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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404)화 (404/500)

404화. 좌절(1)

“이 미친놈이……!”

“나 미친놈인 거 이제 알았어?”

저세상이 옅게 미소를 그리고는, 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렇게 피할 새도 없이 그에게 안겨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 훅 끼쳐 오는 피 냄새에 버럭 소리 질렀다.

“놔!”

“윤리사.”

저세상이 나를 꼭 끌어안고는 소곤거렸다.

“할미가 너와 네 친구들을 노리고 있어.”

그 말에 저세상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것을 멈췄다.

“……뭐?”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모양이다. 저세상의 얼굴이 한없이 진지했으니.

생각해 보면 그는 언제나 진지했다.

정확히는, 매몰차게 떠나 버린 후 다시 만났을 때.

그때마다 저세상은 한없이 진지한 태도였다.

그러니 지금 저 말도 사실일 거다.

“할미가, 왜. 왜 도윤이랑 단아를.”

그녀가 나를 노리는 건 이해됐다.

하지만 도윤이와 단아는 왜? 왜 그 아이들까지 노리는 거지?

“네 친구들이니까.”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예상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할미가 도윤이와 단아를 노릴 리가 없으니.

“원래는 최설윤 길드장님을 죽여 그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는데.”

“뭐?!”

저세상의 말에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하 길드를 이끌고 아래아를 습격한 게 그 이유 때문이었어?”

“그래.”

뭐가 문제냐는 듯 담담하게 답하는 목소리에 저세상을 밀쳤다.

절대로 놓아 주지 않을 것처럼 굴던 그는, 순순히 내 힘에 밀려나 나를 놓았다.

아쉽다는 얼굴이었지마는.

‘내 알 바는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저세상이 최설윤을 습격한 이유였다.

“할미가 단아와 도윤이를 노린다는 이유로 최설윤 길드장님을 죽이려고 했단 말이지.”

저세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장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

뺨을 맞은 저세상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를 향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도윤이와 단아가 자신들 때문에 애먼 사람이 죽은 걸 알면 기뻐할 것 같아? 그럴 것 같냐고!”

“……엄한 사람이 아니야.”

저세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최설윤 길드장님은 할미의 친형제니까.”

“그게, 무슨……!”

“최설윤 길드장님이 삼 남매 중 둘째였다는 거 알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최화백이 최설윤 길드장님의 조카라는 건?”

그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최화백의 아버지는 최설윤 길드장님의 오빠였지. 할미의 손에 죽었지마는.”

처음 듣는 사실에 멍하니 두 눈만 끔뻑였다.

할미의 손에 최화백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그런데 할미는 또 최설윤의 친형제고?

‘개판이다.’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의 막장 집안이었다.

“처음 듣는 사실인 것 같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라고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읽었었잖아.”

『각성, 그 후』의 이야기를.

조용히 저세상을 응시하다 두 손을 꼭 주먹 쥐었다. 저세상 역시 아무 말이 없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너와는 평생 눈싸움을 못 할 것 같아.”

그 말과 함께 그림자로 만들어 낸 공간이 부서졌다.

“헉……!”

갑작스러운 충격에 가슴 부근을 붙잡는 찰나, 저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도윤과 한단아. 그 두 사람이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최설윤 길드장님께 도움을 요청해. 할미는 혼자서 상대하기 어려운 녀석이니까.”

“너……!”

“오늘 즐거웠어.”

즐거웠다니!

“기다려, 저세상……!”

그 말에 저세상은 미소를 그리며.

“저세상!”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게도 나는 또 저세상을 놓쳐 버렸다.

벌써 몇 번째일까?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빌어먹을!’

나는 도대체 언제쯤 저세상을 잡을 수 있을까? 왜 만날 때마다 그와는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책하던 때.

“리사! 괜찮니?”

최설윤이 나를 살폈다.

최화백의 고모이자…….

‘할미의 언니.’

저세상이 알려 준 그 사실에 가슴 부근이 다시 아파 왔다.

심장이 옥죄어지는 듯한 그 감각에 얼굴을 찌푸리는데.

“광혜원 헌터! 어서 와봐! 리사가 이상해!”

최설윤이 다급하게 광혜원을 찾기 시작했다.

“최설윤 길드장님! 저 괜찮아요!”

“괜찮기는!”

“정말이에요! 저세상 새끼 때문에 스킬이 억지로 풀려서 그런 것뿐이에요! 정말로요!”

최설윤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멀쩡함을 주장했다.

