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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97)화 (397/500)

397화. 이운조(3)

“풀어! 안 풀어?!”

이운조가 빽빽 소리를 질렀다.

윤사해는 그 앞에서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풀으라니까?!”

“사과부터 하시지.”

윤사해가 짧게 혀를 찼다.

“자네가 저지른 일로 이매망량이 피해를 많이 입었거든.”

“죽은 사람은 없을 거 아니야?”

이운조가 겁도 없이 재잘거렸다.

“설마 이매망량에 혼란을 줄 목적으로 설치한 폭탄에 누가 죽은 건 아니겠지?”

윤사해는 조용히 그녀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이운조가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아니겠지! 명색이 이매망량의 길드원인데 내 허접한 폭탄에 죽은 사람이 있겠어?!”

“물론, 없다.”

윤사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친 사람은 있지만.”

“그럼, 됐네.”

이운조가 입술을 삐죽였다.

“A급 복구 스킬 가지고 있는 녀석 소개시켜 줄 테니까 이것 좀 풀어 줘. 도망치려고 한다거나 그러지 않을게. 절대로. 맹세해.”

윤사해가 이운조를 응시하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와 알고 지낸 세월이 있으니 계속 붙잡아 두기에는 좀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 아빠, 나이를 먹더니 사람이 정말 많이 너그러워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운조가 어떤 말을 지껄이든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텐데.

‘관심은 무슨.’

젊었을 적의 윤사해라면 분명 이운조, 그녀를 선비의 옆에 나란히 묶어 놓고 죄를 물었을 거다.

지금의 윤사해는 결국 이운조를 풀어 줬다.

그리고 그녀는.

“좋아…….”

씨익, 웃고는.

파지직!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다름 아닌, 윤사해를 향해서 말이다.

“이운조 헌터. 설마 나를 공격할 생각인 건가?”

“그래.”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윤사해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곧, 떨어졌지만 말이다.

“이운조 헌터.”

괜한 짓 하지 말라는 듯, 윤사해가 그녀를 부르고는 나지막하게 말을 덧붙였다.

“자네는 나를 이길 수 없네.”

“이기는 건 바라지도 않아.”

이운조의 웃음이 짙어졌다.

“나한테 아주 잠시, 1분 만이라도 제압당하면 되니까.”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선비와 과거에 친분이 있는 사이라지?”

“리사가 그새 알려 줬어?”

이운조가 날 선 목소리로 웃었다.

“생각보다 입이 가볍네? 아저씨를 닮아 입이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선비에 관해 물으면서 자연스레 나온 이야기다.”

그러니 나를 욕하지 말라는 듯이 윤사해가 말했다.

“더욱이 나는 이매망량의 길드장. 한때 딸아이가 내 자리를 대신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이매망량에 소속된 길드원이다.”

그러니 길드장인 자신에게 선비를 붙잡게 된 경위 등등에 대해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면서 윤사해는 말을 끝마쳤다.

“우리 리사에 대해 괜한 오해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예나 지금에나 딸바보네.”

이운조가 그렇게 말하고는.

파지직!

윤사해의 집무실 내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굴었다.

“이운조 헌터.”

“내가 이러는 게 싫으면 순순히 나를 놓아 주지 그래? 이왕이면 선비 새끼랑 같이.”

“불허한다.”

“그래?”

이운조가 일그러진 미소를 보였다.

“그거 아쉽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전격이 거세게 튀었다.

당장에라도 윤사해를 노릴 것처럼 구는 것에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윽!”

그림자를 움직여 이운조를 단숨에 제압한 것이다. 그녀가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저지를 수 있었던 습격이었다.

“윤리사, 너!”

“안녕하세요, 언니. 제 앞에서 감히 아빠를 공격하려고 하다니. 저한테 또 맞고 싶나 보네요.”

“누가 언제 너한테 맞았다고 그래?! 헛소리하지 마!”

지하에서 꼴사납게 나한테 제압당했던 주제에 말이 많다.

“풀어!”

“싫어요.”

내가 미쳤다고 너를 풀어 주냐?

분명 다시 윤사해를 공격하려고 들 텐데.

“아빠, 운조 언니 왜 풀어 준 거야? 위험하게.”

“이운조 헌터한테 이 아빠가 당할 리도 없거니와, 우리 딸을 믿어서 풀어 줬지.”

말은 잘한다 싶었다.

우리 앞에 꼴사나운 자세로 결박을 당한 이운조는 다시 빽빽 목소리를 높였다.

“윤리사, 이거 당장 풀어!”

