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할미(2)
최설윤이 떠났다.
할미는, 아니.
최은설은 계속해서 몇 번이고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부르짖었다.
“언니! 언니……!”
목이 쉴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최설윤, 자신의 하나뿐인 언니가 저를 외면했다는 것을.
그뿐만이 아니다.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 할미. 유랑단의 수장이 내게 네 처분을 맡겼다.’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유랑단의 수장마저 저를 버렸다.
‘왜?’
최설윤을 제외한 모든 가족에게 무시와 핍박을 받을 때, 자신에게 ‘탈’을 권유한 자가 바로 수장이었다.
‘아이야, 너는 이런 곳에서 무시를 당할 아이가 아니란다.’
그 따스한 말 한마디에 최은설은 홀린 듯이 유랑단의 수장이 건넨 손을 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신이 그렇게 물을 때, 유랑단의 수장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전혀 모른다.
눈을 가리고 있는 붕대의 아래는 어떤 미소도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그때의 최은설은 알았다.
유랑단의 수장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물은 질문에 기뻐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왜!’
왜 수장은 자신을 버린 걸까?
‘말을 안 들어서?’
아니다.
유랑단의 수장은 자신에게 어떤 명령도 내린 적 없었다.
애초에 수장의 명령을 받는 탈은 이매뿐이었다.
아홉 탈 중에서 공석이 생기면 그는 다른 탈을 찾아 나서 시험을 치러 공석을 메꿨다.
하지만 다른 탈들은 아니었다.
선비는 부탁이란 이름 하에 결국 명령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툴툴거렸지마는.
‘아니야!’
할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지금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나뿐인 가족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저를 외면하고, 유랑단의 수장이 자신을 버리기로 한 것.
“하, 하하…….”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웃음은 곧 처절하기 그지없는 울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할미는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
〖자진했구나.〗
내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AMO가 할미를 유랑단에게 넘겨 버리면 어떻게 하나 했더니,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나 보구나.
〖혀를 깨물었다. 누군가 발견하지 않으면 죽겠군.〗
대도깨비가 할미의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줬다.
아직, 그녀가 죽은 건 아니지만.
‘천지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단순히 혀를 깨문 게 아닐 테지.’
즉, 혀가 잘리도록 깨물었다는 말일 거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리사! AMO에는 무슨 일이니? 설마, 강산에 본부장님께서 너도 부른 거니?”
윤사해를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나를 불렀다고 하면, 우리 최애님께서 당장 죽이려고 하는 눈치였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그냥 나 혼자 온 거야! 아빠 보고 싶어서!”
내 말에 윤사해의 표정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아빠가 집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을 텐데.”
윤사해가 엄하게 말했다.
그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웅얼거렸다.
“그렇지만 내가 잡은 탈쟁이 새끼잖아. 그 새끼가 도윤이랑 단아를 죽이려고 했다고. 만나서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묻고 싶었단 말이야.”
물을 필요도 없이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윤사해는 모를 테니까.’
슬쩍 시선을 들어 윤사해를 보니, 그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좋아.’
속으로 씨익 웃어 주고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를 계속 내뱉었다.
“미안해, 아빠. 내가 너무 주제넘게 굴었어.”
“아니란다, 리사! 그렇게 자책하지 마렴! 아빠가 미안하구나!”
윤사해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빠야말로 미안하구나. 우리 리사가 이렇게 친구들을 생각할 줄이야. 물론, 우리 리사가 친구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횡설수설 내뱉는 말도 잠시, 윤사해가 나를 끌어안고는 어깨를 토닥여 줬다.
“우리 아가, 아빠는 절대 너한테 화를 낼 생각이 아니었단다. 화를 낸 것도 아니야.”
“우응.”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지해가 그런 나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계약자는 절대 적으로 돌리면 안 되겠군.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닥쳐 주세요, 대도깨비님.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천지해가 뭐라고 지껄이든 윤사해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냥 무시하자.’
그렇게 한참을 윤사해의 품에 안겨 있다가 은근슬쩍 물었다.
“할미는?”
그녀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내 질문에 윤사해가 입을 열었다.
“최설윤 길드장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란다.”
윤사해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미안하지만, 윤사해 길드장. 할미와는 조금 전에 대화를 끝냈어.”
