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가족이란 이름(2)
나를 질책하거나 탓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동생이 아홉 탈 중 하나인 할미라는 것. 그 탈쟁이 새끼라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였다.
최설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리사, 알고 있었나 보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설윤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묻는 것 같아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세상이랑…….”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세상이 말해 줬어요. 금강산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정확히는 싸웠을 때지만.
“그때, 할미의 눈을 돌리기 위해 아래아를 습격한 거라고 했거든요.”
도윤이와 단아.
할미가 그 두 사람을 노리는 것을 알게 된 저세상은 그녀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아래아를 습격했다.
이유는 하나.
“그래서 알았어요.”
할미와 최설윤이 혈연으로 이뤄진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각성, 그 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었다.
그야, 최설윤은.
‘할미와 함께 죽었으니까.’
그녀를 쓰러뜨린 후, 최설윤은 입은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이 사실은 혈연 관계였다니.
『각성, 그 후』에서 할미가 최설윤과 싸울 때, 왜 그렇게 주저하며 피하고자 했는지 이해가 됐다.
뭐,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소설’인 이야기가 됐지마는.
“그렇구나.”
최설윤이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고는 픽 웃었다.
“리사에게 부끄러운 사실을 들켜 버렸네.”
“아니에요.”
다급하게 손을 내젓고는 말했다.
“잘못한 건 할미잖아요.”
“그렇지.”
최설윤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한 건, 할미. 내 동생이지.”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설아야.”
“네?”
“할미의 이름.”
그렇게 말하며, 최설윤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최은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지어 준 이름이지.”
최설윤이 푹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고는 내게 물었다.
“리사한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최설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지금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
최설윤은 『각성, 그 후』에서 내 최애도 차애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겨 읽은 소설의 등장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고마워, 리사.”
최설윤이 애써 싱긋 웃고는, 곧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둔 것 같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기 시작했다.
***
“어머니! 어머니, 안 돼요!”
“여보! 여보, 제발……!”
“어머니! 아악! 어머니!”
가족의 울부짖음 속에서 최설윤은 살짝 물러나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핏덩이를 품에 안은 채로 말이다.
이름은 최은설.
‘윤아, 네 동생의 이름은 은설이야. 최은설. 앞으로 네가 동생을 잘 지켜줘야 해.’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출산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최설윤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동생을 낳았다면 어머니는 살 수 있었을 거다.
그러지 못하게 막은 사람은 바로 아버지.
자신의 집안은 대대로 조산사의 손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전통을 어머니께 강요한 아버지였다.
‘미워.’
최설윤이 두 눈에 차오른 눈물을 애써 삼킬 때였다.
“아우.”
핏덩이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설윤이 놀라 아이를 쳐다봤다.
“아.”
붉은 눈이었다.
자신과 오빠, 그리고 아버지와 죽은 어머니와도 같은 붉은 눈.
“……설아.”
최설윤이 어머니가 죽기 직전 지은, 동생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싱긋 웃었다.
“안녕, 설아.”
동생의 붉은 눈은, 자신과 오빠. 그리고 아버지의 것보다 어머니의 것을 더 닮아 있었다.
그래 봤자 붉은 눈인데 왜 그렇게 느끼는 건지.
최설윤은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동생과 이마를 맞대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썩 꺼져라!”
최은설은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존재라며 아버지에게 외면을 받게 됐다.
와장창!
깨진 자기가 아이의 발에 상처를 만들었다.
“내 눈 앞에서 썩 꺼져!”
벼락같이 내리치는 목소리에 최은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내달린 건 바로 최설윤이었다.
“언니.”
“괜찮아?”
최설윤이 아버지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동생의 발을 치료해 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아버지한테 다가가지 말라 했잖아.”
“그치만.”
“그치만은 무슨 그치만이야.”
최설윤이 아프지 않게 최은설의 이마에 딱밤을 먹이고는 말했다.
“앞으로 아버지한테 가려면 언니랑 같이 가.”
