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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91)화 (391/500)

391화. 잊힌 이름(2)

“아는 사람? 누가? 선비가?”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초랭이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진짜?”

“그래.”

이운조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저 자식에 대해 아는 것 좀 말해 봐.”

“흐음.”

초랭이가 재미있다는 듯 이운조를 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나도 아는 건 많지 않아. 그냥, 수장이 저 자식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것만 알지.”

“수장이? 어디에서?”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고.”

초랭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유랑단에 붙어 있는 것보다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거든.”

〖우리 정하 도령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네.〗

“시끄러워.”

초랭이의 날 선 목소리에 가람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쨌든, 언제인가 돌아오니 저 자식이 있더라고.”

“이름은?”

“응?”

“선비 새끼 이름.”

이운조가 터무니없는 걸 물었다.

그 질문에 초랭이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누나, 지금 탈쟁이한테 이름을 묻는 거야?”

유랑단의 아홉 탈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버린 사람들.

하지만.

“이상할 건 없잖아?”

그녀가 초랭이를 노려보며 덧붙여 말했다.

“너도 이름이 있잖아.”

청정하.

아주 오래전 멸문당한 청(淸)의 방계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초랭이가 조용히 그녀를 응시하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그런데 미안하지만, 저 자식의 이름 따위 몰라.”

초랭이의 말에 이운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에 초랭이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진짜 몰라서 그래. 애초에 탈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단 말이야.”

그들이 관심이 있는 대상은 오직 유랑단의 수장.

그 하나뿐이었다.

눈앞의 초랭이는 달랐지마는.

어쨌거나 그는 말했다.

“그래도 선비 탈을 하사받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해. 아마도.”

“뭐였는데?”

“으음, 글쎄.”

초랭이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숫자로 불렸을걸?”

“숫자?”

“그래. 확실하지는 않아. 말했듯, 나는 저 자식이 유랑단에 들어왔을 때 밖을 돌아다니느라 정신없었던지라.”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다며 초랭이가 히죽거렸다.

“나 말고 다른 탈쟁이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그 새끼들이 잘도 가르쳐주겠네.”

“하긴, 그건 그렇지.”

초랭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당사자에게 묻는 건 어때?”

당사자인 선비는 금방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 굴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어? 일어났다?”

선비가 눈을 떴다.

창백하게 질린 낯의 남자가 금안을 끔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 선비!”

이운조가 그에게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너 이름이 뭐야?”

“무슨…….”

그딴 질문을 하냐는 듯, 선비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내 그가 나를 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혹시나 싶어 말했다.

“아저씨를 그렇게 만든 건 우리가 아니에요.”

“압니다.”

선비가 앓는 목소리로 답해 주고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야! 누워 있어! 너 그러다 죽는다? 상처 심하다고!”

“당신이 알 바입니까? AMO에 넘길 생각이라면 빨리 넘길 것이지, 여기는 어디입니까?”

“우리 집!”

이운조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억지로 그를 눕혔다. 선비가 곧장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윽!”

저세상에 의해 입은 부상이 꽤 아픈 모양이었다.

그럴 것 같기는 했다.

“아저씨, 그냥 누워 있지 그래요?”

“시끄럽다니까요.”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그냥 뒷목을 내리쳐서 기절시킬까 하는데.

“선비 새끼님, 그냥 예쁜 누나들 말 좀 듣지 그래?”

초랭이가 그의 어깨를 발로 밟아 눌렀다.

“당신은 뭡니까?!”

“나?”

초랭이가 히죽거리고는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맞혀 보지 그래?”

정말 성격나쁜 탈쟁이였다.

청해솔은 어떻게 저 녀석을 다루고 있는 걸까?

〖도령! 사람을 그렇게 누르는 건 좋지 않소이다!〗

가람이 안절부절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천지해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관찰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저 도깨비 역시 성격이 좀 나쁜 축에 속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간에.

“그만하지 그래요?”