최설윤이 웃는 낯으로 등장했다.
“안녕, 리사.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목소리를 보니 정말 괜찮은 모양이네.”
최설윤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웃는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다.
‘할미의 최후를 아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최설윤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응?”
최설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듯 나를 보는 그녀의 시선에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냥. 슬퍼 보여서요.”
“그렇게 보이니?”
최설윤이 픽 웃고는 말했다.
“우리 리사는 눈썰미도 좋지. 그런 점은 아빠가 아닌 네 엄마를 닮아서 다행이구나.”
죄송하지만, 최설윤 길드장님. 제게 있어 엄마를 닮았다는 말은 욕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최설윤은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일 테니 조용히 있기로 했다.
“뭐, 나는 괜찮단다.”
최설윤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리사는 아빠랑 같이 돌아가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AMO의 입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윤사해가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짓말하기는.”
그의 눈에도 최설윤이 꽤 위태로워 보였나 보다.
하지만 나는 윤사해의 말을 듣지 못한 척 배시시 웃으며 그와 팔짱을 꼈다.
“아빠, AMO에서 볼 일 다 끝났음 집으로 돌아가자! 리타 오빠랑 리오 오빠가 나 찾고 있을 거야!”
“응?”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사, 너 설마 리오랑 리타한테 나간다고 말하지 않은 거니?”
“응!”
밝게 웃고는 윤사해를 끌어당겼다.
그런 나를 향해 윤사해가 못 말린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윤리사!”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AMO의 지하, 그곳에 갇혀 있는 할미가 죽은 것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
할미가 갇힌 투명한 유리 감옥. 그 너머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결국 자진하기로 하셨나 보네요.”
이매였다.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하긴, 수장님을 그토록 따랐으니 꽤 충격적이겠죠. 그러게 왜 계속 도깨비의 아이를 노렸나요?”
할미는 흐린 눈으로 이매를 바라보았다.
선비와 똑같이 재수 없는 새끼. 그 재수 없는 새끼가 할미를 향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선물로 당신의 가족에게 기억을 선물해 줬으니 다행이죠?”
할미가 놀란 눈을 보였다.
그녀를 향해 이매가 상냥하게 말을 내뱉었다.
“수장님께서 베푼 안배라는 것을 모르셨나 보네요.”
왜 그런 안배를 베푼 거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수장님이라면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 걸 거다.
‘그래.’
그래야만 했다.
할미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우는 모습에 이매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귀한 광경을 봤네요. 할미님께서 이렇게 우시다니! 뭐, 이제 할미도 아니지만요.”
이매의 손에 할미 탈이 들렸다.
할미는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두 눈을 감았다.
‘언니…….’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제 가족을 떠올리며.
이내 꺼진 숨에 이매가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무표정인 된 그를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여전히 성격이 좋지 않군.”
“아아, 강산에 본부장님.”
이매가 AMO의 강산에를 향해 알은 체를 하며 다시 웃었다.
“그간 잘 지내신 모양이에요.”
“덕분에.”
강산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죽은 할미에게 잠시 닿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군.”
“수장님께 버림받았으니까요.”
“선비는 수장에게 아직 버림받지 않은 모양이고.”
강산에는 선비가 유랑단을 배신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매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가 비딱하게 웃었다.
“여전히 재수 없으시네요.”
“너만 할까?”
강산에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수장께 안부나 전해 주게.”
“잘 전해드리도록 하죠.”
그럼, 이만.
이매가 강산에를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했다.
그렇게 돌아가려는 찰나.
“할미는, 아니. 최은설은 최설윤을 제외한 모든 가족에게 무시와 핍박을 받았다네. 붉은 눈이 재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그들 가족 모두 붉은 눈이었는데 말이지.”
최은설의 눈은 사령들, 즉. 원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랑단의 수장은 그걸 알고서 저 녀석에게 접근했던 거겠지?”
묻는 말에 이매는 답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수장님께 물어 보시죠. 그분께선 당신과 만나는 걸 언제나 고대하고 계시니까요.”
그 말을 남겨 두고 이매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강산에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빤히 보다 몸을 돌렸다.
그렇게 지하에 남게 된 건, 죽은 여인의 몸뚱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