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다시, 사령의 숲(2)
“도윤아! 단아야!”
타앗!
가볍게 착지한 후, 친구들을 급히 살폈다,
“두 사람 다 괜찮아?”
도윤이와 단아가 다급하게 묻는 내 질문에 말했다.
“응, 괜찮아.”
“아니야! 안 괜찮아!”
두 사람의 대답이 엇갈렸다.
누구 말이 맞는 거지?
당황하여 두 눈을 끔벅이는 찰나 빨갛게 부어오른 발목이 보였다.
“도윤아, 너……!”
도윤이가 내 말에 어색하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기는!”
부러지기라도 한 건지, 부어오른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저씨!”
내 다급한 외침에 하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윤이와 단아가 하현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생겼다.”
도윤아, 지금 그 말이 나오니?
단아는 두 눈을 데굴 굴리기만 했다.
도윤의 상태를 보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말했다.
“도윤이랑 단아부터 먼저 밖으로 옮겨 주세요.”
“당신은요?”
“할미 새끼 족쳐야죠.”
그 말에 하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할미가 어디 있는 줄 알고요?”
“어디에든 있겠죠.”
저세상은 말했다. 할미가 나를 노리고 있다고.
당장, 도윤이와 단아를 사령의 숲에 데리고 온 것도 나를 노려서일 거다.
“당신 혼자서는 힘들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천지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이 몸이 있으니.〗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을 해칠 수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하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네에, 뭐. 잘해 보십시오.”
하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단아와 도윤이를 안아 들었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단아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얌전히 계십시오. 그렇게 움직였다가는 이동 중에 팔이나 다리 중 하나가 날아갈 겁니다.”
하현의 협박에 단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제 친구 협박하지 마세요.”
“주의를 준 것뿐입니다.”
하현이 그렇게 말하고는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잠깐! 윤리사!”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인사해 줬다.
“밖에서 보자.”
“야! 윤……!”
단아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령의 숲을 벗어나자마자 저 아해가 네게 화를 낼 것 같구나.〗
“그렇겠죠.”
천지해의 말에 담담하게 대꾸해 주고는 말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을 말려들게 할 수는 없어요.”
〖네 친구들은 네가 말려들었다고 생각할 텐데?〗
“그런 오해야 나중에 풀어 주면 되고요.”
〖아해야.〗
내 대답에 천지해가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오해가 계속 쌓이면 암만 풀어 보려고 해도 소용없을 거다.〗
“그러니까 사령의 숲에서 나오자마자 말하겠다는 거잖아요.”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말이다.
“지금 도윤이와 단아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시간 따위 없었어요.”
할미의 숲에 있는 사령들이 언제 친구들의 몸을 빼앗으려고 할지 모르니.
―우으……!
―아, 아이… 새, 새로운 몸……!
―흐흐흐흐!
―가, 같이 놀자아!
―놀자아……!
오싹하게 소름이 이는 목소리와 함께 사령들이 몰려들었다.
“오랜만이네.”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창을 꺼내 쥐었다.
어릴 적에야 저것들을 피해 저세상과 함께 달아났다고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성불시켜 주마.”
몸을 빼앗겨 악령이 된 것들을 향해 땅을 박차 날아올랐다.
***
쿠궁―!
우레와도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난데없이 소나기가 쏟아지는 중에, 현실로 돌아온 백도윤과 한단아는 허망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밖에서 보자.’
웃는 낯으로 인사를 남긴 친구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한단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윤리사는 자신과 백도윤을 먼저 대피시켰다. 함께 몸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답해 줄 사람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윤리사, 이 바보……!”
한단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단아야.”
백도윤이 그런 한단아를 조심스럽게 부를 때였다.
“한단아, 이 녀석아!”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태극이 뛰어왔다.
“할배?”
한단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고, 이 녀석아!”
한태극이 한단아를 꼭 끌어안고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다!”
한태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게야?! 몸은 또 왜 이렇고! 어떻게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
“없기는! 나 멀쩡한데!”
“말은 잘 하지!”
한태극이 그렇게 성을 내며 한단아의 이마에 딱밤을 또 먹였다.
