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화. 가족이란 이름(3)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암만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말이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위로하고 싶어도 최설윤이 꺼내고 있는 이야기의 상대는 다름 아닌, 할미.
암만 그녀의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탈이었다.
최설윤은 나의 침묵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동생이 입원한 곳을 알아내려고 했어. 그렇지만 오빠는 내가 암만 애원해도 알려 주지 않았지.”
그 길로 최설윤은 집을 떠났다고 했다.
“진작 동생을 데리고 나올걸.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그녀가 과거에 잠긴 눈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빠는, 뭐. 아래아의 길드장으로 아주 승승장구했지. 막냇동생을 정신 병동에 입원시켜놓았으면서.”
최설윤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긴, 그때는 이매망량이 없었을 때다. 있다고 해도 이제 막 세력을 키워 나갔을 때고.
“어쨌든 나는 혼자서 계속 동생을 찾고자 했어. 그러다 결국 찾았지.”
최설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설아…….”
최설윤이 탄식하듯 동생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던 소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언니?”
붉은 눈에 이채가 돌았다.
곧, 소녀가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급하게 최설윤을 불렀다.
“언니! 언니!”
그럴 때마다 소녀의 손목에 묶인 사슬이 시끄럽게 흔들렸다.
“설아, 최은설!”
최설윤은 애가 탔다. 동시에 화도 났다.
정신 병동이란 곳이 원래 이런 곳인가? 원래 저렇게 애를 묶어 놓는 곳인가?
‘아니야.’
중증 환자라면 몰라도, 자신의 동생은 묶일 정도의 환자가 아니었다.
“설아, 잠시만 기다려!”
최설윤이 그렇게 말하고는 면회를 허락한 간호사에게 물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 누구죠?”
“네?”
“내 동생 담당 의사 선생님 대체 누구냐고요!”
간호사가 머뭇거렸다. 그 태도에 최설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없군요?”
최은설.
하나뿐인 자신의 동생은 제 오빠에 의해 강제적으로 정신 병동에 입원당했다.
어떠한 의사의 진료도 받지 않고.
“미쳤어?!”
최설윤이 버럭 소리 질렀다.
“우리 설아, 당장 퇴원시켜.”
“하, 하지만.”
“오빠한테는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테니까, 지금 당장!”
소리를 치는 최설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 퇴원시켜.”
날선 목소리에 눈치를 보던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병원의 간호사는 의사를 데리고 왔고 최은설의 퇴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와아!”
하늘을 보자마자 최은설이 외쳤다.
“언니, 붉어! 하늘이 붉어!”
“그야, 저녁이니까.”
“아아, 저녁! 그래, 저녁이구나!”
최은설이 까르르 웃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어! 하늘을 볼 수 없었거든! 시계도 보지 못했어! 그냥 천장만 봤으니까!”
“설아…….”
최설윤이 안타깝다는 듯이 동생을 부르고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려고 할 때.
“오빠는 어디 있어?”
최은설이 물었다.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그 목소리에 최설윤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최은설의 붉은 눈이 최설윤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최은설에게 답을 들려줬다.
“오빠는 지금…….”
“집에 있겠지?”
최은설이 언니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최설윤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최은설이 웃었다.
“그럼, 됐어.”
뭐가 됐다는 걸까?
묻기도 전에 동생이 휙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물었다.
“언니.”
“응?”
“언니는 나 사랑하지?”
느닷없는 질문에 최설윤은 당황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랑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찾은 거였다.
“그래, 그럼 됐어.”
조금 전과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이후, 최은설은 사라졌다.
“설아?”
최설윤이 다급히 동생을 찾았지만 최은설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아! 최은설!”
“미안, 언니.”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최은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어?! 나와!”
“그럴 수는 없어. 친구들이 지금이 기회라고 하는 걸?”
기회라니?
그보다.
“친구들이라니?”
최은설은 친구를 사귀기도 전에 정신 병동에 입원당하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줄곧 금강산에서 교육을 받았고.
때문에 친구를 사귈 일따위 없었을 터.
“설아!”
다급하게 부르짖는 목소리에 다정하기 그지없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사랑해, 언니.”
그것이 끝.
최설윤은 이후 단 한 번도 동생을 보지 못했다.
***
“그때,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어.”
최설윤이 고하듯 말했다.
“그랬다면, 설아가. 아니, 할미가 오빠를 죽일 일도 없었을 텐데.”
최설윤은 몇 번이고 동생의 이름을 고쳐 불렀다.
최은설이 아닌, ‘할미’로.
