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잊힌 이름(4)
“안녕하세요, 운조 언니. 바로 다시 만났네요.”
나는 천지해의 말에 따라 이운조를 이매망량으로 불러들였다.
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고.’
선비와 관련된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더욱이 그에게 직접 묻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
‘윤사해가 선비와 만나는 걸 허락해 줄 지는 모르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억지로 찾아갈 수밖에.’
그런 내 생각을 엿보기라도 했는지 천지해가 히죽거렸다. 망할 대도깨비를 못 본 척 무시하곤 이운조에게 물었다.
“선비와 아는 사이인 것 같다고 했죠? 그래서 그 자식에 대한 치료를 직접 진행한 거고요.”
“그래.”
이운조가 한숨을 푹 내쉰 후 입을 열었다.
“그보다, 리사. 헤어질 때 내게 취한 그 딱딱한 태도는 집어치우기로 한 모양이네?”
이운조한테서 선비를 데리고 갈 때, 그녀를 향해 ‘헌터’라고 칭했던 걸 말하는 건가 보다.
마음에 담아 둘 줄은 몰랐는데.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지금은 이매망량의 일원이 아닌,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리이니까요.”
“나중에 이매망량의 일원으로 다시 만나면 그때처럼 굴 거란 말이네?”
“언니.”
나지막하게 그녀를 부르고는 입을 열었다.
“괜히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운조가 조용해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지금도 선비와 알고 지냈던 사이인 것 같나요?”
“몰라.”
이운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르겠어.”
그녀가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으로 덮어 버리고는 말했다.
“그 자식이 내가 아는 놈이 맞다면, 나와의 일을 잊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선비는 지금까지 이운조와 몇 번이고 부딪친 탈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목에 있던 그 흉터는, 나와 똑같은 자리에 있던데. 그리고 초랭이 자식도 그랬잖아. 걔가 어릴 적에는 숫자로 불리었다고. 그럼, 그 자식이 내가 아는 그 놈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건데.”
두서 없는 말들이 이운조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시발! 도대체 뭐가 어떤게 된 일인 거야?!”
이운조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욕설을 내뱉었다. 경황이 없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언니, 진정하세요.”
선비와 그녀가 정말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는 이운조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래도 일단 알아 두는 게 좋았다.
『각성, 그 후』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이운조의 과거.
그녀의 지난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선비랑…….”
아니.
“언니는 어떤 시간을 살아왔죠?”
이운조가 내 질문에 파르르 입술을 떨다 이내 목소리를 내뱉었다.
***
신묘한 힘을 다룬다고 하여 ‘신인(神人)’이라고 불리던 이들에게 다른 새로운 이름이 붙을 때.
그러니까 그들이 ‘각성자’라고 새로 불리던 시대에 이운조는 태어나고 자랐다.
빛이라고는 들지 않는 지하 감옥 안에서 말이다.
나중에서야 이운조는 알았다.
자신이 잡혀 있던 곳은 훗날 지하 길드라고 불리게 되는 이들이 만든 감옥이라는 것을.
그런 감옥이 만들어진 이유는 하나.
신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가진 힘을 탈취하고 마음껏 다루기 위해서였다.
이운조와 같은 아이들은 그녀말고 몇몇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야, 그만 울어.”
툭하면 울고는 했던 남자아이 역시 있었다.
지하 시설의 연구원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은 ‘1010’이라는 숫자일 뿐, 아이에게 진정한 이름은 없었다.
그건 이운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 역시 그 아이와 똑같이 불리었던 것 같지만, 기억이 없다.
어쨌거나 1010은 눈물이 많았다.
“안 그쳐?! 이 녀석은 왜 이렇게 겁이 많은 거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울어 재껴!”
“아직 애잖아.”
자신들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하는 연구원들이 1010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 된 거, 저 녀석 가지고 먼저 실험을 진행해 보도록 할까?”
“그보다 10살 이전에 능력을 각성시키게 하는 거, 정말 성공할까? 위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실험이나 진행하자. 까라면 까는 게 우리한테 좋으니.”
“그건 맞지.”
연구원들이 1010의 팔을 잡았다.
“으아앙!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픈 거 싫어요! 흐아앙!”
“안 닥쳐?”
윽박지르는 목소리에 아이가 끅끅 울음을 삼켰다. 여기에서 더 울었다가는 주먹이 날아올 거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구원들의 손에 잡혀 지하 감옥을 떠나려는 아이를 막아 세운 건 이운조였다.
“뭐야?”
“제가 먼저 할래요.”
“뭐?”
“실험이요.”
이운조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아픈 거 잘 참잖아요. 쟤랑 실험 진행하면 오늘 하루종일 해야 할 걸요?”
연구원들이 고민에 잠긴 듯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웃었다.
“맞는 말이야.”