“아프다니까?!”
한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지만 그녀는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한태극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 할배, 울어?”
한단아가 놀라 물었다. 한태극이 황급히 눈물을 닦는 찰나.
“도윤아!”
백시준이 류화홍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백도윤이 놀라 그를 불렀다. 백시준은 곧장 아들을 안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그 말에 한단아가 외쳤다.
“거짓말이에요! 백도윤, 쟤 다리 다쳤어요!”
“다리가 아니라 발목!”
“그거나, 그거나!”
백도윤이 다급하게 한단아의 말을 정정했지만, 그녀는 혀만 날름거렸다.
말을 들은 백시준이 아들의 부상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하나뿐인 아들을 이렇게 만든 작자를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어 하는 그 험악한 표정에.
“아빠…….”
백도윤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백시준이 다정하게 웃었다.
“미안해, 우리 아들.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백도윤의 얼굴이 서글프게 일그러졌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령의 숲이 무서웠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리사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뭐?”
백시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태극 역시 마찬가지.
이제 보니 자신들에게 소식을 알려 줬던 윤리사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 리사가 혼자서 할미를 처리할 모양이군.”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시준이 입을 열었다.
“사해야.”
<[S, 숙련 불가] 장승 행차>를 통해 CW 몰에 도착한 그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랑야.”
〖왜?〗
“우리 딸이 있는 공간을 열어 줄 수 있겠나?”
〖글쎄다.〗
랑야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뺨을 긁적였다.
〖대도깨비님이 계시는 곳이라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그 말에 윤사해가 고개를 돌렸다.
“이봐, 너.”
그가 가리킨 사람은 하현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 이름은 하현입니다.”
“그래, 너.”
윤사해가 하현의 말을 간단하게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딸이 있는 곳까지 안내를 부탁하고 싶은데.”
날카롭게 빛을 내는 눈에 하현이 혀를 찼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제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하현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할미가 제 침입을 알아차렸던 모양인지, 공간을 아주 닫아 버렸거든요.”
사실 하현은 윤리사의 친구들을 바깥으로 옮겨다 준 직후, 다시 사령의 숲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막히고 말았다.
“당신 따님께서 스스로 공간을 부수고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님 당신의 도깨비가 그 공간을 부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 망할 탈쟁이였던 놈이 태연스럽게 잘도 말한다 싶었다.
“랑야, 대도깨비님께 네 말을 전할 수 있겠나?”
랑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윤사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윤사해는 제 딸이 할미의 숲에서 무사히 나오기를 얌전히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꼭 쥐고서는.
파아아앗!
그림자를 방출해, CW 몰 내의 여러 공간을 부수기 시작했다.
“저 미친 도깨비가?!”
〖야! 윤사해!〗
“사해야, 너 미쳤어?!”
각기 다른 목소리가 기겁하며 그를 불렀지만, 윤사해는 조용히 CW 몰을 부술 뿐이었다.
이곳 어딘가에 펼쳐져 있을 할미의 공간을 부수기 위해.
***
쩌적―!
붉은 하늘에 금이 갔다. 사령의 숲이 부서지려는 징조였다.
〖누가 밖에서 공간을 깨뜨리려고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누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천지해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와락 눈가를 찡그렸다.
저 능글맞은 대도깨비가 바깥의 일을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모양인지, 천지해가 억울함을 주장했다.
〖정말 모르니라.〗
“네네, 믿을게요.”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이곳에서 할미를 찾는 거니까.
크게 숨을 내쉰 후 내뱉으며 소리 질렀다.
“야, 이 빌어먹을 탈쟁이 새끼야! 여기 있는 거 아니까 나오라고! 네가 노리는 거 나잖아!”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사령의 숲을 울렸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내 기세에 사령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날 정도였다.
그에 천지해가 키득거렸다.
〖내 계약자께서는 목소리 한번 우렁차시지.〗
“시끄러워요.”
대도깨비의 입을 그렇게 다물게 만드는 찰나.
“나 참, 여전히 시끄럽고 무례한 아이란 말이지?”
할미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