동생이 저지를 죄를 잊고싶지 않기 때문일 거다.
“리사, 내가 왜 지하 길드를 모두 무너뜨리려고 하는지 아니?”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인 최설화. 최화백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가 지하 길드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일 터.
하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최설윤이 내 대답을 보고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죽었거든. 막냇동생을 정신 병동에 입원시킨 막돼먹은 인간이기는 했어도, 그래도 그 망할 인간 역시 내 가족이었어.”
최설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할미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후, 오빠는 불같이 화를 냈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그런 미친 애를 왜 풀어놓은 거냐고.”
그렇게 말하는 오빠에게 따귀를 있는 힘껏 날렸었다며 최설윤이 유쾌하게 말했다.
“암만 그래도 동생한테 미쳤다고 하다니. 참을 수가 없었어.”
이후 남매의 사이는 서먹해졌다.
최설윤은 툭하면 밖을 돌아다니며 최은설을 찾았고, 최설화는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최설윤이 토해 내듯 말했다.
“오빠가 설아랑 비슷한 눈을 가진 여자랑 결혼을 하더라.”
처음, 그녀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최설윤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때 알았어.”
신인의 시대 때, 붉은 눈이 박해받았던 이유에 대해서.
“귀신을 보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하더라고. 그 힘이 주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던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하게끔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박해를 받았다고 해. 뭐, 시간이 지나면서 피가 섞이고 힘이 섞이고 뭐 이것저것 해서 붉은 눈의 박해는 사라졌지만.”
간혹, 그 힘을 그대로 지닌 사람이 태어난다고 했다.
“그런 후에 자신들이 가진 힘을 가장 저주했던 사람에게 간다고 하더라고.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도 충분히 그러니까. 그런 사람에게 이끌리는 거래. 그래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내게 그런 말을 남긴 건가 싶어.”
최설윤과 최은설, 그리고 최설화의 어머니는 막내인 최은설와 같은 길을 걸어왔을 터.
“할미가 걱정됐겠지.”
그렇게 말하는 최설윤은 정말이지, 무척 씁쓸해보였다.
“뭐, 어쨌든 오빠는 결혼했고 화백이가 태어났어.”
그리고 최설화는 죽었다.
“언니도 죽었어. 둘이 똑같이 온몸을 난도질당한 채로 죽었더라고. 다행히 화백이는 무사했어.”
최설윤이 잠시 집을 비웠다가 귀가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지하 길드의 소행인 게 분명했지. 오빠에게 있어 적은 그 자식들 뿐이었으니까.”
그 후로 최설윤은 최은설을 찾는 걸 포기하고, 지하 길드를 쫓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할미를 찾는 건 그전에 포기한 것 같아.”
왜일까?
마치 그렇게 묻는 것 같아 담담히 대답해 줬다.
“탈이 지닌 힘 때문이겠죠.”
유랑단의 아홉 탈은 탈을 얼굴에 쓰는 순간 존재를 흐릿하게 만든다.
최설윤이 내 대답에 픽 웃었다.
“그래, 맞아. 망할 탈쟁이 새끼들한테는 그런 힘이 있었지? 깜빡 잊고 있었네.”
그녀는 꽤 피곤해 보였다.
지금 보니, 며칠 잠을 자지 못한 몰골이었다.
“언니, 이제 그만 돌아가서 쉬는 게 어때요?”
“아니, 아니야.”
최설윤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그래요.”
최설윤은 위태로워보였다.
“화백이 오빠가 있잖아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화홍이 오빠와는 다르게, 결혼도 못 한 화백이 오빠를 두고 멀리 떠날 생각은 아니시죠?”
내 말에 최설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안심하렴. 절대 그럴 생각은 아니니까. 나는 그저.”
최설윤이 말을 잠시 멈췄다가 옅게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리사한테 털어놓고 싶었어. 또한, 말해 주고 싶었단다.”
“무엇을요?”
“너희 가족을 잘 지키라고.”
다정하게 목소리를 내뱉으며 최설윤이 말을 이었다.
“너로 인해 만들어진 울타리잖아.”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각성, 그 후』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터.
“윤사해 길드장이 리오도 리타도, 그리고 너도 안간힘을 내며 밀어내려고 했을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최설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야기였다.
“아주 그냥 그 뒤통수를 때려 주고 싶었는데, 리사, 네가 먼저 아빠한테 다가가 두 팔을 벌리더라고.”
최설윤은 말하면서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릴 적. 아버지와 오빠에게 최은설을 그만 박해하라고 말하지 못한 자신과 다른 행보가 부럽다는 듯이.
최설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두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