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술래잡기(4)
“흠.”
저세상이 피가 묻은 사슬을 사라지게끔 만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유랑단의 아지트야, 지난 세계를 비롯한 이 세계에서도 밥 먹듯이 드나들었던 곳이니…….
찾는 거야 쉬웠다.
“어머, 이게 누구야?”
그 입구에 설마 미친 탈쟁이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우리 수장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도련님 아니야?”
“할미.”
할미의 부스스한 검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할미가 자신을 부르는 저세상의 목소리에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피 냄새가 나네?”
저세상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할미는 그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는 미소를 그렸다.
“더욱이 나갈 때는 둘이었던 것 같은데? 그 망할 선비는 어디에 버려두셨나?”
“궁금하면 찾아보도록 해.”
저세상이 할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네 코라면 분명 선비를 찾을 수 있을 테니.”
할미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 숲에서 죽였어야 했는데.”
윤사해에 의해 무너졌던 사령의 숲.
할미는 저세상이 그 숲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놈이라 아량을 베풀어 줬더니만, 주제 모르고 계속 기어오르는구나?”
“주제를 모르는 건 너지.”
저세상이 할미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는 속삭였다.
“할미, 네가 왜 탈이 되었는지는 알고 있어.”
할미의 붉은 눈이 살짝 흔들렸다.
저세상은 그 동요에 눈웃음을 지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네 주제를 알아 줬으면 해. 나를 계속 자극해대면…….”
“닥쳐.”
할미가 날 선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 입 찢어 버리기 전에 닥치라고.”
살벌한 목소리에도 저세상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비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그는 할미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려주고는 아지트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할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빌어먹을 새끼.”
수장님은 도대체 왜 저딴 새끼를 싸고도는 걸까?
‘나는 감히 도깨비의 애새끼를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고목(古木)에 수년을 묶였었는데.’
그런데 왜 저 새끼를.
‘도대체, 왜.’
할미가 분노에 두 손을 꽉 주먹 쥐었다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윤사해의 애새끼.”
저세상 역시 그가 싸고도는 애새끼 중 하나였다.
그러니 다른 애새끼와 꽤 친밀한 사이일 거다.
자신이 사령의 숲에서 놓쳤고, 또 각시를 위한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그 애새끼.
지금은 이매망량의 새로운 길드장이니 뭐니 지껄이고 있는 윤리사와 말이다.
“좋아…….”
할미가 히죽거렸다.
“내 주제를 알라고 했지? 어디 내 재주껏 움직여보도록 하마.”
내 주제에 맞춰서.
할미는 그렇게 저세상이 듣지 못한 말을 남겨두고서 사라졌다.
***
〖여기에서 끊겼다.〗
천지해가 야트막한 산의 입구에서 중얼거렸다.
“저세상의 흔적이요?”
〖정확히는 그 녀석을 데리고 도망친 탈쟁이의 흔적.〗
선비를 말하는 건가 보다.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요?”
〖나도 모른다.〗
천지해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산에는 있을 테니 어디 한번 잘 찾아 보거라.〗
“대도깨비 님은요?”
〖나는 구경해야지.〗
이 망할 도깨비가?
그래도 선비를 찾는 거야 쉬웠다.
그림자를 움직여 우리 외에 이 산에 있는 다른 사람을 쫓으면 됐으니.
더욱이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듯 곳곳에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선비뿐일 거다.
‘저세상도 함께면 더욱 좋고.’
그렇게 그림자를 움직여서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 곳곳을 향해 뻗어진 그림자가 무언가를 끌고서 돌아왔다.
“으윽…….”
그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선비였다.
특이한 점이라고는.
“리사?”
“운조 언니?”
선비와 이운조가 함께 있었다는 것.
선비의 탈은 벗겨져 있었다. 원래라면 탈이 지닌 특징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테지만, 입고 있는 옷 덕분에 선비란 걸 알 수 있었다.
“뭐예요? 운조 언니가 그 자식이랑 왜 있어요?”
“아, 그게 말이야.”
이운조가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이 산, 내 소유거든.”
“네?”
“설치해 둔 CCTV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오셔서 누군가 했더니 이 새끼가 있지 뭐야?”
머쓱하게 웃은 그녀가 이내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리사. 조금 전의 그림자는 네가 한 거야?”
“네.”
이운조의 앞에서 그림자를 움직여 주고는 물었다.
“혹시 선비를 저렇게 만든 건 언니인가요?”
“아니!”
이운조가 다급하게 외쳤다.
“내가 한 거 아니야! 도착하니 이 새끼가 다 죽어가고 있잖아!”
그녀의 말대로 선비는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 힘겹게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저세상과 함께 사라졌던 탈이었는데.
‘왜 이렇게 다친 거야?’
설마, 저세상이 이렇게 만든 건가?
