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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88)화 (388/500)

388화. 술래잡기(3)

“윤리사 길드장님은…….”

진달래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고는 웃었다.

“리타와 똑같이 다정하시네요.”

“네?”

감사 인사 한 번 전한 거로 듣기에는 너무 과한 칭찬인데?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니 진달래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안심해도 되겠어요?”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보니 진달래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리타가 계속 걱정됐거든요.”

“저한테 맞을까 봐요?”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진달래가 어깨를 으쓱인 후 입을 열었다.

“윤리사 길드장님께서 리타를 미워하시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미워해요.”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제가 아닌 어느 누구든 미워할걸요?”

윤사해가 사라지고, 윤리오도 쓰러졌던 지옥 같은 나날. 윤리타는 나를 버려두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기에 나는 그 지옥을 오롯이 혼자 견딜 수밖에 없었다.

도윤이와 단아가 있었다고는 해도 친구가 주는 안정감은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차이가 있었다.

“이해해요.”

진달래가 옅게 미소를 그리고는 내 손을 슬며시 잡았다.

“하지만 리타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출근했을 진달래가 왜 이런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했더니.

‘저 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구나?’

윤리타가 가족의 외면을 받을까 봐 걱정이 돼서.

“진달래 회장 대리님.”

“네, 윤리사 길드장님.”

“혹시 리타 오빠 좋아하세요?”

진달래가 놀란 눈을 보였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한다라…….”

쿡쿡 웃음을 흘리던 그녀가 돌연 내게 물었다.

“어떨 것 같나요?”

어떨 것 같냐고?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엄한 남자를 집으로 들인 거겠지.

진달래는 내 물음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리타한테 한 번 물어봐 주세요.”

“네?”

“저를 좋아하는지요.”

그러고는 진달래가 몸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다른 직원들 몰래 회사를 잠시 빠져나온 거라서요. 지금쯤 다들 저를 찾고 있을 거예요.”

“아…….”

“다음에 다시 뵙기를 바랄게요.”

왜인지 모르게 진달래와 다시 만날 자리는 상견례일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휙휙 고개를 내젓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빠졌어.”

윤사해에게 길드의 일도 맡겼겠다, 편하게 저세상을 찾아다니려고 한 건데.

‘진달래를 만날 줄이야.’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야 하나? 어차피 윤리타도 찾았으니, 여기에 만족을 하고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축하해, 윤리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니,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세상.”

“그래, 안녕.”

“안녕?”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곧장 검을 꺼내 쥐었다.

“서로 인사를 할 사이였던가?”

“아니었어?”

저세상이 픽 웃고는 물었다.

“우리 친하잖아.”

“개소리하지 마.”

물론, 친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사이이니 어떻게 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과거형이다.

“네가 아빠를 그 꼴로 만들고.”

또한, 윤리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크게 다치게 하고.

“이매망량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 시점부터.”

저세상이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그 눈을 피하지 않으며 일그러진 미소를 내비쳤다.

“우리 관계는 끝났어.”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하건만, 저세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

저세상이 입을 연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쓸쓸하게 미소를 그리며.

“하긴, 그렇지.”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같이, 나는 저세상이 그럴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축하해.”

“뭐?”

“아저씨도, 그리고 형들도 무사히 네게 돌아왔잖아.”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세상이 『각성, 그 후』의 데이터를 이 세계에 업로드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애초에 내게 미리 말을 했다면.

그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문득 드는 의문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저세상한테 있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였는가 싶어서.

‘내 세상의 주인공은 너야.’

떠오르는 목소리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 세상의 주인공 역시 너였는데.

그런데 너는 나를 저버렸다.

“저세상…….”

온갖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찰나.

“안녕, 윤리사.”

저세상이 작별을 고했다.

“어디 가려고!”

파아앗-!

그림자를 일으켜 그의 앞을 막아 세우고는 외쳤다.

“들어올 때는 네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말 몰라?”

“윤리사.”

저세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고는 말했다.

“왜?”

그에 비딱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가 말했잖아.”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라고.

나지막하게 뒷말을 덧붙이자 저세상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너는 내게 있어 적이야.”

주인공 따위가 아니라.

그림자를 움직여 창을 만들어 내고는 손에 쥐었다.

“안 그래도 너를 찾아다니는 중이었어.”

“리타 형을 그렇게 찾아다니더니, 이제 나야?”

“그래.”

타앗!

담벼락 위로 몸을 옮기고는 창을 치켜들었다.

“너도 우리 가족이니까.”

“언제는 적이라고 하더니?”

“시끄러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차갑게 벼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지금 너를 내 가족으로 대해야 할지, 적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 중이니까.”

“왜 그런 고민을 해?”

저세상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네가 말했잖아, 윤리사.”

촤르륵!

