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14)화 (414/500)

414화. 할미(1)

‘왜 이렇게 된 거지?’

할미는 엉망진창인 몰골로 AMO의 감옥 안에서 생각했다.

윤리사의 친구들을 습격해 사령의 숲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대로 죽였어야 했나?’

사령들에게 맡기지 않고, 그들을 직접 제 손으로 죽이는 게 좋았었던 걸까?

그랬다면 윤리사가 그렇게 침착한 상태로 저를 상대하지 않았을 텐데!

할미가 지난날을 후회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피가 맺힐 정도로 말이다.

할미는 아프지도 않은지, 물고 있는 입술을 아예 잘근잘근 씹었다.

‘윤리사……! 윤리사……!’

빌어먹을 도깨비의 애새끼를 진작 죽일 것을! 그랬다면 이런 꼴을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진정하자.’

할미가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씨익 웃었다.

‘수장님께서 나를 꺼내 주실 테니.’

AMO와는 원래 그런 사이였다.

윤리사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을 AMO에 처박아 넣은 거다.

‘나가자마자 복수해 주마.’

할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기어코 실성한 건가?”

윤사해의 목소리였다.

윤사해를 본 할미가 언제 웃었냐는 듯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윤사해!”

그 외침에 윤사해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마치, 할미에게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미는 연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악을 내질렀다.

“죽여 버리겠어! 너도! 네 딸년도! 이곳에서 나가는 그 즉시 죽여 버릴 테다!”

윤사해의 표정이 굳었다.

할미가 저를 죽이겠다고 발악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윤리사.

감히, 저 더러운 입에서 제 딸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윤사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그의 주위로 불길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할미는 그에 코웃음을 쳤다.

“왜? 나를 죽이려고?”

그녀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네 놈은 우리와 AMO의 사이를 알고 있을 텐데?”

“닥쳐라.”

콰앙!

윤사해의 그림자가 할미가 갇힌 감옥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자는 투명한 유리 감옥에 어떠한 흠집도 주지 못했다.

윤사해가 까드득 이를 갈고는 할미를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AMO가 언제까지 너희의 뒤를 봐줄 것 같나?”

AMO에게 있어 유랑단은 ‘필요악’이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아니.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

그들에게 있어서 유랑단은 그런 존재였다.

그 때문에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일 뿐.

유랑단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는 그 즉시, AMO는 그들을 버릴 터였다.

윤사해의 나지막한 경고에 할미가 비아냥거렸다.

“적어도 나까지는 AMO가 보호하겠지.”

키득거리며 웃는 목소리에 윤사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찰나.

“윤사해 길드장.”

할미가 갇혀 있는 곳에 한발 늦게 도착한 최설윤이 윤사해를 불렀다.

“강산에 본부장과 이야기는 끝마친 건가?”

“그러니까 이렇게 온 거겠지?”

최설윤이 싱긋 웃었다.

원래 최설윤은 윤사해와 함께 바로 이곳에 도착해야 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강산에가 그녀를 불렀다.

그 탓에 윤사해 혼자 할미를 보러 와야 했었고, 그녀에게 온갖 비아냥을 받으며 화를 참아야만 했다.

“강산에 본부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온 거지?”

“어머, 윤사해 길드장! 여자들의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물으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윤사해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최설윤을 쳐다봤다. 그에 최설윤이 웃으며 부탁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줄래?”

윤사해는 최설윤을 물끄러미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 남아, 저 망할 탈쟁이와 무슨 대화를 나누려 하는 건지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최설윤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분명 웃고 있는데 말이다.

‘도대체 강산에 본부장과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찬 후 감옥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를 반긴 건.

“아빠!”

하나뿐인 딸, 윤리사였다.

***

윤사해가 윤리사를 만난 그 시간, 최설윤은 유리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할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윤사해의 앞에서 기고만장하게 굴던 할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 숙이고 있었다.

차마 최설윤을 쳐다볼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그 태도에 최설윤이 픽 웃고는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굽혔다.

“할미.”

할미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더욱 아래로 처박을 뿐, 최설윤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최설윤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최은설.”

갑작스럽게 불린 이름에 할미가 흠칫 몸을 떨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내 마주친 붉은 눈에 그녀가 파르르 입술을 떨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언니.”

할미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나를 기억해?”

묻는 목소리에 최설윤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기억하지.”

