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좌절(2)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고생이 많아.”
“시끄럽네.”
윤사해가 최설윤에게 차갑게 대꾸하고는 우리를 찾았다.
“리사, 리타.”
“아빠!”
윤리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달려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 큰 줄 알았더니.”
이러는 걸 보면 아직 아이라면서 윤사해가 미소를 그렸다.
“리사.”
그는 나를 부르며 팔을 벌렸다. 마치, 윤리타와 똑같이 자신의 품에 안기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픽 웃고는 윤리타와 똑같이 그의 품에 안겼다
“둘 다 모두 수고 많았다.”
윤사해가 나와 윤리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토닥여 주었다.
“아빠, 세상이가…….”
“그래. 들었단다.”
윤사해가 씁쓸하게 미소를 그렸다.
그 역시 진작 알고 있었던 거다.
저세상이 유랑단과 손을 잡은 상태라는 것을.
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올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리라.
“우선, 너희 둘은 이만 돌아가렴.”
“하지만 아빠.”
“리사.”
윤사해가 내 말을 끊고는 부드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리오가 걱정하고 있단다.”
윤리오를 언급하니 별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윤사해와 함께 아래아의 일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겠지.’
더욱이 윤사해에게 길드장의 자리 역시 다시 넘겨준 상태였다.
그렇기에 말했다.
“알겠어, 아빠. 리타 오빠랑 같이 돌아가 있을게.”
“그래.”
윤사해가 미소를 그린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최설윤의 말대로, 그는 이매망량에 복귀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몸이었으니.
윤사해가 내 걱정에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아빠, 대답!”
“그래, 리사.”
윤사해가 웃음을 멈췄다.
“무리하지 않을 테니 어서 리타랑 같이 돌아가렴.”
“우응.”
윤사해를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 봐, 아빠.”
결국, 윤리타와 함께 돌아갔다.
***
“리사도 참 많이 컸어. 어릴 때는 저렇게 아빠 말을 잘 들은 것 같지 않았는데.”
“우리 리사는 어릴 적에도 내 말을 잘 들었다네.”
“정말?”
윤사해가 놀리듯이 묻는 최설윤의 질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하나뿐인 딸이 어릴 적에 얼마나 사고뭉치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크흠.”
윤사해가 헛기침을 두어번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세상이로 인해 벌어진 일은 모두 우리 쪽에서 책임을 지겠네.”
“당연히 그래야지.”
최설윤이 싱긋 웃고는 물었다.
“또?”
또?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원하는 것이 더 있나?”
“당연히 있지.”
최설윤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키득거리고는 말했다.
“AMO에 알려야지. 당신이 거둔 아이가 유랑단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이야.”
윤사해가 찡그린 얼굴로 최설윤을 노려보았다. 그 매서운 시선에 최설윤은 콧방귀만 꼈다.
“설마, AMO에 비밀로 할 생각이었어? 아니지?”
묻는 목소리에 윤사해가 최설윤을 노려보던 매서운 시선을 거두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AMO는 이미 알고 있다.”
“뭐?”
“세상이가 유랑단과 함께 저지른 사건 사고가 한 두 가지가 아니더군.”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윤사해는 현실을 부정했었다.
저세상이 유랑단과 함께 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그가 이런 사고를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눈 앞의 증거가 모두 명확했다.
더욱이 저세상은 이매망량을 습격하기까지 했다.
제 딸아이를 비롯하여 다른 길드원들은 그 사실을 자신에게 숨기려고 한 것 같지마는…….
“최설윤 길드장.”
윤사해가 씁쓸하게 그녀를 부르며 입을 열었다.
“세상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네. 그렇지 않아도 AMO에서 세상이의 일로 나와 만나기를 원하고 있더군.”
이제 막 복귀한 몸인지라 함부로 부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 세상이의 일은 전적으로 내게 모두 맡겨 주게.”
최설윤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무르게 넘어갈 생각인 건 아니지?”
그녀가 날카롭게 목소리를 내었다.
