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다시, 사령의 숲(1)
나는 크게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차갑게 식은 머리에 갖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털어 냈다.
떠오르는 생각들 모두 하나같이 부정적인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도윤이랑 단아는 괜찮을 거야.’
내가 갇혔던 때와 같이 어린 나이라면 몰라도, 그 두 사람은 18살의 고등학생이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 비나리 고등학교의 학생들.
‘그러니까 괜찮아.’
도윤이와 단아라면 분명 서로를 지키며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을 거다.
그때였다.
〖이제 좀 진정이 됐느냐?〗
천지해가 돌아왔다.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는 정말 순식간에 귀환했다.
“랑야 님은요?”
〖네 말에 따라 찾고 있다.〗
랑야에게 제대로 말을 전해 주긴 한 모양이다. 천지해가 모습을 줄이고는 내 어깨에 앉았다.
〖예전에 찾아본 적 있는 공간이라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랑야가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로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사령의 숲을 찾아낼 테니.
‘윤사해한테는 미리 연락을 하는 게 좋을까?’
나 혼자 들어간다고 하면 걱정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연락을 하자니, 백시준이 걱정됐다.
그라면 나와 함께 사령의 숲에 들어가겠다니 뭐니, 난리를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할미에 잡혀갔다고 하니 걱정이 될 만도 했지만.
‘백시준은 약해.’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특수 스킬] : Delet>는 유용했지마는.
‘그러다 죽으면?’
곤란했다.
아니, 곤란함을 넘어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애초에 백시준이 『각성, 그 후』에서 어쩌다 죽음을 맞이해 등장하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조심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윤사해한테는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누구?’
류화홍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지만, 고개를 저었다.
유부남인 그였다.
그의 아이들인 류사하와 류홍랑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위험한 일을 피하는 게 좋았다.
‘내가 공간계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런 고민따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그때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선비!”
얼마 전까지 유랑단에 소속되어 탈쟁이로 나를 몇 번이고 농락한 그였다.
그래, 이제는 이운조와 함께 살고 있는 그가 있었다.
당장 이운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언니? 혹시 선비랑 같이 있어요?”
―선비? 하현을 말하는 거지?
“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을 것이지!
“아저씨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리사, 하현은 물건이 아니야.
“어쨌든요!”
이운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네 친구들 때문에 그러는 거지?
도윤이와 단아의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하긴, 이운조는 정보에 있어 누구보다도 빨랐으니.
여하튼 나는 대답했다.
“네, 부탁 좀 할게요. 아무래도 도윤이와 단아가 할미의 숲에 잡혀간 것 같거든요.”
―할미의 숲이라니.
내 말에 이운조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사령의 숲은 위험한데.
“그러니까 아저씨의 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 알겠어.
이운조가 대답하고는 외쳤다.
―야! 하현! 일어나!
―뭡니까……?
졸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비 새끼는, 아니. 하현은 이운조의 곁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와 같은 탈쟁이 때문에 나는 근심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초조해 미칠 지경인데 말이다.
뭐, 이게 하현의 잘못은 아니니 나는 말했다.
“그럼, 언니. 주소는 메시지로 보내 놓을게요.”
―응, 알겠어.
그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작게 숨을 내쉰 후, 내가 있는 곳의 주소를 보냈다.
그때였다.
〖오, 아해야. 랑야 녀석이 찾아낸 모양이구나.〗
“네?”
〖그 할미의 숲이란 곳 말이다.〗
천지해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어디에요? 말해 주세요!”
나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CW 소유의 백화점이었다. 정확히는, 백화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아울렛 몰.
문제는, 이곳은.
“생일 파티했던 곳이잖아.”
어릴 적, 할미에게 납치를 당한 바로 그 장소라는 거였다.
주먹을 꽉 쥐었다.
‘악질이야.’
새삼스레 생각했다.
선비는 탈쟁이들 중에서 상냥한 축에 속했다는 것을.
“오랜만에 오는군요.”
느닷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림자를 움직였다.
