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좌절(3)
윤사해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아빠.”
“리사.”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오던 윤사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기다리고 있었니?”
“응.”
싱긋 웃으며 물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조금 전까지 그랬는데, 우리 리사 얼굴 보니까 낫구나.”
“내가 아빠의 비타민이지?”
“그래.”
윤사해가 기분 좋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애교를 부리는 거냐면서 얼굴을 찌푸렸을 텐데 말이다.
‘역시, 윤사해.’
딸바보다웠다.
윤사해가 겉옷을 벗고는 물었다.
“리오랑 리타는?”
“둘 모두 아빠 기다리다가 지쳐서 자고 있어. 이런 거 보면 오빠들도 나이를 먹었나 봐.”
내 말에 윤사해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리오랑 리타에게는 나이 먹었다고 말하지 마렴. 둘 모두 슬퍼할 테니.”
“알아.”
우리 오빠들 여린 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지.
“일은 잘 마무리됐어?”
“최설윤 길드장과 일단 대충 이야기는 맞췄단다.”
저세상과 관련해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끝냈다는 소리겠지.
“어떻게 할 생각인데?”
담담하게 묻는 내 목소리에 윤사해가 서글프게 미소를 그렸다.
“리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빠 의견부터 말해 줘. 먼저 질문한 사람은 나니까.”
“리사…….”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듯 나를 부르고는 말했다.
“아빠는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단다.”
그 말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윤사해가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빠, 알잖아.”
모든 걸 되돌릴 수는 없다.
윤사해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리사. 아빠도 안단다.”
한 번 어그러진 관계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해 보고 싶구나.”
윤사해의 말에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말했다.
“아빠는 정말 바보야.”
윤사해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
지하 길드에 의해 쑥대밭이 됐던 금강산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매망량과 함께 이후 이야기를 듣고 도우러 온 AMO 덕분이었다.
“하, 이제 살겠네.”
최설윤이 대(大)자로 뻗었다.
“고모.”
그러다 부르는 목소리에 슬쩍 눈을 들었다.
최화백.
하나뿐인 조카가 한심하다는 듯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화홍이는?”
“애들 보러 갔지. 나와는 다르게 류화홍은 유부남이잖아.”
“아 참, 그렇지.”
최설윤이 실실 웃었다.
“화홍이가 애 둘 있는 아빠라는 걸 가끔 잊는단 말이지.”
그러면서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왜 부르는데?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응.”
최화백이 기다렸다는 듯이 최설윤에게 질문했다.
“왜 그랬어?”
“뭐가?”
되묻는 말에 최화백이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어디서 인상을 써?!”
최설윤의 호통에 곧장 표정을 풀었지만 말이다.
“크흠, 흠.”
최화백이 작게 기침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래아가 습격당했을 때, 밖으로 나를 날려 버렸잖아.”
“그거야 위험해서 그랬지.”
“고모는 내가 아직 애인 줄 알아?”
최화백이 불만스레 말했다.
“나 다 컸어. 고모가 지켜줘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누가 그걸 모르겠니?”
최설윤이 픽 웃고는 말했다.
“세상이가 아닌 다른 놈이 습격한 거라면 너 그대로 뒀을 거야.”
“그 말은, 내가 세상이보다 약해서 그렇게 날려 버렸다는 거야?”
“응.”
최설윤은 순순히 대답했다.
“내 곁을 지키고 있었으면 분명 큰일이 났을걸? 이 고모는 하나뿐인 조카가 먼저 죽는 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단다.”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최화백이 입술을 삐죽였다.
툭 튀어나온 그 입을 최설윤이 찰싹 아프지 않게 때렸다.
“아, 왜 때려?!”
“그냥 때리고 싶어서.”
“하여튼 성격 나빠!”
최화백이 버럭 소리 지르고는 나가 버렸다.
최설윤이 그 모습에 픽 웃었다.
“성격 나쁜 게 누구인데.”
물론, 자신의 성격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화백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오빠를 생각하면 자신의 성격은 꽤 좋은 축에 속했다.
“저 자식이 그걸 알아야 하는데.”
알 리가 없겠지.
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
최설윤이 문득 생각나는 얼굴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창가에 놓인 액자에 어렸던 자신과, 저와 닮은 얼굴인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보였다.
