끔벅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똑똑하구나, 아해야.〗

욕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멋쩍게 뺨을 긁적인 후 나무에서 내려왔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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