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95)화 (395/500)

395화. 이운조(1)

“저 자식을 내놔.”

선비가 영문 모를 얼굴을 보였다.

이운조가 왜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건지 모르는 모양이다.

“언니.”

그 앞을 막아서고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선비는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아니까 괜찮아.”

이운조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선비를 데리고 도망간다면 이매망량의 적이 될 텐데요?”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매망량의 적이 된 거나 다름없어.”

맞는 말이었다.

쿵, 쿠궁―!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건물에 앓는 소리를 내고는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그냥.”

이운조가 말을 얼버무리는 듯하더니만.

“곳곳에 사제 폭탄 좀 심어 놨어.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위력은 아니니까 걱정 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언니, 정말 죄송한데요.”

“그럼 말하지 마.”

“아니요, 말할게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미쳤어요?”

“아마도.”

이운조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리사. 너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움직일걸?”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니. 일어날 리도 없는 상황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왜 지원이 안 오는 거지?’

윤사해라면 분명 이곳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알 텐데?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내가 이곳에 있는 걸 아는 그였다.

이렇게 류화홍을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화홍이 오빠.”

나지막하게 류화홍을 부르자, 그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스킬 사용이 불가능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지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 말에 이운조를 쳐다봤다.

“언니가 한 짓이에요?”

“뭐가?”

“모르는 척 굴지 마시죠?”

내 주위로 피어오른 그림자가 이운조의 목을 노렸다. 그녀는 무섭지도 않은지 픽 웃기만 했다.

“운조 언니!”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다그쳤다.

“지하와 바깥을 차단시킨 거, 이것 역시 언니가 한 짓이죠?”

“그래.”

이번에 이운조는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지하’라는 공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거든.”

파지직―!

그녀의 손에서 전기가 튀었다.

“지하는 습하고 또 축축하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파직!

이운조의 손가락 끝에서 튀던 푸른 전기가 지하의 벽면을 타고 흘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윽!”

류화홍이 주저앉았다. 나 또한 그와 똑같았다.

감전을 당하면 이런 기분이었구나.

『각성, 그 후』에서 이운조에게 당한 지하 길드원들이 왜 그렇게 맥을 못 추나 했더니.

아주 얄밉게도 이운조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물었다.

“따끔하지?”

듣는 사람의 부아가 치미는 질문을 말이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그녀에게 경고하듯 알렸다.

“이런 짓을 하면 선비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괜찮아. 죽지만 않으면 돼. 저 자식도, 우리 류화홍 헌터도. 그리고.”

성큼, 내게 다가온 이운조가 눈웃음을 지었다.

“리사, 너도.”

간담이 절로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니.’

그래, 이운조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네.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대도깨비님.”

〖오냐.〗

어느 순간 모습을 감췄던 그가 생글 웃는 낯으로 내 옆에 나타났다.

이운조가 당황하여 전기를 쏘아 보냈지만 천지해를 굴복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이운조의 공격을 피한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는 짓이 꼭 전기 뱀장어 같은 아해구나!〗

쓸데없이 도발하기는!

이 몸 상태로는 천지해의 입을 막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급히 물었다.

“대도깨비님은 저 자식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죠?”

〖물론이지!〗

천지해가 식은 죽 먹기라는 듯 히죽 웃었다.

〖이 몸은 하늘과 땅,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더욱이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사용하는 힘은 우리 같은 각성자가 지닌 힘과는 다른 궤를 그리고 있었다.

〖자, 그럼.〗

천지해가 순식간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는 선비를 낚아채고는.

〖이만 가 보마!〗

모습을 감췄다.

“안 돼!”

이운조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이운조가 황망한 표정으로 선비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윤리사……!”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왜 그러세요, 언니?”

싱긋 웃어 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운조의 전격에 의해 올라왔던 충격이 조금 수그러드는 듯했다.

‘좋아.’

그림자를 움직여 검을 만들어 낸 후 그녀를 향해 치켜들었다.

“제가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계약한 사이라는 걸 잠시 잊으셨나 봐요?”

