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이운조(2)
“리사…….”
윤사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운조 헌터는.”
“안 죽었어.”
정신만 잃었을 뿐이지, 멀쩡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 죽었으니까!’
배시시 웃는데 윤사해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이운조 헌터를 왜 저렇게 만든 거니? 선비 때문이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입을 열었다.
“운조 언니가 이매망량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거든.”
“이운조 헌터가?”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도 잠시, 그는 미간을 좁히며 정신을 잃은 여자를 노려봤다.
“사야.”
“네, 길드장님.”
“이운조 헌터를 구속하여 내 집무실에 던져 놓게.”
“알겠습니다.”
사야가 나한테서 이운조의 신병을 넘겨 받았다.
동시에 그녀는 물었다.
“아가씨, 화홍은…….”
아무래도 남편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화홍이 오빠는 제가 문을 부수자마자 이동 스킬로 나갔어요.”
“그렇군요.”
사야가 안도하며 이운조를 데리고 떠났다.
랑야의 후손인 사야라면, 이운조가 깨어난다고 해도 그녀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그때, 아빠가 나를 불렀다.
“리사.”
“응!”
“다친 곳은?”
“없어!”
그럼에도 윤사해는 나를 꼼꼼히 살폈다.
그는 내가 정말 다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본 후에야 안심했다.
“리사, 도대체 왜 그랬니?”
“밖으로 나오려면 운조 언니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는걸?”
더욱이 그녀는 우리한테서 선비를 강탈하기 위해 이매망량을 공격하는 것도 감행했다.
“다친 사람은?”
“경상자만 있을 뿐, 중상자는 없단다. 더욱이 사망자도 없지.”
다행이다……!
죽은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남몰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 맞아. 선비는?”
“선비?”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지하에 있는 것 아니니? 이운조 헌터가 저렇게 된 걸 보면, 선비를 강탈하는 건 실패한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몰라 옮겨 뒀거든.”
“류화홍 헌터의 이동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을 텐데?”
“대도깨비님이 계시잖아.”
윤사해 뒤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망할 도깨비에게 다시금 물었다.
“선비 새끼 어디 있어요?”
〖밖에 있다.〗
“밖에요?”
〖그래.〗
천지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밖으로 데리고 나오자마자 감히 내게서 도망을 치려는 것이 아니냐? 어린 아해가 당돌해서 놓아 줄까 생각도 했다마는.〗
뭐?
〖하하! 그렇게 보지 말거라! 내 놓아 주지 않았으니!〗
천지해가 호쾌하게 웃었다.
〖따라오거라. 그 아해를 묶어 놓은 곳을 내 알려 주도록 하마.〗
묶어 놓다니.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윤사해와 함께 천지해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본 광경은.
“읍! 으으읍!”
나무에 묶여 있는 선비였다.
그는 두 손과 두 발이 결박된 채로, 입이 틀어막혀 있었다.
“대도깨비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래.〗
천지해가 뿌듯하게 웃었다.
“용케 선비를 저런 식으로 묶어 놓았네요?”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을 해할 수 없다. 그와 관련된 어떠한 공격 행위도 할 수 없을 텐데…….
“으읍! 읍!”
천지해는 선비를 아주 우스운 꼴로 만들어 놓았다.
대도깨비가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저 녀석을 해하려고 저런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하, 그래서 저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묶인 거구나?
“일단, 입 좀 풀어 주세요.”
〖흐음.〗
천지해가 마뜩잖은 얼굴로 선비의 입을 풀어 줬다.
그러기가 무섭게.
“이 빌어먹을 미지 영역의 거주자! 그 계약자에 그 거주자라고 사람을 아주……!”
“저 입 좀 다시 막아 주세요.”
〖그러마.〗
“으읍!”
선비의 입이 다시 틀어막혔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상황 때문일까?
윤사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아빠는 이운조 헌터의 상태를 보러 먼저 들어가마. 선비의 감시는.”
“나한테 맡겨 줘.”
“그래.”
윤사해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무슨 일 있으면 부르렴.”
“응!”
선비가 저러고 있는 꼴을 보건대, 특별히 윤사해를 부를 일은 없을 듯했다.
윤사해가 들어간 후.
“다시 저 입 좀 풀어 주세요.”
천지해에게 부탁했다.
〖나원, 참.〗
천지해가 툴툴거리면서 다시 선비의 입을 풀어 줬다.
