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다시, 사령의 숲(5)
‘미친 건가?’
할미는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윤리사를 보며 경악했다.
가시 돋친 줄기에 살갗이 찢기고 있건만.
‘멈추지 않아?’
점점 가까워지는 윤리사를 보며 할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쳤구나?!”
새된 욕이 튀어 나갔다.
분명 자신의 거친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윤리사는 멈추지 않았다.
‘왜?’
할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윤리사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 거냐고.
자신의 팔을, 다리를.
드러난 모든 살갗을 찢고 있는 가시가 아프지도 않은 거냐고.
하지만 할미는 그렇게 묻는 대신,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윤리사와의 간격이 너무 좁혀진 탓이다.
‘이 내가 도망이라니!’
아니, 도망이 아니다.
잠시 거리를 벌려 다시 윤리사를 공격하기 위해서 조금 뒤로 물러나는 거다.
할미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일 때였다.
“무서워?”
윤리사가 도발하듯 물었다.
다시 멀어진 거리였음에도 할미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분노하며 소리쳤다.
“무섭기는 누가 무섭다고!”
할미의 아래에서 돋아난 가시 줄기가 윤리사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어?’
윤리사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여유가 만만한 그 모습에 할미의 두 눈이 떨렸다.
도대체 왜?
‘왜!’
저 망할 녀석은 웃고 있는 걸까?
이 자리에서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건가?
‘정말?’
할미가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죽여 버리겠어!”
할미의 외침과 함께 사령들이 울부짖으며 윤리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것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윤리사는 외쳤다.
“천지해!”
대도깨비가 그녀의 위에 나타나선 빛을 터트렸다.
〖내 계약자께서는 참으로 말을 듣지 않는 아해구나. 나의 이름은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했건만. 어찌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건지.〗
투덜대는 목소리에 윤리사는 그저 웃으며.
“잡았다.”
코앞에 있는 여자를 향해 창을 휘두를 뿐이었다.
***
촤아악―!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크윽!”
할미가 가슴 부근을 부여잡고서 주저앉았다. 동시에 그녀가 불러낸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제야 상처 입은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 역시 할미와 똑같이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참자.’
스스로에게 안 아프다는 주문을 걸며 마음을 다스렸다.
“빌어먹을……!”
할미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피를 토해 내며 나를 쏘아봤다.
“저주한다! 너를 저주해!”
“마음껏 해 봐.”
싱긋 웃어 주며 말했다.
“당신이 몇 번이고 저주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을 테니까.”
지금처럼 말이다.
내 말에 할미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잘난 척하기는! 하긴, 그러니까 그 망할 새끼랑 부대끼며 살아온 거겠지!”
그 망할 새끼라면…….
“저세상?”
저세상의 이름에 할미가 웃음을 뚝 멈췄다. 그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설마, 저세상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야?”
“그래!”
할미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는 날 선 목소리를 토해 냈다.
“도깨비의 새끼가 수장님의 곁에 붙어서는 예쁨 받고 있는데, 내가 배알이 꼴리지 않겠니?”
그래서 나를, 내 친구들을 노린 거란다.
“너희를 죽여 버리면 그 자식의 얼굴이 꽤 볼만해질 것 같았거든!”
할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수장님께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은 나야! 나라고! 하지만 수 년을 묶여 지냈어! 망할 각시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붉은 눈이 일그러졌다.
“제물로 바쳐졌어야 하는 네가 도망쳐서!”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는.
쫘악!
그녀를 내리쳤다.
할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게 맞은 것에 두 눈을 끔뻑이다 멍하니 물었다.
“지금 나를 때렸어?”
할미의 두 눈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를 보며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머리를 박으면서, 당신 잘못을 뉘우치도록 해.”
“하! 내가 그따위 말을 들을 것 같아?!”
라고 말한 것과는 다르게.
쿵!
할미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S, 숙련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가 발동됩니다.】
【적용 대상은 ‘할미’입니다.】
<[S, 숙련불가] 내 말이나 들어라!>의 스킬 효과 덕분이었다.
쿵! 쿠웅―!
할미는 몇 번이고 머리를 박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할미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올 때에 말했다.