한 명은 아래아의 전 길드장이었던 자신의 오빠였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오빠를 죽여 버린 자신의 동생이었다.
‘언니, 왜?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야?’
키득거리며 웃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최설윤이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잊자, 잊어.’
아무래도 아래아가 습격당한 일로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은 모양이다.
사진을 보지 않는 이상,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동생을 이런 식으로 떠올리게 되다니.
“짜증 나네.”
최설윤이 까드득 이를 갈고는 숨을 내뱉었다.
‘다른 걸 생각하자.’
어서 머리를 환기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 보자. 우리 아래아를 습격해 온 그 망할 자식.’
저세상.
‘그래, 그 녀석을 생각해 보자.’
최설윤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아래아를 습격해 온 아이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분노했다.
어엿한 성인이 된 그 아이가 새삼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래아에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렇게 쳐들어온 건지, 대체 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준 가족을 이런 식으로 배반한 건지.
‘그 속을 도저히 모르겠네.’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생각해 보면 윤사해도, 그와 함께 자란 윤리사도 그 속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으니.
‘내가 알 도리가 있나?’
최설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 말게.’
돌연, 저세상에 대해 윤사해가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한없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그 모습에 최설윤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휴! 진짜 앓느니 죽고 말지!”
그러면서 구시렁거렸다.
“장천의 회장이 옆에 있으면 같이 술 좀 마시자고 하는 건데.”
그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으니.
“진짜 짜증 나네.”
최설윤이 툴툴거리며 몸을 옆으로 눕혔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했다.
‘뭐, 이런 생각은.’
윤사해와 그 자식들이 하고 있을 생각이겠지.
최설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이다, 정말.”
나도, 그리고 저세상이 배신한 그 가족들도 무척이나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윤리사, 괜찮아?! 너 어제 금강산 지원 갔었다며! 아래아가 습격당해서!
아래아가 습격당한 소식에 단아가 전화를 걸어 왔다.
아래아의 습격에 대해서는 언론에 새어나가지 않게끔 최설윤이 적절히 조치를 취한 것 같았는데.
‘입단속하는데 실패했나 보네.’
하긴, 워낙 크게 당했어야지.
―야! 윤리사! 왜 대답이 없어?!
“아, 미안. 나는 괜찮아. 다친 곳 없어. 내가 갔을 때는 상황이 이미 정리된 뒤였거든.”
거짓말이다.
하지만 단아한테 사실대로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아야, 리사가 뭐래?
물론, 도윤이한테도 그랬다.
저세상을 특히나 잘 따랐던 도윤이였다. 그가 유랑단에 소속된 것을 알면 꽤 충격을 받을 터.
‘단아도 도윤이도 저세상에 대해서 묻지 않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저세상이 유랑단에 소속되어 있는 건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말했다.
“도윤아, 나 괜찮아.”
―리사야!
도윤이가 반갑게 나를 불렀다.
―야, 백도윤! 내 휴대폰 뺏어가지 마! 내놔!
단아가 화를 내며 그를 불렀지만 도윤이는 계속 나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리사, 괜찮아? 다친 곳 없어? 대체 금강산에는 왜 간 거야? 이매망량에 그렇게 사람이 없어? 리사, 너를 지원 보낼 만큼?!
도윤이가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본다.
왜인지 모르게 화가 난 것 같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해줬다.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거야. 잠시나마 이매망량을 이끌었던 만큼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서.”
―일은 그동안 많이 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할 말이 없네.
멋쩍게 뺨을 긁적이는데 도윤이가 말했다.
―리사, 이제 학교로 돌아오면 안 돼? 네 말마따나 이매망량은 이제 다시 네 아버지가 맡게 됐잖아.
―그래, 윤리사!
단아가 도윤이한테서 기어코 휴대폰을 돌려받았나 보다.
―이제 학교로 돌아와! 지하 길드원들을 상대하는 건 어른들한테 이제 편하게 맡기란 말이야!
단아의 외침에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사과했다.
“미안, 단아야.”
―윤리사, 바보!
단아가 버럭 소리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뚝 끊긴 전화에 아무 말 없이 미소를 그렸다.
마음 같아서는 나 역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마는.
‘그럴 수는 없게 됐는걸.’
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된 순간부터 그건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