저러다 선비의 어깨가 바스라질 것 같아 초랭이를 말렸다.

초랭이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선비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발을 치웠다.

선비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어깨를 감싸 쥐고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봐요, 당신.”

“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자 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사이에 저런 폭력적인 녀석과 어울리게 된 겁니까?”

“죄송하지만 저 자식을 부른 건 제가 아니라 운조 언니거든요?”

“그래, 나야.”

이운조가 선비를 향해 물었다.

“너, 나 몰라?”

“압니다.”

선비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래아의 최설윤 길드장과 함께 지하 길드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인간이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이운조가 『각성, 그 후』에서 저세상과 손을 잡은 이유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하 길드를 모두 박살내겠다는 신념이 마음에 들어서였는걸?

“도대체 왜 저를 AMO에 넘기지 않고 있는 겁니까?”

날카롭게 묻는 목소리에 이운조가 우물쭈물거리는 찰나.

“저 누나가 너랑 아는 사이인 것 같다던데?”

초랭이가 말했다.

그 말에 선비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제가 당신이랑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봐요.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AMO에 넘기지 그러십니까? 혹시, 제 얼굴이 마음에 들어 기둥 서방으로…….”

“그런 거 아니거든?!”

이운조가 와락 얼굴을 구기고는.

“너, 이게 뭔지 모르겠어?”

어깨를 살짝 덮고 있는 머리칼을 들어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 줬다.

선비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나 역시 그랬다.

드러난 살갗에 웬 숫자가 바코드와 같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이운조가 날카롭게 묻고는 선비의 턱을 잡아 고개를 살짝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거기에는 웬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여기, 이 흉터.”

그녀가 일그러진 얼굴로 선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긴 건지 말해 봐. 그럼, 놓아줄게.”

“언니!”

기껏 잡은 탈쟁이 새끼를 놓아주겠다니!

더욱이 선비는 저세상과 꽤 친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당장, 선비는 저세상이 이매망량을 습격할 때도 함께 나타났던 탈쟁이였다.

그런데 놓아주겠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운조는 내 말이 들리지 않은 모양인지 선비를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말해 보라니까?”

선비가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수장님께서 만들어주신 겁니다.”

“뭐?”

선비가 자신을 잡고 있는 이운조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는 말했다.

“이제 저 역시 유랑단의 사람이라 인정하는 거라며 수장님께서 만든 흔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이어 선비가 물었다.

“이제 됐습니까?”

궁금한 건 가르쳐줬다. 그러니 이제 약속을 지킬 차례다.

선비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운조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그에게서 물러났다.

그렇게 선비가 몸을 일으킬 때, 나는 그림자를 움직여 그를 붙잡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운조 언니는 오빠를 놓아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그런 적 없거든요.”

선비를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그림자를 움직여 그를 더욱더 꼼꼼하게 묶어 버렸다.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야! 윤리사!”

“이운조 헌터.”

차갑게 그녀를 부르고는 덧붙여 말했다.

“선비는 이제부터 저희 이매망량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이운조가 움찔 몸을 떨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녀를 못 본 척 무시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나는 놓아줄 거지?”

초랭이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능글맞기 그지없는 모습에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말했다.

“당신은 청(淸)의 가주께서 맡고 있으니까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운조가 그에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꽉 쥐고서 입술을 깨물 뿐.

〖괜찮겠느냐?〗

“괜찮지 않을 게 뭐 있겠어요?”

이운조의 집을 나서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물론, 언니가 저한테서 선비를 되찾으려고 들면 싸워야겠지만요.”

하지만 이운조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

우리는 그렇게 이매망량으로 돌아왔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리사, 아빠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걸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해서 물으마. 나중에 아빠가 도와줄 수도 있으니.”

“응?”

“데리고 온 녀석.”

윤사해가 선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납치한 거니?”

아, 맞다.

윤사해한테 선비 새끼 붙잡은 걸 말 안 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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