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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20)화 (420/500)

420화. 가족이란 이름(1)

한동안 평화로운 날이 지속됐다.

사령의 숲에서 다친 몸 때문에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었지만, 광혜원 덕분에 이제는 그것도 끝.

“바깥 공기 좋다!”

나는 지금 청해진과 함께 귀수산을 순찰하고 있는 중이다.

옆에서 청해진이 고개를 저었다.

“공기는 무슨, 안개만 자욱한데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네.”

“해진이 오빠는 그래서 안 돼.”

검지를 까닥거리고는 말했다.

“일주일 넘게 집에서 감금당하고 있어 봐! 바깥이 얼마나 그리운지 알게 될 걸?”

“오, 일주일. 그 정도면 바깥 공기 좋다고 할만도 하지.”

청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 물었다.

“그런데 윤리사 전 길드장님, 우리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귀수산 순찰 중이잖아.”

“그러니까 귀수산 순찰을 왜 하고 있는 거냐고.”

청해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툴툴거렸다.

“귀수산에서 나올 거라고 해 봐야 귀신뿐인데, 왜 갑자기 순찰이냐고! 순찰을 하려면 바깥에서 해야지!”

청해진이 말하는 바깥이란, 귀수산 바깥.

즉, 서울 시내를 비롯한 다른 곳을 말하는 거였다.

청해진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귀신만 있는 거 아니야.”

“그래, 이 귀신 소굴에 이매망량이 있지. 사야 님이랑 화홍이 형은 아예 여기에서 살림을 차렸고.”

“사야 언니랑 화홍이 오빠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그럼……?”

청해진이 핏기가 가신 얼굴로 내게 물었다.

“우리 말고 누가 또 있어? 여기에? 이 귀수산에?”

겁에 질린 목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 나의 증조할머니 되시는 윤사희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야아! 윤리사! 웃지만 말고 빨리 말해줘! 우리 말고 귀수산에 또 누가 있는데? 나 무서워! 무섭다고!”

울먹이는 목소리에 어깨를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다니까?”

“아오! 윤사해 길드장님은 왜 내게 너랑 귀수산의 순찰을 시켜 가지고!”

“그러게. 아빠는 도대체 왜 해진이 오빠랑 귀수산을 순찰 돌라고 시킨 걸까? 나도 궁금하니까 아빠한테 한 번 물어봐.”

“싫어. 길드장님 무서워.”

청해진이 윤사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일었는지 양 팔을 쓸어내렸다.

청해진이 이매망량에 입단한 지 벌써 5년이 훌쩍 넘어가는데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빠, 그렇게 안 무서운데.”

“너한테나 그러겠지! 아니, 윤리오랑 윤리타한테도!”

청해진이 버럭 소리 지르고는 입을 열었다.

“윤리오랑 윤리타랑 중학교 때에 있었던 일인데, 내가 걔들한테 장난쳤다가 실수로 다치게 만들었거든?”

“장난을 어떻게 쳤는데?”

“그냥, 계단에서 밀었지. 윤리타가 자기 스킬 같은 거 없어도 날 수 있다고 해서 실험해 볼 겸.”

미친 건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얼굴에 멍하니 청해진을 쳐다봤다.

청해진은 내가 보는 것도 모르고, 과거에 잠긴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계단에서 밀었는데, 날기는커녕 그대로 굴러 떨어지더라고. 그런 윤리타를 잡겠답시고 윤리오가 팔을 뻗었다가 같이 구르고.”

윤리오와 윤리타가 중학생 때라면 윤사해가 한창 아들들을 멀리했을 때다.

“뭐,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 윤리오도 윤리타도 둘다 사이좋게 팔이 부러지기는 했지만.”

“크게 다친 정도가 아닌데…….”

“여하튼! 혜원이 누나가 눈 녹듯이 바로 치료해 줬다고! 그런데!”

청해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길드장님이 나를 찾아온 거야!”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말라면서 청해진이 말했다.

“네가 우리 아들들 팔 부러뜨린 놈이냐고 묻는데, 나 진짜 그때 울 뻔 했잖아. 우리 누나 아니었으면 살려달라고 엄청 울었을 거야.”

물론, 그 뒤에 청해솔한테 머리채 잡혔었다며 청해진이 뿌듯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 추억이지.”

추억은 개뿔.

“아빠 성격에 용케 그냥 넘어갔네.”

윤리오와 윤리타의 팔을 사이좋게 부러뜨린 자식인데 말이다.

내 말에 청해진이 멋쩍게 웃었다.

“그야, 나는 그 성격 나쁜 쌍둥이의 하나뿐인 친구였으니까! 지금도 그렇고!”

“아아, 네. 그러셔요.”

“뭐야, 그 애매모호한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청해진이 귀찮게 말꼬리를 잡았다.

한숨을 푹 내쉰 후 그림자를 움직여 청해진을 나무 위에 매달아 버렸다.

“야! 윤리사!”

“나머지 순찰은 오빠한테 맡길게. 이상 없어 보이니 나는 이만 길드로 돌아가야겠다.”