“리사! 무슨 짓이야?!”
이운조가 다급하게 그것을 막아 내며 소리 질렀다.
그제야 내게 말을 건 사람이 선비, 아니. 하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미안해요.”
하현을 위협했던 그림자를 거두고는 사과했다.
“지금 많이 예민한 상태거든요. 도윤이랑 단아 때문에요.”
“뭐, 이해는 하지만.”
이운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현은 그 일과 아무 상관 없어. 집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고.”
“집안일도 했습니다.”
“그래, 집안일하고 퍼질러 잤지.”
이운조가 하현과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리사, 네 친구들. 여기에 있나 보네?”
이운조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에 할미의 공간이 펼쳐져 있는 모양이에요.”
“흐음.”
이운조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하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일해.”
“안 그러도 탐색 중입니다.”
하현의 금안이 빛을 내고 있었다.
〖탐나는 눈이구나.〗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천지해가 내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저렇게 맑게 빛나는 눈은 소장 가치가 꽤 뛰어나지. 옛날이었음 붉은 눈과 함께 비싼 값에 팔려 나갔을 거다.〗
“대도깨비님, 함부로 그런 말씀 마세요.”
〖어차피 저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
예민하게 군다니 뭐니 천지해가 툴툴거렸다.
그때, 하현이 말했다.
“찾았습니다.”
사령의 숲이 펼쳐진 공간을 찾아냈다는 말에 두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 공간, 지금 당장 열어 주세요.”
도윤이와 단아.
이제 내 소중한 친구들을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
―우으……!
―아, 아이들… 아이들이다……!
―흐흐흐흐!
―가, 같이 놀자아!
스산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한단아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꺼져!”
콰과과광!
한단아의 주먹질에 광풍이 일며 다가오던 투명한 개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단아야, 너무 그런 식으로 힘을 사용하지 마.”
“시끄러!”
한단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백도윤을 들쳐 업었다.
“내려 줘!”
“다쳤으면 얌전히 안겨 있어!”
백도윤은 한단아를 위협하는 사령들에 맞서 싸우다가 그만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이 상태로는 멀쩡하게 도망칠 수 없다. 한단아는 그런 판단하에 백도윤을 업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내려 달라니까?”
“시끄러워!”
한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입 닥치고 있어! 혹시라도 너는 두고 나 혼자 도망가라는, 그런 말 하기만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
백도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단아는 몰려드는 악에 씐 혼들을 피하며 이를 악물었다.
“할미 새끼, 나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진짜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겠어.”
“그건 AMO 사람들한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살인은 하면 안 되는 짓이니까.”
“내 알 바야?!”
한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바로 그 순간.
―아, 아이야. 예쁜 아이야.
사령이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으악! 시발!”
한단아가 새된 욕을 내지르며 주먹을 들었다. 그렇게 휘두르기 전, 그녀에게 업혀있던 백도윤이 간단하게 불꽃을 피워 냈다.
―끼야아아악!
사령이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그 모습에 한단아가 놀라 굳어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백도윤이 말을 걸었다.
“단아야, 도망쳐야지.”
“아, 맞아!”
한단아는 다시 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백도윤에게 툴툴 거렸다.
“언제는 나보고 함부로 스킬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꽤 급박했으니까.”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한단아가 사령에게 먹혔을 거다. 하지만 백도윤은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았다.
사령에게 먹힌다면, 그건 자신이어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백도윤.”
한단아가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면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충고했다.
백도윤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것도 잠시, 그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미안.”
“사과도 하지 말고!”
한단아가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서 나가자마자 할배한테 탈쟁이 새끼들 다 족쳐 달라고 할 거야!”
한태극은 비각성자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백도윤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단아, 네가 족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시끄러!”
한단아가 버럭 소리 지를 때였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붉은 하늘에 금이 쩍쩍 갈라졌다.
한단아가 백도윤과 함께 도망치는 것도 잊고 자리에 멈춰서서는 위를 쳐다봤다.
“단아야! 도윤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단아와 백도윤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윤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