“싫어요.”

“윤리사!”

“시끄러워요.”

귀를 후비적거리며 이운조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너……!”

이운조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왜 이런 거예요?”

“왜 그랬다니?”

“선비 새끼 구하려고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쓴 거냐고요. 그 자식은 언니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내 말에 이운조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네가 나라고 해도 그럴 거야.”

글쎄, 과연 그럴까?

예전이었다면 이운조의 말에 공감했을 거다.

그러니까 저세상이 나를 배신하기 전, 유랑단과 함께 날뛰기 전에 말이다.

어쨌거나 이운조는 말했다.

“하현은 내게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야.”

“선비 새끼는 언니를 그런 식으로 여기지 않고 있지만요.”

애초에 기억도 없는 그였다.

이운조가 분하다는 얼굴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닌데, 저렇게 소중하게 여기다니.

그것도 몇 번이고 싸웠던 선비를.

물끄러미 이운조를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녀를 놓아줬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운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고맙다는 인사는요?”

“어? 어, 응. 고마워.”

하지만 왜 풀어 줬는지 모르겠다는 듯, 이운조의 두 눈에는 경계심이 잔뜩 어려 있었다.

이운조를 풀어 준 이유야 간단했다.

『각성, 그 후』에서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여 버린 이운조와 선비가 새삼스레 불쌍해서.

그래서 그런 것뿐이었다.

망작이나 다름없는 그 이야기를 명작으로 바꿔 보고 싶기도 했고.

“선비는 밖에 있어요. 알아낼 게 있어서 고문 좀 하고 있는 중이죠.”

“뭐?”

이운조가 놀라 물었다.

“몸에 상처를 입힌다거나 그런 식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그냥, 악몽 좀 꾸게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윤리사, 너……!”

“고맙다는 인사는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언니한테 욕을 듣거나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은데요?”

이운조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내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

“됐어요.”

말했듯,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명심하세요.”

성큼, 이운조에게 다가가서는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선비를 위해 이매망량을 엉망으로 만든 죄는 꼭 물을 생각이니까요.”

더욱이.

“선비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운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주고는 말했다.

“선비를 지키고 싶으면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AMO와 거래할 것을 생각해 두란 말이에요.”

조금 전, 선비를 위해 윤사해에게 겁도 없이 달려들려고 한 이운조를 보고 결심했다.

선비의 신병을 AMO에 넘기기로.

AMO라면 분명 탈쟁이 새끼를 다시 유랑단에 넘길 테지만.

‘이운조가 선비의 신병을 자신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AMO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녀가 선비를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단, AMO가 만족할만한 조건을 이운조가 내밀어야겠지마는.

뭐, 이운조라면 AMO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매력적인 조건을 내밀 것 같았다.

그러니.

“어때요?”

내 제안이.

이운조가 고민하듯 두 눈을 낮게 내리깔고는 이내 대답했다.

“좋아.”

그러고는 윤사해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미안, 아저씨. 아저씨도 말했지만, 선비는 내게 있어서 가족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어. 그래도 이성을 꼭 붙잡고 있어야 했는데.”

“됐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 듯, 윤사해가 이운조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 건은 나중에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

“그렇지만.”

“오해는 하지 말도록.”

윤사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성큼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네가 우리 이매망량에 저지를 짓에 대한 죗값은 톡톡히 받아 낼 생각이니.”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내가 지금 너를 봐주는 건, 모두 내 딸 덕분이다. 리사한테 고마워하도록 해라.”

“으응.”

이운조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향해서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마워, 리사.”

“됐어요.”

엎드려서 절받기도 아니고.

“선비한테 가 보기나 하세요. 지금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요.”

“악몽을 꾸게 만들었다고 했지? 혹시 그거.”

“그만둘 생각은 없어요.”

단호한 말에 이운조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그 얼굴을 향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언니가 도와주지 그래요?”

“뭐?”

“선비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라고요.”

그가 어떤 악몽을 꾸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언니라면 선비 새끼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이매망량에 이렇게 피해를 입힌 것만 봐도 그렇다. 이운조가 분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신한테 선비를 구할 기회를 준 것만 해도 고마운 모양이었다.

이운조는 그렇게 급히 밖으로 향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도망칠 수 있기에 사야가 따라붙었다.

〖나 참, 착한 건지 못된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저요?”

〖그래.〗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대도깨비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착한 것으로 해 주세요.”

천지해가 기가 차다는 얼굴로 윤사해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윤사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군. 알겠다.〗

천지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좋은 뜻은 아닐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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