“그만.”
머리를 박으려던 할미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주…… 죽여 버리겠어…….”
금방에라도 기절할 듯, 그녀의 두 눈은 흐리멍덩했다.
그럼에도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내뱉는 건 잊지 않았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굽혀 앉고서는 말했다.
“당신은 유랑단의 수장한테 결코 사랑받을 수 없어.”
초점이 흐려지던 그녀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입을 열었다.
“유랑단의 수장에게 있어 당신은 쓸 만한 카드일 뿐이거든.”
할미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탈을 쥐어 준 유랑단의 수장을 미워할 수가 없어 이러는 것 뿐.
“당신의 처우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한테 맡길 거야.”
“뭐……?”
할미가 던진 질문에 나는 말없이 미소를 그려 주고는 발을 들어.
퍼억!
그녀를 걷어차 버렸다.
발길질 한 번에 할미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사령의 숲이 무너졌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쉰 후, 천지해를 보며 ‘V’를 그렸다.
“잘했죠?”
〖잘했기는 무슨.〗
천지해가 짧게 혀를 찼다.
〖네 아비가 지금 네 모습을 본다면 아주 경을 칠 거다.〗
“그렇게 엉망이에요?”
〖그래.〗
천지해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너는 아프지도 않으냐?〗
묻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아파요.”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할미의 가시 줄기에 의해 몸 곳곳이 긁히고 찢긴 상태였으니 말이다.
철철 흐르는 피에 나 역시 기절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도 멋지게 쓰러뜨렸잖아요.”
할미의 옆에 털썩 앉고는 배시시 웃었다.
사령의 숲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바깥 풍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아빠!”
CW의 진달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윤사해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마주친 시선에 나는 활짝 웃었다.
윤사해의 보랏빛 두 눈에 이채가 감도는가 싶더니.
“리사……!”
이내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
이매망량의 윤리사가 유랑단의 아홉탈 중 하나인 ‘할미’를 쓰러뜨렸다.
“정말 대단해!”
아래아의 최설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지하 길드 쪽에서 지금 무슨 말이 나오고 있는지 알아?”
“관심 없다.”
윤사해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심기는 무척 좋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사로잡은 탈이 AMO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리라.
최설윤이 잔뜩 뿔이 난 그의 모습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윤사해 길드장! 얼굴 좀 풀지?!”
“시끄럽다. 그보다 자네는 왜 온 거지? AMO에 따로 볼 일이라도 있나? 있다면 이만 그 일을 보러 꺼져 줬으면 하는데.”
날카롭게 내뱉는 목소리에 최설윤이 싱긋 웃었다.
“AMO에서 불렀어.”
“강산에 본부장께서 자네 역시 부른 건가?”
“정확히는 리사가.”
“뭐?”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하나뿐인 딸, 윤리사는 지금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할미에게 당한 상처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광혜원에 의해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윤사해는 아이에게 절대 안정을 권했다.
윤사해는 물었다.
“여기에서 우리 리사 이름이 왜 나오지? 자네, 설마 아픈 애를 잡고 허튼 짓을 벌인 건 아니겠지?”
“윤사해 길드장! 나를 도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
최설윤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픽 웃고는 말했다.
“리사가 할미를 만나 보라고 하더라고.”
“흐음?”
윤사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궁금하다는 듯 최설윤을 봤지만.
“윤사해 길드장이 그렇게 봐도 알려 줄 수 없어! 여자들만의 비밀이니까!”
최설윤은 웃으면서 말했다.
윤사해가 그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여자들만의 비밀이고 자시고, 나는 리사의 아버지야.”
“아이고, 그러세요? 저는 그럼 우리 화백이의 고모랍니다?”
유치한 반격에 윤사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에 최설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티격태격거리던 두 사람이 곧 걸음을 멈췄다.
“윤사해 길드장, 최설윤 길드장. 두 사람 모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AMO의 본부장인 강산에.
그녀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강산에가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웃으면서 말했다.
“자, 그럼 윤리사 전 길드장께서 잡아 온 할미를 보러 갈까?”
묻는 말에 윤사해와 최설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