그럼, 적어도 이렇게 다칠 일은 없을 테니까.
최설윤이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는 동생을 안아 들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어머니 산소!”
“그럼, 어머니 보러 갈까?”
“응!”
최은설이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설윤 역시 마주 웃어 주며 어머니의 산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오빠.”
삼남매 중 첫째.
최설윤과 최은설의 오빠 되는 최설화가 가만히 둘을 쳐다봤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윤아.”
최설화가 부른 건, 둘째인 최설윤 뿐이었다.
최은설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그는 첫째 동생을 부르며 물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설아가 어머니 산소에 오고 싶어 해서 왔어.”
“그래?”
그제야 최설화의 눈이 최은설에게 닿았다. 최설화가 물끄러미 제 둘째 동생을 보다 중얼거렸다.
“염치도 없지.”
최은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오빠!”
최설윤은 분노했다.
“설아도 오빠 동생이야!”
“그래. 내 동생이지.”
최설화가 아무렇지 않게 답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마.”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최설윤이 그 뒤를 날선 눈초리로 노려보다, 최은설에게 말했다.
“설아. 오빠의 말은 신경 쓰지 마. 성격 더러워서 그래.”
“으응.”
최은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활짝 웃었다.
“걱정 마, 언니. 아버지랑 오빠가 나 싫어해도 언니가 나 싫어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최설윤이 안타깝다는 듯이 어린 동생을 쳐다봤다.
이렇게 작고 여린 동생을 가족은 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걸까?
왜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났다면서 매도하는 걸까?
“우리, 설아. 언니가 많이 사랑해.”
“나두!”
최은설이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그리고 나, 친구 있어!”
“정말?”
“응!”
최설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은설은 자신의 집안이자, 한국을 떠받치는 대표적인 길드인 ‘아래아’ 내에서도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던 탓이다.
아래아의 길드원들이 알게 모르게 동생을 챙겨 준 건가?
최설윤이 그런 생각을 하며 기쁘게 물었다.
“어떤 친구인데? 언니한테 말해 줘! 아니, 나중에 소개시켜 줘!”
“우웅! 근데, 내 친구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언니한테 얼굴을 안 보이려고 할지도 몰라.”
최은설이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안 외로워! 언니가 학교에 가도, 어쩌다 나 혼자 이곳에 남게 되어도 친구들이 곁에 있어 줘서 외롭지 않아!”
“다행이야, 정말.”
최설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
“동생이 말한 그 친구들이 ‘사령’이란 존재인 것을 아버지가 죽은 후에 알게 됐지.”
과거의 회상에 잠겨있던 최설윤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한테 말해 주더라고. 동생이 지니고 있는 붉은 눈은 우리의 것과는 다르다고. 그 눈은 귀신을 볼 수 있는 눈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죽으면 죽여라.
“아버지는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는 눈을 감으셨어.”
아버지란 인간이, 제 자식에게 또 다른 자식을 죽이라고 유언을 남기라니.
‘막장이네.’
콩가루 집안이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의 유언따위 아주 가볍게 무시했어.”
어차피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건 자신뿐이었으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은 정말 이상해지기 시작했어.”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허공에 대고 말을 걸거나, 아님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리거나.
“다들 정신 병동에 가두자고 했지. 그게 아니라면 힐러를 불러 한 번 보게 하자고 하거나.”
그래서 결국, 최설윤과 최은설의 오빠인 최설화가 나섰다.
“힐러를 불러 먼저 보게 한 후, 이후 차도가 없으면 정신 병동에 그냥 가두기로 했지.”
그에 할미의, 아니. 최은설의 의견따위 없었다.
“나는 반대했어.”
하지만 최설화는 첫째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둘째 동생을 정신 병동으로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힐러도 부르지 않았더라고.”
그냥 정신 병원으로 보내 버린 거다.
“동생이 어떠한 스킬을 각성했을 수도 있는데.”
그때, 최은설은 열일곱.
각성자로 각성할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