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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08)화 (408/500)

408화. 좌절(5)

백도윤과 한단아가 실종됐다.

백도윤만 사라졌다면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한단아가 문제였다.

한태극.

차기 대선 주자로 언급되는 그의 막내 손주.

한단아의 실종에 그는 날뛰었다.

“들어온 소식 없느냐! 우리 단아, 그 녀석에 대해 어떠한 정보라도 좋다!”

“의원님, 진정하시고…….”

“진정? 진정?!”

한태극이 분노했다.

“단아, 그 녀석 찾지 못하면 너희 모두 죽을 줄 알도록 해라!”

비각성자임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각성자로만 이루어진 보좌관들이 흠칫 몸을 떨 정도로 말이다.

한태극은 씩씩거리며 목을 죄고 있던 넥타이를 풀었다.

백도윤과 함께 그의 집에서 공부 중이었던 손녀가 사라졌다.

처음, 그 소식을 들은 건 백도윤의 아버지인 백시준한테서였다.

한단아와 공부 중이었을 아들이 집에 없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공부 중에 머리를 식히고자 산책을 나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단아 아가씨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추적 스킬이 있는 보좌관의 말에 한태극은 경악했다.

막내 손녀가 사라졌다니.

납치를 당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제 손녀를 납치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돈?’

그런 거라면 진작 자신에게 연락이 왔어야 한다.

경쟁 정당이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납치한 거라고 해도 마찬가지.

한태극은 소식을 알 수 없는 막내 손녀 때문에 속이 탔다.

‘이러다, 단아. 그 녀석이 잘못된다면…….’

안 돼.

한태극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됐다.

먼저 떠난 아들 부부를 어떻게 보라고.

한태극이 괴로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였다.

“의원님.”

보좌관이 그를 불렀다.

“단아 소식 아니면 꺼내지 말게.”

한태극의 말에 보좌관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한단예 아가씨와 한단이 도련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한단예와 한단이.

두 손주의 이름에 한태극이 침음을 흘렸다. 한단예와 한단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할아버지.

두 손주의 낭랑한 목소리에 한태극이 금방에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괜찮으세요?

한태극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괜찮다. 단아, 그 녀석의 소식을 들은 모양이구나.”

―네, 지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 끊었어요.

“올 거 없다.”

―아니에요.

한단예가 말했다.

―저도, 첫째도 조만간 귀국할 생각이었어요.

그 뒤를 이어 한단이가 말했다.

―미국에서 배울만큼 배웠거든요.

―첫째 말이 맞아요. 그러니까 너무 괴로워하지마세요.

그 말에 한태극이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럼, 할아버지. 나중에 한국에서 봐요.

“그래.”

한태극이 눈물을 훔치고는 말했다.

“셋째, 그 녀석과 함께 마중을 나가마.”

한단예와 한단이.

두 아이가 귀국하기 전에 한단아를 찾겠다는 말이었다.

그에 한단예와 한단이가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한태극이 실소를 터트렸다.

“너희야말로 몸 챙기거라. 오는 동안에 눈도 좀 붙이고.”

―네.

그 대답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비행기 시간이 곧인 듯했다.

“단예와 단이의 비행기 시간이 언제인가?”

“미국 시간으로 곧입니다.”

“셋째 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 표를 끊은 모양이군.”

보좌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극이 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의원님!”

벌컥, 문이 열리며.

“이매망량의 길드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반가운 이름이 들린 건 그때였다.

***

“윤사해 길드장!”

한태극이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며 윤사해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윤사해가 아닌데 말이다.

아무래도 한태극의 보좌관이 그에게 윤사해가 왔다고 알린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매망량의 길드장이라고 소개를 했던가.

‘이매망량의 길드장 자리는 다시 윤사해에게 넘겼는데.’

아직 그 소식이 퍼지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간에.

“안녕하세요, 의원님.”

나는 한태극에게 인사했다.

“너, 너는!”

한태극이 나를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윤사해 길드장은!”

“아빠는 시준이 삼촌이랑 같이 있어요.”

백시준도 적지 않게 놀란 상태였으니 말이다.