“돌아가기는 뭘 돌아가?! 풀어! 이거 당장 풀라고!”

“오빠 혼자서 풀 수 있잖아. 귀수산의 귀신들한테 잡아 먹히기 전에 알아서 잘 빠져나와. 그럼, 이만.”

“야악! 윤리사아악!”

청해진이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발 빠르게 움직여 길드로 돌아왔다.

당장 윤리오와 윤리타에게 청해진한테 들은 이야기와 관련해서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즘 윤리오는 재활을 끝내고 집과 길드를 오가며 실전 감각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조만간 윤리타와 함께 단둘이서 C급 던전 공략에 들어갈 거라고는 하던데…….

‘윤사해는 걱정하는 것 같았지?’

고작, C급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길드에 도착했고.

“리오 오빠! 리타 오빠!”

쌍둥이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그 둘이 아니었다.

“어머, 리사. 왔니?”

“어…… 최설윤 길드장님……?”

아래아의 최설윤.

며칠 전, 아래아를 돕기 위해 나간 금강산에서 만난 그녀가 이매망량에 와 있었다.

최설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것 같은 윤사해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리사, 순찰은?”

“해진이 오빠한테 맡기고 왔어.”

“같이 돌아야지.”

윤사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그의 옆구리를 최설윤이 쿡 찌르고는 말했다.

“윤사해 길드장, 정말 너무하네! 내가 온다는 소식에 애를 순찰 보낸 거야? 설마, 나랑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 질문에 윤사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긍정의 의미를 뜻하는 대답이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님, 혹시 저를 보러 오신 건가요?”

“응.”

최설윤이 싱긋 웃었다.

“이매망량에 볼 일도 있고, 지난번 사태에 우리 리사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많아서.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좀 나누려고 왔지.”

나보다 키가 큰 최설윤이 무릎을 살짝 굽혔다.

“괜찮을까?”

슬쩍 윤사해를 쳐다봤다.

그는 내가 최설윤과 대화를 나누지 말았음 하는 눈치였다.

하긴, 그러니까 청해진과 귀수산을 순찰하라며 보낸 거겠지. 쓸데없이 말이야.

그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최설윤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대충 예상이 갔으니.

내 대답에 최설윤이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고마워, 리사! 역시 우리 리사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윤사해 길드장보다 린을 더 닮았구나?”

최설윤 길드장님, 실례지만 에일린 리를 닮았다는 말은 제게 있어 욕입니다.

하여튼 나는 물었다.

“자리 옮길까요?”

“그래. 밖으로 나가자.”

이매망량을 벗어나자는 소리였다.

“이봐, 최설윤 길드장.”

윤사해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불렀지만.

“어허, 윤사해 길드장. 걱정 마. 나는 절대 리사한테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최설윤은 막무가내로 내 어깨를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활짝 열린 문에 곧장 서울 시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니 최설윤이 말했다.

“윤사해 길드장이 나를 비롯한 다른 4대 길드의 길드장에게 명패를 줬거든.”

귀수산이 위협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물론, AMO의 주요 인원들 역시 이 명패를 지니고 있지.”

“아하.”

AMO의 사람들이 간혹 보일 때가 있더니, 그런 경우였구나.

“자, 그럼 우리는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하러 가볼까?”

최설윤이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느 낡은 찻집이었다.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곳이었지만 곳곳이 낡아,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은 건물이었다.

“많이 낡았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최설윤이 내 고갯짓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한 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해 주려고 했는데, 주인어른이 거절하시더라고.”

그래서 계속 이 상태라며 최설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 저 왔어요!”

“으응? 설윤이냐?”

“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최설윤이 머리가 희게 센 노인을 향해 아는 체를 하고는 말했다.

“제가 매일 찾는 것으로 두 개 부탁드릴게요. 여기 이 젊은 친구랑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라.”

“나는 우리 설윤이가 못 본 사이에 애라도 낳은 건가 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구만.”

“사장님도, 참! 애는 무슨 애예요? 저한테 애는 화백이로 충분해요!”

최설윤이 너스레를 떨고는 가게의 구석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고즈넉해서 좋지?”

“네? 아, 네. 좋네요.”

가게 내부는 외부와는 다르게 꽤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하게 풍기는 것이 보기 좋았다.

정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장소인 것 같다는 말이었다.

“오빠랑 자주 찾아오고는 했지.”

“오빠분이시라면…….”

“화백이 친부.”

최설윤이 픽 웃었다.

“어느 날, 웬 핏덩이를 데리고 집에 온 거 있지? 자기 아들이라고.”

그 이야기를 끝마치기 무섭게 원형 테이블 위에 다과와 함께 찻잔이 두 개 놓였다.

최설윤이 찻잔을 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가 죽었어. 다름 아닌, 내 동생의 손에.”

그녀의 붉은 눈이 곧 내게 향했다.

“내 동생은 유랑단의 아홉탈 중 하나, 할미야. 바로 네가 잡은 탈쟁이 새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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