“얘랑 하면 하루 종일 해야 할걸.”
“아프다며 울고불고 난리 쳐서 좀 조용히 만들어야 하잖아.”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피곤한데.”
이내 연구원들이 1010을 놓아주고 이운조의 팔을 잡았다.
“가자.”
이운조는 그렇게 연구원들의 손에 이끌려 가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남자아이에게 입을 벙긋거렸다.
괜찮아.
소리없이 전해진 말이 닿았는지,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운조는 픽 웃었다.
‘기껏 도와줬더니 또 울려고 하네.’
하여튼 울보였다.
이운조는 그렇게 연구원들의 손에 잡혀 실험을 당했고, 그 후 며칠을 깨어나지 못했다.
힘겹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수일이 지난 후였다. 이운조가 힘겹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얼굴은 1010이었다.
“괘, 괜찮아? 내가 누구인지 알아 보겠어?”
이운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울보잖아.”
“울보 아니야!”
“지금도 울고 있으면서 아니라고 잘도 말하네.”
“이, 이건!”
아이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 내고는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내가 뭐.”
“너 죽는 줄 알았다고!”
“죽는게 왜?”
이운조가 무심하게 물었다.
“계속 이런 짓을 당할 바에야 죽는 게 낫지.”
“그런 말 하지 마!”
아이가 빼액 소리 질렀다.
“누군가가 우리 구하러 와 줄 수도 있잖아! 여기에서 벗어나게 될 수도 있잖아!”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운조는 1010의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우리 서로한테 이름 지어 줄래?”
“이름?”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그건 이름이 아니라 숫자야.”
이운조가 차갑게 말했다. 아이는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지만 나는 글자 모르는데.”
“말할 줄만 알면 돼. 글자는 나도 잘 모르니까.”
그러면서 이운조는 말했다.
“네가 말한대로,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우리를 구해줬을 때. 그때 밖에 나가 열심히 글자를 배워서 서로에게 지어 준 이름을 적어 주자.”
“좋아!”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말을 덧붙였다.
“너는 운조!”
“그게 무슨 뜻인데?”
“몰라.”
아이가 배시시 웃엇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본 건데, 이상해?”
“아니. 이상하지 않아.”
이운조가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성은, ‘이’로 할까?”
“성?”
“이름의 앞글자. 부모의 성을 대개 따른다는데, 우리는 부모를 모르잖아. 그래서 가장 흔한 성을 붙였어.”
적어도, 이 시설의 연구원들에게는 이 씨 성이 많았다.
어쨌거나 아이는 말했다.
“좋아!”
활짝 웃는 아이를 향해 이운조가 입을 열었다.
“너는 하현.”
“하현?”
“응.”
이운조는 연구원들의 손에 끌려갈 때의 일을 떠올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깥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하늘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이운조가 보고 있는 것에 한 연구원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알려줬었다.
‘하현달이다. 반달인 모양새가 딱 너 같지?’
이운조는 그것이 자신을 조롱하며 하는 말인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연구원이 가르쳐 준 이름을 1010에게 붙여 줬다.
눈 앞의 울보라면 완전히 둥근 달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같은 신세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어.”
먼 과거에 잠겨있던 이운조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 녀석도 10살이 채 되기 전의 나이에 능력을 각성했거든.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 많은 아이가 죽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직, 실험의 결과물인 자신들에게 신경쓸 뿐.
“타이밍 좋게도 바로 그때 지하 시설이 파괴됐어.”
“언니가 한 건가요?”
“아니.”
이운조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네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가 그랬어. 생긴 모습은 전혀 닮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렇게 구조됐다고 했다.
“하지만 하현은 아니었어.”
이운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하 시설이 파괴될 때, 매몰되고 말았거든.”
구조를 부탁했어도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며 이운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미 죽었을 거라고.”
그러니.
“잊으라고.”
이운조가 허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잊기로 했어. 대신, 하현의 몫까지 복수하기로 했지.”
그렇게 해서 이운조는 지하 길드에 이를 가는 각성자가 된 거였다.
지하 길드라면 어떤 형태든 부서뜨리고야 마는 그녀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물론, 하현이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 어떻게든 돈을 모아 그 자식을 찾는 데 썼지.”
“언니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유가 있었군요.”
이운조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웃긴 건 뭔지 알아?”
그녀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자식이 울보였다는 것을 제외하고.”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기 전, 불린 이름이 1010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야.”
이운조가 금방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서글프게 목소리를 떨었다.
그에 알았다.
선비는 이운조가 오랫동안 찾은 그 ‘하현’이라는 사람이다.
『각성, 그 후』에서 서로를 죽인 두 사람은, 사실은 오래전 과거로 묶여 있었던 존재들이란 거다.
정말이지, 『각성, 그 후』는 망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