너무 부담스러운 눈빛 때문일까?

“알겠으니까 그만 쳐다봐.”

최설윤이 내 시선을 피하며 그리 말했다.

“믿어 줘서 감사해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최설윤이 픽 웃고는 물었다.

“저세상은?”

“도망쳤어요.”

“그 빌어먹을 자식이…….”

최설윤이 짓씹듯이 말을 뱉고는 놀라 말했다.

“미안, 리사! 그러니까, 이건. 세상이를 욕하려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

당황하여 횡설수설 늘어놓는 최설윤의 말을 끊고는 웃어 줬다.

“저세상은 적이잖아요.”

몇 번이고 가슴에 새긴 사실.

저세상은 이제 나의 적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유랑단. 그리고 이에 더해 아래아까지.

그는 모두의 적이 됐다.

최설윤이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사. 네가 그렇게 말하니 편하게 말할게.”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은 못 넘어가. 네 아버지한테 제대로 진상 규명을 요청할 거야.”

“네, 그러도록 하세요.”

너무 담담하게 대답했기 때문일까?

최설윤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니? 리타는 충격을 꽤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리타 오빠는 여리니까요.”

윤리오가 쓰러진 것을 제 탓이라 여기며 도망쳤던 그다.

더욱이 그는 『각성, 그 후』에서는 윤사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그런 윤리타였으니 저세상이 보여 준 모습에 충격을 꽤 많이 받았을 거다.

“오빠는 지금 어디 있어요?”

“화백이랑 같이 있어. 지하 길드원들은 이매망량이 도와준 덕분에 대부분 잡았거든.”

그렇게 모아 둔 곳에 있다면서 최설윤이 나를 부축했다.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그러다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너 다치면 내가 윤사해 길드장한테 마음껏 화를 낼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최설윤에게 몸을 기댄 채 지하 길드원들이 붙잡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가씨!”

류화홍이 놀라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다친 거예요?”

“다친 건 아니고 그냥 놀라서 그래. 스킬이 강제로 해제됐거든.”

정확히는 부서진 거지마는.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류화홍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혜원이 누나! 리사 아가씨 좀 봐주세요!”

아래아의 길드원들을 살피느라 정신없는 그녀를 부르는 것을 보니 말이다.

“화홍이 오빠, 나 괜찮다니까?”

“그래도요!”

혹시라도 다친 곳이 있으면 안 된다면서 류화홍이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그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광혜원한테서 진료를 받게 됐다.

물론, 나는 정말 다친 곳이 없었기에.

“정말! 호들갑도 적당히 떨어야지! 리사 아가씨는 멀쩡하니까 바쁜 사람 그만 불러!”

라며 한 소리를 듣게 됐다.

류화홍이 광혜원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그냥 리사 아가씨가 걱정된 것뿐인데…….”

“류화홍.”

광혜원이 구시렁거리는 류화홍을 향해 웃는 낯으로 말했다.

“할 일 없으면 가서 길드장님 좀 모시고 와주겠니? 아무래도 아래아의 길드장님께서 우리 길드장님께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거든.”

“정답.”

최설윤이 광혜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광혜원 역시 아래아를 습격한 지하 길드를 이끌던 사람이 저세상인 걸 알게 된 모양이다.

류화홍 역시 그런 듯했다.

광혜원과 최설윤의 말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으니.

“화홍이 오빠.”

그런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아빠를 모시고 와 주세요.”

“으음, 네.”

그제서야 류화홍은 모습을 감췄다.

류화홍이 사라지기 무섭게 광혜원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아가씨, 리타 도련님은 저쪽에서 쉬고 계세요.”

“고마워요, 언니.”

광혜원이 가르쳐준 곳에 정말 윤리타가 쉬고 있었다.

꽤 초췌한 낯으로 말이다.

“오빠.”

윤리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 때문이야.”

“뭐가 오빠 때문이야.”

윤리타 곁에 털썩 앉고는 말했다.

“저세상이 그렇게 된 거, 오빠 탓 아니야. 절대로.”

“하지만.”

“아니라면 아닌 거야.”

저세상이 유랑단과 손을 잡은 건, 따지고 보면 나 때문일 거다.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나를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기에 나의 적이 된 거다.

암만 생각해도 바보 같은 말이었다. 또한, 다시 떠올려도 괴로운 목소리였다.

그에 주먹을 꽉 쥘 때.

“왔어? 윤사해 길드장.”

윤사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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