사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할미를, 아니. 자신의 동생을 기억하는 순간은 오직 가족사진을 볼 때뿐이었으니.

가족사진에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최은설의 존재는 아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최설윤이었으나.

‘유랑단의 수장이 그러더구나. 할미의 처분은 네게 맡기겠다고.’

‘저한테요? 그보다, 유랑단의 수장과는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나누신 거죠?’

‘그와 관련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아 줬으면 하는구나.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테니. 그보다 할미를 어떻게 하겠니?’

강산에와의 대화로 최은설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최설윤은 자신의 아버지와 오빠를 죽인 후, 소식을 알 길이 없어진 그녀를 왜 지금 와서 떠올린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을 마주 본 지금, 최설윤의 모든 의문은 풀렸다.

“탈이었구나.”

그래서 계속 동생에 대해 잊어버린 거였다.

더욱이, 할미는.

“왜 아래아는 건드리지 않는 건가 싶었더니.”

아래아의 앞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 탈이었다.

자신들과 얽히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 건가 보지.

최설윤은 안일하게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멍청하게도.’

최설윤이 주먹을 꽉 쥐고는.

“왜 그랬니?”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토해 내며 자신의 동생에게 물었다.

“아버지랑 오빠를, 도대체 왜 죽인 거니?”

“지금 그게 중요해?”

“……뭐?”

최설윤이 멍하니 물었다. 최은설은 그저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언니가 나를 기억하다니! 할미 탈을 받은 순간부터 영원히 나를 잊은 줄 알았는데!”

최은설이 황홀한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수장님께서 나를 귀애하셔서 이리된 거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언니가 나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

최설윤은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며 주절대고 있는 동생을 황망하게 쳐다봤다.

지금, 이 순간. 최설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동생이 미쳤다는 것을.

또한, 자신의 동생이 정말 ‘할미’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현실을 말이다.

“……최은설.”

아니.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 할미.”

최설윤이 동생의 이름을 고치고선 입을 열었다.

“유랑단의 수장이 내게 네 처분을 맡겼다.”

최은설의 두 눈이 떨렸다.

“수장님께서? 언니한테?”

이내 그녀가 물었다.

“왜? 혹시, 수장님께서 언니한테 탈을 권유한 거야?”

“무슨, 미친!”

“잘됐네! 누구 탈을 건넸어? 선비인가? 하긴, 그 새끼겠지! 유랑단을 배신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수장님께서 드디어 그 자식을 내치기로 결심한 거야!”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조잘거리는 동생의 목소리에 최설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한없이 착하고 예뻤던 동생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건, 광기에 사로잡힌 ‘할미’일 뿐.

최설윤이 주먹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두 번 다시 너를 찾아오지 않을 거야.”

“뭐?”

“내가 네게 내리는 처벌은, 철저한 외면이니.”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최은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나를 외면해? 나를 기억하고 있으면서 도대체 왜? 내가 아버지랑 오빠를 죽인 것 때문에 그래? 그건 어쩔 수 없었어!”

“그래야만 유랑단의 수장한테서 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최설윤이 일그러진 얼굴로 동생을 다그치며 물었다.

“그깟 탈이 뭐가 좋다고!”

왜 가족을 죽인 걸까?

“너 때문에 화백이는, 네 조카는 고아가 되어 버렸어.”

“그래서?”

최은설의 두 눈에 음영이 졌다.

“걔가 고아가 됐든 말든 내가 알 게 뭔데?”

“최은설!”

“언니는 몰라!”

최은설이 한없이 구겨진 얼굴로 새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수장님과 언니뿐이었어! 아버지도, 오빠도 모두 나를 무시했다고! 모자란 년이라고 취급하며, 덜떨어진 자식이라 욕하며 나를 무시했었다고!”

그 때문에 죽였다.

가족의 무시와 핍박 속에서 자신을 인정해 준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하라 시켰으니.

“그래도 언니는 안 죽였잖아? 화백인가? 오빠의 아들이란 새끼도, 내 조카란 녀석도 안 죽였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최설윤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제 동생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언니?”

최은설이 멍하니 물었다. 이내 그녀는 멀어지는 최설윤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며 물었다.

“어디 가? 어디 가냐고!”

최설윤은 들려오는 목소리를 모두 무시하며 묵묵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언니!”

처절한 외침이 뒤를 울렸지만, 최설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