“윤사해 길드장은 자식들 일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지잖아.”
“암만 나라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안다네.”
“정말?”
최설윤이 기가 찬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윤사해 길드장,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말해 볼래?”
놀리듯이 묻는 질문에 윤사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뱉은 말에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사해 길드장은 자식들 일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지잖아.’
최설윤의 말은 옳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윤사해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맘껏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아직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사해 길드장.”
최설윤이 고민에 잠겨 있는 윤사해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세상이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녀가 붉은 눈을 한없이 어둡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어.”
경고나 다름없는 목소리였다.
윤사해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최설윤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어휴, 앓느니 죽지!”
윤사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라, 결국 저렇게 외치면서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화백이는 어디 있어?”
지하 길드의 습격에서 최우선으로 대피시킨 자신의 조카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최설윤의 말에 아래아의 길드원이 그녀를 최화백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줬다.
윤사해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주먹을 꼭 쥐었다.
저세상.
자신의 딸과 함께 할미의 숲에서 구조했던 아이.
피가 이어진 아이는 아니었으나, 제 자식들 못지않게 애정과 사랑을 베풀었다.
아니, 그렇게 했다고 믿었다.
‘잘못됐던 걸까?’
그래서 아이가 엇나가고 만 걸까? 자신의 사랑이, 애정이 그 모든 것이 잘못돼서…….
“길드장님.”
“아, 류화홍 헌터.”
부정적인 생각에 끝없이 매몰되던 윤사해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리사랑 리타는?”
“집으로 데려다 드렸어요.”
“그래. 잘했네.”
윤사해가 작게 숨을 내쉰 후 몸을 돌렸다.
저세상에 의해 엉망진창이 된 아래아를 한시라도 빨리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리사 아가씨께서 길드장님께 남기신 말이 하나 있어요.”
“리사가 나한테?”
“네.”
류화홍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아빠 잘못 아니야.”
그 말에 윤사해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류화홍은 그런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윤사해는 멍하니 서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
지금쯤, 류화홍이 윤사해한테 내 말을 전했겠지?
‘잊었기만 해.’
아주 그냥 가만두지 않을 테다.
윤사해라면 분명 저세상이 벌인 일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테니.
“후우…….”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윤사해의 곁에 남아 그를 도와줬어야 했다.
윤사해가 억지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면.
‘내 말이나 들으라면서 뺨 한 번 때려 주면 되는데.’
물론, 남들 몰래 말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흔이 넘은 그의 뺨을 때리면 그대로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이 패륜을 저질렀다’라면서 동네방네 소문이 날 테니.
“에휴.”
한숨을 푹 내쉬던 그때,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 괜찮아?”
“아, 리오 오빠.”
윤리오가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미안해.”
그가 다짜고짜 사과를 건넸다.
“오빠 몸이 이래서 같이 가 주지도 못하고. 리사만 고생시켜 버렸네.”
“아니야, 오빠!”
다급하게 두 손을 내저었다.
“오빠는 그런 생각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 집중해.”
“으응.”
윤리오가 기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금강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윤리오인데, 저세상의 이야기에 충격이라도 받아 쓰러지면 곤란했다.
‘보아하니 윤리타도 그게 걱정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고.’
윤리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피곤하다면서 핑계를 댔지만, 나는 알았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윤리타, 저 자식은 아래아의 일이 많이 힘들었나 봐.”
다행히도 윤리오는 그런 윤리타를 보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과일이라도 깎아서 줄까?”
“아니, 리타 오빠는 혼자 두자. 오늘 아래아의 일을 처리하면서 실수한 게 많아서 저러는 거니까.”
“그래?”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그러니까 리타 오빠는 저대로 혼자 두자. 과일은 우리끼리 먹고. 내가 깎을게.”
“아니야, 리사. 오빠가 깎을게.”
“씁! 내 말 들어!”
윤리오가 내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옅게 미소를 그렸다.
윤리오만이라도 저세상에 관한 건 몰랐으면 했다.
끝까지 숨길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나는 감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