선비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리사, 어떻게 하지? 이 새끼 진짜 죽을 것 같은데?”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전에 선비가 죽을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상처는 심각했다.
“일단, 옮기죠?”
“AMO는 안 돼!”
이운조가 다급하게 외쳤다.
“언니……?”
“그, 그게.”
그녀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고는 이내 말했다.
“AMO로 데리고 가면 이 새끼, 금방 풀려날 거야.”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당장 윤사해가 AMO에 잡아 넘긴 중의 행방이 묘연해졌으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죠?”
“우리 집으로 옮길까?”
“네?”
탈쟁이를 집에 들이겠다니, 진심인 건가?
선비를 이매망량에 잡아 두려고 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운조는 말했다.
“우리 집 안전해! 이 새끼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거든! 스킬 차단 아이템도 제대로 구비해 놨고!”
“선비의 공간 스킬을 막으려면 S급 아이템이 필요할 텐데요?”
“있어! 예전에 빼돌린 게 있거든!”
빼돌렸다니.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아이템을 훔쳐온 건지는 묻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그렇게 선비를 이운조의 집으로 옮겨주게 됐다. 나, 참. 저세상을 찾으러 왔다가 환자 이송을 하게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
선비의 피가 묻은 손을 꼼꼼하게 씻고는 밖으로 나왔다. 내가 손을 씻는 사이, 이운조는 선비의 상처를 보고 있었는데.
“언니?”
그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언니, 왜 그래요?”
선비의 드러난 상체에 넋이 나간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뭘 보고 놀란 걸까?
“아무것도 아니야.”
이운조가 선비의 상처를 다급하게 치료하고는 말했다.
“리사, 미안한데 저기에 있는 내 핸드폰 좀 들고 와줄래?”
“네, 여기요.”
이운조는 핸드폰을 받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했더니.
“응, 해솔아.”
청(淸)의 가주이자 청해진의 누나인 청해솔이었다.
“미안한데 너랑 같이 있는 탈쟁이 새끼 있지? 걔 좀 나한테 보내줄래? 별건 아니고, 급하게 알아볼 게 있어서 그래.”
청해솔과 같이 있는 탈쟁이라니.
‘초랭이를 말하는 건가?’
짙은 분홍빛 머리칼을 지닌 그는 어느 순간부터 청해솔의 곁을 보좌하기 시작했다.
이무기인 ‘가람’과 함께 말이다.
“응, 그럼 부탁할게. 고마워.”
이운조가 전화를 끊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니, 도대체 왜 그래요?”
“아, 리사…….”
이운조가 애매하게 웃고는 말했다.
“미안, 아직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말해 줄 수가 없네?”
“그러니까 뭐를요?”
이운조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답답했지만 참기로 했다.
이운조라면 분명 언제인가 나한테 스스로 말해 줄 테니.
그녀의 성격상 그랬다.
“광혜원 언니 불러줄까요?”
“너희 힐러?”
“네.”
이운조가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렇다니, 뭐.
나는 광혜원을 부르는 걸 그만두고 이운조의 옆에 앉았다.
“안 가? 안 바빠?”
“선비를 두고 어떻게 가요? 언니가 이 자식을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가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나?
‘더욱이 선비랑 아는 사이인 것 같고.’
무엇보다 선비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저세상의 행방과 그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론, 선비가 순순히 답을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먹 앞에서는 없던 진실도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아빠한테는 말해야겠지?’
이제 막 돌아온 윤사해에게 걱정을 안겨다 주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혼이 날 테니까.’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
“선비는 어디에 버려두고 혼자서 돌아왔니?”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저세상이 비딱하게 웃었다.
“알고 있으면서 묻다니, 생각보다 성격이 더 나쁜걸?”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목소리에 유랑단의 수장이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옆에서 각시는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저세상이 그녀를 흘긋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죽였어.”
“히끅!”
각시가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튀어나오는 딸꾹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앳된 얼굴의 각시가 겁에 질린 눈으로 저세상을 쳐다봤다.
그런 그녀를 진정시킨 건 유랑단의 수장이었다.
“잠시 자리를 떠나 있으렴.”
“하지만, 수장님.”
“나는 괜찮으니 어서.”
각시가 눈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녀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유랑단의 수장이 말했다.
“선비, 그 아이는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아이란 걸 알 텐데?”
“그래서 죽였지.”
저세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죽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말에 유랑단의 수장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세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를 오랫동안 모셔온 탈을 제 손으로 죽였다고 해도 웃는 모습이라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한참을 웃던 유랑단의 수장은 겨우 웃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나도 죽일 거니?”
저세상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당연하지.”
애초에 끝을 정해두고 시작한 관계였다.
당연히 그 끝이란 유랑단의 수장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저세상이 그를 보며 말했다.
“모든 게 끝나면 내 손으로 당신을 죽여 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
“그것참 영광이구나.”
유랑단의 수장이 미소를 내보였다.
저세상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