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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87)화 (387/500)

387화. 술래잡기(2)

“고마워, 아빠!”

“뭘, 이 정도로 가지고. 하지만, 리사. 이 자리는 네 것이란다. 알지?”

“응!”

저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한 후에, 그런 후에.

“다시 돌려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윤사해가 물끄러미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이제 그만 리타 좀 놓아주거라.”

“아.”

윤리타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단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다.

황급히 그를 놓아주니 손에서 보랏빛이 도는 검은 머리칼이 우수수 쏟아졌다.

“윤리사, 너무해.”

윤리타가 울상을 지었다.

“너무하기는 뭘 너무해?”

윤리타의 등을 소리 나게 때린 후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 알겠어?!”

윤리타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진짜 너무해.”

별 말 없이 내 말을 수긍했다.

아니, 그보다 이 오빠가? 계속 내가 잘못한 것처럼 구네? 한 대 더 때려 버릴까 보다!

하지만 나는 윤리타를 더는 때리지 못했다. 그가 윤사해의 뒤로 후다닥 숨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잽싸게 구는 망할 둘째 오빠였다.

윤사해는 티격태격 다투는 우리가 보기 좋은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하긴, 윤사해의 입장에서는 정말 많이 보고 싶었을 광경이었을 거다.

그가 있었던 다른 세계에서 우리는 분명…….

‘생각하지 말자.’

중요한 건, 지금.

지금 이 세계를 유지하는 거니까.

***

“리오.”

“아버지, 오셨어요?”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윤리오가 몸을 일으켰다.

“일어날 필요 없단다. 누워 있으렴. 몸은 좀 어떠니?”

“괜찮아요.”

윤리오가 배시시 웃고는 물었다.

“리사는요?”

“할 일이 있다는구나. 잠시 자리를 비웠단다.”

“그래요? 오늘 아침부터 저 때문에 이곳저곳 움직이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

이곳저곳 움직였다고 해도 윤리오가 윤리사와 함께 방문한 곳은 비나리 고등학교와 진달래의 집뿐.

“아, 진달래 누나 집은요? 윤리타가 문 안 열어 줘서 현관문 부순 건 어떻게 됐어요?”

“교체해 줬단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윤리오가 싱긋 웃었다. 그런 아들에게 윤사해가 물었다.

“리타에 대해서는 안 묻니?”

“네, 아버지 따라서 오지도 않은 멍청이의 안부 따위 궁금하지 않아요.”

“아빠 따라서 왔거든?!”

“오.”

윤리오가 입술을 오므리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멍청이, 왔네?”

“누구보고 계속 멍청이라는 거야?”

“너.”

윤리타가 발끈하여 무엇이라 외치려고 했지만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왜 왔어?”

“당연히 너 보려고 왔지.”

윤리타가 우물쭈물 윤리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사과도 하고 싶어서…….”

“리사한테는?”

윤리오가 두 눈을 뾰족하게 뜨며 물었다.

“리사한테는 제대로 사과했어?”

윤리타가 우물쭈물 윤리오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정말이야! 그쵸, 아빠?”

“그래.”

윤사해가 윤리타를 두둔했다.

둘째 아들이 하나뿐인 동생한테 당한 것처럼 첫째 아들한테서 머리가 쥐어뜯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윤리타는 자신을 두둔하는 윤사해의 곁에 찰싹 붙어서는 물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했을 텐데?”

“그래도 사람이 좀 물어볼 수도 있지! 그거로 무안을 주냐?!”

버럭 지르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미, 미안.”

곧장 사과하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많이 미안하기는 한가 보다? 그렇게 바로 꼬리를 내리다니.”

“나 꼬리 없는데.”

윤리타가 불퉁하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

윤리오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사과에 픽 웃고는 말했다.

“아버지,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그러마.”

윤사해는 자리를 떠나기 전, 둘째 아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감정이 복받치는지, 윤리타는 입술을 꾹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울어?”

“아니!”

윤리타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벅벅 닦고는 말했다.

“울기는 누가 운대?”

그렇게 외치는 사이, 윤사해는 조용히 첫째 아들의 병실을 떠났다.

그가 그렇게 떠나자마자 윤리타가 윤리오의 가까이에 앉고서는 울먹였다.

“내가 미안해.”

“뭐가?”

“네가…….”

윤리타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가 그렇게 된 게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그러고는 그는 윤리오를 볼 낯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딱!