이번에 선비는 자유로워진 입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씩씩거리며 물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입니까?”
“불만이면 운조 언니한테 그러세요. 아저씨를 구하겠다고 이매망량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건 그 자식의 잘못이죠!”
선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는 이곳에서 도망칠 생각 따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요?”
매섭게 물어보자 그가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도망칠 틈을 엿보고 있던 모양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나무에 묶여 있는 선비를 향해 조소를 보낸 후 질문을 던졌다.
“저세상.”
선비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에 담담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 자식이 왜 유랑단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거죠?”
“글쎄요.”
애매모호한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알고 있는 건 뭐든 털어놓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죽일 생각입니까?”
“아니요.”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그림자를 선비에게 가까이 옮기고는 활짝 웃었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괴롭히려고요.”
선미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까요.”
윤사해와 에일린 리.
에일린 리한테서 배운 건 없지만, 윤사해한테서 배운 건 확실했다.
소중한 존재를 건드린 자에게는 몇 배로 그 죄를 묻기. 죽고 싶을 만큼 철저하게 괴롭혀주기.
그러니 나는 윤사해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선비에게 성큼 다가가서는 조금 전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던졌다.
“저세상이 유랑단과 함께 손을 잡은 이유가 뭐죠?”
선비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요.”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 참, 정말이지.
‘쉽게 가는 법이 없네.’
어쩔 수 없지.
한숨을 내쉰 후, 선비를 향해 끝을 세웠던 그림자를 움직이게끔 했다.
선비는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림자에 잡아먹혔다. 어두운 것에 꽁꽁 싸매어진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저 녀석한테 뭘 한 게냐?〗
“그냥…….”
마치, 고치처럼 묶인 그를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제가 귀수산에서 겪은 일을 재현 좀 해 봤어요.”
〖흐음?〗
천지해가 궁금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윤사희를 만나 이매망량의 길드장임을 인정받기 위해 귀수산을 오를 때, 나는 어둑시니에 의해 몇 번이고 악몽을 꿨었다.
그걸 그대로 실현한 거였다.
선비.
다른 이름으로는 하현인 그에게 내가 겪은 것을 토대로 만든 악몽의 공간.
‘선비가 과연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네.’
또한, 저 공간에서 어떤 악몽을 꾸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마는.
‘좋게 좋게 생각하자.’
선비는 이운조를 알아보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이 어릴 적에 무슨 일을 경험한 건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하 길드 중에서 가장 악질인 유랑단에서 지내고 있을 리가 없으니.
“어디 보자…….”
시간을 확인한 후, 대도깨비에게 말했다.
“1시간 후에 다시 찾아오죠.”
천지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볼 뿐이었다.
“왜요?”
〖새삼스레 네가 사희의 후손인 게 실감이 나서 말이다.〗
“칭찬이에요?”
〖설마.〗
천지해가 기분 나쁜 웃음을 내게 보이며 재잘거렸다.
〖너도 알겠지만, 사희의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 않느냐?〗
“엄청 나쁜 축에 속하죠.”
〖그러니까 너는 사희의 후손이 틀림없다.〗
결국, 욕하는 거였다.
윤사희처럼 성격이 엄청 나쁘다고 노골적으로 흉을 볼 줄이야.
“저기요, 대도깨비님. 솔직히, 저. 할머니보다 성격 좋거든요?”
천지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믿거라.〗
저 망할 도깨비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더는 천지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 봤자 내 기분만 더 나빠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사해의 집무실로 향했다.
‘윤사해가 이운조를 잘 심문하고 있을까?’
그 전에 이운조가 깨어났을지 모르겠다.
광혜원이 그녀를 치료해 줬겠지만, 이운조는 내게 있어 쉽지 않은 상대였다.
멀쩡하게 제압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서 온 힘을 다 쏟아 내서 그녀를 막았는데.
‘그것 때문에 머리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다행히 내 걱정은 기우였다.
윤사해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에 이운조는.
“이 망할! 아저씨, 이거 안 풀어?! 당장 풀어! 윤리사는 어디 갔어? 그 맹랑한 꼬맹이 당장 데리고 와!”
아주 쌩쌩한 모습으로 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선비가 떠올랐다.
나무에 묶여 있던 그의 입을 풀어 주자마자 화난 목소리로 나불대던 모습은 정말이지.
‘닮았네.’
지금의 이운조와 아주 똑같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