이운조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분해하는 그 얼굴에 도발하듯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아님, 저를 너무 우습게 보신 건가? 그런 거라면 서운한데요? 지금에야 사정이 있어 아빠한테 다시 자리를 넘겼지만, 저. 한때는 이매망량의 길드장이었다고요.”

“시끄러.”

이운조가 날 선 목소리를 내었다.

“그 자식 어디로 갔어?”

“그건 저도 잘 모르는 일이라서요. 나중에 대도깨비님께 직접 물어보도록 하세요.”

활짝 웃어 주고는 지하의 모든 곳을 내 그림자로 덮어 버렸다.

이운조가 말했듯, 지하는 축축하고 또한 습하다. 그녀의 힘이 작용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뜻.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상황에 당황한 듯한 이운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운조 헌터.”

이운조가 움찔 몸을 떨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에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감히 이매망량을 습격한 죄, 지금 묻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는 걸 아는지 이운조의 온몸에서 푸른 전기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아가씨, 위험해요!”

류화홍의 외침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서.

***

쿠구궁―!

도대체 이것으로 몇 번째 폭발인 건지 모르겠다.

“길드장님!”

“폭탄은?”

“현재 터지지 않은 것들은 제거 중에 있습니다.”

서차웅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매망량을 뒤흔들고 있는 이 폭발은 모두 작은 규모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으니.

자신의 길드원들이라면 다치기만 하지 죽지는 않을 터였다.

“사야의 아이들은?”

“진작 대피한 상태입니다. 류화홍 헌터가 아가씨를 모시러 가기 전에 대피시켜 놨더라고요.”

“그거 다행이군.”

류사하와 류홍랑이 다쳤다면 랑야한테서 쓴소리를 피하지 못했을 테니.

‘그보다.’

윤사해가 엉망이 된 길드 건물을 둘러보고는 물었다.

“리사는?”

서차웅은 분명 말했다. 류화홍이 제 딸아이를 데리러 갔다고. 그런데 어디에서도 윤리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라면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면서 자신을 찾아왔을 텐데 말이다.

“서 비서, 우리 리사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것이.”

서차웅이 우물쭈물 말을 고를 때.

“아직 지하에 있습니다, 길드장님.”

낭랑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사야.”

윤사해가 놀라 물었다.

“아직 지하에 있다니?”

“화홍과 갇힌 모양이더군요.”

사야는 웃는 낯이었으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이동 스킬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리사가 아직 지하에 있다!’

그것도 유랑단의 아홉 탈 중 하나와 함께 말이다.

류화홍 역시 함께 있었지만 윤사해의 걱정은 오직 윤리사에게만 집중되었다.

“지금 당장 지하로 간다.”

윤사해가 사야와 함께 지하로 가는 문 앞에 도착했지만.

“S급 아이템을 이용해 봉인을 시켜 놨군요. 이 정도라면 단시간에 뚫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맹랑한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선비를 구하려고 온 유랑단 놈들인가?’

선비는 유랑단 내에서도 입지가 꽤 좋은 편이었으니.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귀수산까지 온 거지?’

유랑단에는 선비를 제외하고 이곳까지 올 실력자가 없었다.

궁금한 건 많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 안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가 있다는 거였다.

“후우.”

윤사해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쿠웅―!

그림자를 두른 주먹으로 육중한 문을 내리쳤다.

“길드장님!”

사야가 놀라 그를 불렀지만 윤사해는 멈추지 않았다.

살갗이 까지고, 피가 흘러도 그는 계속해서 굳건하게 닫힌 문을 내리칠 뿐이었다.

〖그만하거라.〗

바로 그때 천지해가 웃는 낯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

윤사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 리사는!”

〖곧 나올 거다.〗

천지해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끼익!

문이 열렸다.

윤사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리, 리사?”

딸아이의 손에 누군가 들려 있었다.

윤사해는 순간 생각했다.

‘혹시, 이 모든 건 딸아이가 저지른 게 아닐까?’라는 아주 터무니없는 생각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