혼자 내버려 두면 도윤이를 찾겠답시고, 위험한 곳을 돌아다닐 것 같아 윤사해가 곁을 지키게 됐다.

도윤이가 무사히 돌아온다고 해도, 백시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었으니.

한태극이 내 말에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이매망량의 길드장이 찾아왔다고 하더니!”

“저도 이매망량의 길드장이었으니까요.”

싱긋 웃어 주고는 말했다.

“그래서 단아의 소식은요? 아직 들어온 게 없나요?”

“그래.”

한태극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 앞에 앉았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구나.”

한태극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어디를 간 건지! 단아, 그 녀석이 만약 이대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마세요.”

한태극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목소리를 뱉어 냈다.

더욱이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길한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내 말에 한태극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우선, 의원님은 몸 좀 추스르고 있으세요.”

“너는.”

“당연히 단아랑 도윤이 찾으러 가야죠.”

당장 지금도 둘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랑야와 천지해.

미지 영역의 거주자인 두 도깨비가 나서, 둘의 흔적을 샅샅이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눈도 좀 붙이세요. 나이도 있으신데 몸 챙기셔야죠.”

벌서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쓰러지면 단아가 엄청 화낼걸요?”

손녀의 성질 머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한태극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부탁하마.”

물기 어린 목소리에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아해야.〗

그러기가 무섭게 천지해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태극 앞에서 차분하게 말하던 모습은 집어치우고 곧장 다급하게 물었다.

“단아랑 도윤이는요?”

〖이 땅에는 없는 것 같구나.〗

천지해의 말에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 땅에 없다는 말은, 즉. 어느 공간에 갇혀 있다는 소리니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세계로 넘어갔을 가능성은요?”

〖없다.〗

천지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할미가 너와 네 친구들을 노리고 있어.’

할미다.

당장, 그녀가 속해 있는 유랑단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저세상이 말한 게 있었으니.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할미가 단아와 도윤이를, 내 친구들을 노린 목적은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네 친구들이니까.’

나의 친구들이기 때문에.

‘망할 탈쟁이가!’

주먹 쥔 손이 아렸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주먹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분노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지금 이 순간 사령의 숲에서 고통받고 있을 친구들을 구해 내는 거다.

들끓던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대도깨비님, 랑야 님과 함께 공간을 하나 찾아 주세요.”

〖흐음?〗

“사령의 숲.”

그렇게 말하면 랑야가 알아 들을 거라면서 천지해에게 부탁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단아와 도윤이는 사령의 숲에서 얼마 못 버틸 거다.

할미라면 분명, 저세상과 함께 내가 그곳에서 탈출한 이후 무언가 조치를 취해 뒀을 테니.

‘빌어먹을 탈쟁이.’

욕이 치밀어 올랐다.

건드리려면 나를 건들 것이지, 왜 애꿎은 친구들을 건드린 걸까?

답은 금방 구해졌다.

저세상의 말대로, 내 친구들이니.

할미는 알고 있는 거다.

나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나와 연관된 타인을 괴롭히는 것임을.

‘역겨워.’

정말이지, 지하 길드 중에서 가장 악질인 유랑단의 탈쟁이다웠다.

그때였다.

〖아해야.〗

천지해가 부드럽게 나를 불렀다.

“랑야 님께 알렸어요?”

〖아직.〗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달라고 했잖아요!”

천지해라면 손쉽게 랑야에게 내 말을 알릴 수 있을 거다.

그는 모든 도깨비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으니.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천지해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진정하거라.〗

진정은 무슨!

“대도깨비님 같으면 진정할 수 있겠어요?”

〖글쎄다. 인간이 아닌지라 네가 지금 어떤 심경인지 정확히 알 수 없구나. 하지만.〗

천지해가 말을 멈추고는 이내 이어 말했다.

〖그 상태로는 네 친구들을 구할 수 없을 거다.〗

그 말에 머리가 차가워졌다.

천지해는 멍하니 굳은 내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랑야에게 말을 전하고 오마.〗

굳이 직접 가서 전할 필요 없으면서 천지해는 사라졌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자리에 서 있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비로소 이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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