윤리오가 그런 윤리타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먹이고는 말했다.

“내가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했잖아. 이건 내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너는 그게 문제야. 남의 잘못까지 네가 안으려고 하는 거.”

“아닌데…….”

“맞거든?”

윤리오가 검지를 치켜들고는 윤리타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우리 고등학생 때도 생각해 봐. 나 혼자 혼나면 끝날 일, 너도 같이 했다고 나서지를 않나.”

“청해진도 같이 그랬었는데.”

“야!”

윤리오가 버럭 화를 냈다.

“너 계속 말대꾸할래?”

윤리타가 입술을 삐죽였다.

“사람이 말대꾸 좀 할 수 있지.”

“크게 말해.”

윤리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윤리오가 침묵하는 동생을 조용히 쳐다보다 물었다.

“진달래 누나와는 어떻게 된 일이야? 왜 그 누나랑 같이 있었어?”

윤리타가 머쓱하게 말했다.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만났어. 그때 한창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누나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집에 데리고 간 거야?”

“응.”

윤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으니까.”

“하긴, 네가 생각이 있었으면 리사를 그렇게 혼자 뒀을 리가 없지.”

조소를 흘리며 윤리오는 윤리타를 놀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집에, 그것도 여자 집에 그렇게 눌러앉아 살고 있었다니!”

윤리오가 윤리타를 흠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 아니, 그보다 진달래 누나랑 평생 같이 살려고 했어?”

“평생은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랑 리사가 너 찾지 않았으면 평생 진달래 누나 집에서 땅 파고 있었을 거면서!”

윤리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윤리오의 말대로 그가 윤리사와 함께 자신을 찾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그랬을 것 같았기에.

윤리오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윤리타를 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할 말 없지?”

윤리타가 쭈뼛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정말…….”

자신과 똑같이 나이를 먹었는데 왜 저렇게 애 같을까?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두 팔을 벌렸다.

“뭐 하는 거야?”

“이리 와. 한 번 안아 보자.”

“징그럽게.”

“죽을래?”

윤리타가 헤실거리며 웃다가 윤리오의 품에 달려들 듯이 안겼다.

“윽! 무거워!”

“네가 안기라며!”

윤리타가 윤리오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이제부터 사과 그만.”

윤리오가 날선 목소리를 내뱉고는 윤리타의 뺨을 꼬집었다.

“앞으로 잘해. 특히 리사한테.”

“아야야…….”

“대답.”

“알겠어! 잘할게!”

두 눈에 눈물이 질끔 맺힐 정도로 뺨을 잡아당기는 손에 윤리타가 다급하게 외쳤다.

윤리오는 그 대답에 윤리타를 놓아 줬다.

“그보다 리사는 어디 간 거래? 혹시 알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윤리타가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친구였던 애를 만나러 간다고 하던데?”

“친구였던 애?”

윤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사한테 그런 애가 있나?”

***

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윤리사는.

“여기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네요. 출근하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진달래 회장 대리를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저 역시 윤리사 길드장님을 여기에서 만날 줄 몰랐네요.”

말은 잘하지.

누가 봐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모르는 척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희 오빠가 신세를 많이 졌어요.”

“아니에요, 윤리사 길드장님.”

진달래가 손사래를 치고는 말했다.

“저야말로 죄송하네요.”

“제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리타 오빠를 집에 숨겨두고 있었던 걸 진작 말해 주지 않아서요?”

나도 모르게 다소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가고 말았다.

황급히 사과하려고 하는데 진달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러고는 사과했다.

“리타가 제발 자신을 좀 숨겨달라 했거든요. 도망치고 싶다고. 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매달리더라고요. 그래서 외면하지 못했답니다.”

그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바보 오빠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윤리사 길드장님.”

진달래가 부드럽게 나를 타일렀다.

“리타는 단 한 번도 윤리사 길드장님과 리오를 잊은 적 없으니까요. 물론, 윤사해 전 길드장님도요.”

밤마다 매일 끙끙 앓으며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면서 진달래가 말을 덧붙였다.

“리타에 대한 화는 이제 그만 거둬 주셨으면 해요.”

“……화는 진작에 풀렸어요.”

윤리타의 머리를 쥐어뜯을 때, 그때 내 화는 모두 풀렸다.

“감사해요, 진달래 회장 대리님.”

예상치 못했던 감사 인사인 걸까?

진달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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