사슬을 꺼내 나를 향해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앞을 막고 있던 그림자에 그것을 휘둘러 내가 일으킨 것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나는, 네 적이라고.”

웃는 낯으로, 아주 내 가슴에 못을 박아버렸다.

“저세상!”

담벼락 위를 딛고 있던 발을 굴리면서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어이쿠.”

갑작스럽게 나타난 선비가 내 창을 막아 버렸다.

“이거, 참. 힘이 장사군요.”

“윽……!”

선비에 의해 담벼락 밖으로 몸이 튕겨져나갔다.

“저세상, 당신은 도대체 뭐하러 저런 위험한 분을 만나러 온 겁니까? 제가 막지 않았더라면.”

“내가 막았겠지.”

저세상이 선비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두 눈으로 보고 싶었어.”

“무엇을요?”

“가족을 되찾은 윤리사를.”

그 말에 이가 절로 갈렸다.

“너만 아니었음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

『각성, 그 후.』

그 빌어먹을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거란 의미였지만.

“그래, 나만 아니었음 너도 아저씨도 형들도 계속 행복했을 거야.”

저세상은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그럼, 윤리사. 정말로 약속하자. 다음에 만날 때는 서로 적으로,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우기로.”

“뭐?”

멍하니 묻는 것과 동시에 저세상이 선비와 함께 사라졌다.

“이런……!”

저세상, 저 망할 자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면 다 되는 줄 아는 건가?

‘망할 저세상!’

이를 까드득 갈고는 외쳤다.

“천지해!”

〖아해야, 내 진명으로 부르지 말라 그렇게 일렀거늘.〗

“잔소리는 나중에 해요! 그보다 저세상, 쫓아갈 수 있죠?”

〖으음.〗

곤란하다는 듯, 난처한 얼굴로 신음을 흘리는 목소리에 물었다.

“흔적은요? 그 새끼 흔적은 쫓아갈 수 있어요?”

〖그거야, 뭐.〗

천지해가 히죽거리고는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빛이 점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저세상.

선비와 함께 사라진 그의 흔적을 보여주는 길이었다.

천지해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보다시피 우리 아해가 말하는 녀석의 뒤를 보여주는 거야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지.〗

그러고는 천지해가 물었다.

〖어떠냐, 아해야? 대단하지?〗

칭찬을 바라는 듯, 능글맞게 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요. 역시 대도깨비 님이세요.”

빛이 일러주고 있는 저세상의 흔적을 쫓아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를 놓치는 건 이제 사양이었다.

***

“선비, 여기는 유랑단의 아지트가 아닌데?”

저세상이 어떻게 된 것이냐는 듯 선비에게 물었다.

그에 선비가 짧게 혀를 찼다.

“귀찮은 게 붙어서 말입니다.”

“윤리사한테는 추적 스킬이 없어.”

“다른 녀석이 붙었습니다.”

“다른 녀석?”

저세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그게…….”

선비가 자신의 뒤를 흘긋 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거주자의 힘이 저에게 달라붙은 것 같군요.”

“거주자?”

저세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도깨비.’

그가 윤리사의 부름을 받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게 분명했다.

하늘과 땅.

자연이 존재하는 이상, 무적인 그 존재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울 터.

‘물론, 미지 영역에서 다루던 힘의 절반도 내지 못하는 상태겠지만.’

그래도 대도깨비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인간을 죽일 수 없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라고 해도 그랬다.

“어쩔 수 없지.”

저세상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사슬을 꺼내 들었다.

“그건 갑자기 왜 꺼냅니까?”

“도와주려고.”

“누구를요? 저를요?”

“그런 편이지.”

저세상이 손에 들린 것을 가볍게 움직이고는.

“큭……!”

선비의 심장 부근에 그대로 꽂아 버렸다.

“다… 당신……!”

“대도깨비의 눈을 피하려면 이럴 수밖에 없어.”

죽거나 혹은 그에 가까운 상태가 되거나.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따라붙은 시점에서는 유랑단의 아지트로 돌아가지도 못하잖아.”

그랬다가는 유랑단의 근거지가 발각될 테니 말이다.

“그걸 원하지는 않지? 너는 유랑단의 수장에게 은혜를 입은 몸이니까. 그러니 그 녀석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고 해도 아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 들다니!

“이, 미친……!”

선비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

저세상은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탈을 벗기고는 그대로 부서뜨렸다.

‘어차피 다시 복구될 테지만.’

또 부서뜨리면 되는 일이었으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

저세상이 선비로부터 걸음을 옮기고는 웃었다.

“나는 어차피 너희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목적은 하나.

“내 세상의 주인공이 살아남으려면 너희 같은 악당들은 죽어 버리는 게 좋거든.”

윤사해가 돌아온 시점에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했을 때부터 모든 게 어그러졌을 수도 있다.

“저세상……!”

저세상은 피를 토하듯 자신을 불러대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유랑단의 아지트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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