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술래잡기(1)
“윤리오, 윤리타.”
내 전화를 받고 달려온 윤사해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고는 말했다.
“서 비서, 리오를 병원으로 옮겨다 주게.”
“네, 알겠습니다.”
서차웅이 윤리오를 부축해 주고자 몸을 움직였지만.
“잠시만요, 아버지!”
윤리오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 병원에 안 가도 괜찮아요! 그냥 잠시 힘이 빠진 것뿐이니까!”
“윤리오.”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자 윤리오가 기가 죽은 얼굴로 웅얼거렸다.
“네…….”
그렇게 서차웅을 따라 병원으로 가는가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 리타 너무 혼내지 마세요. 저랑 리사가 좋게좋게 잘 타일렀으니까요.”
윤리오가 멈춰 서서는 윤리타를 변호했다.
윤사해는 멍하니 물었다.
“좋게좋게 잘 타일렀다고?”
윤리타의 머리는 쥐어뜯긴 채였고, 잘생긴 얼굴은 빨갛게 부어 있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윤리오의 입장에서는 봐준 것인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너무 혼내지 말아 주세요. 겨우 찾았는데, 그러다 또 집 나가면 어떻게 해요?”
그 말에 윤리타가 발끈했다.
“집 안 나가! 안 나갈 거라고!”
“안 믿어. 아니, 못 믿어.”
“어떻게 하면 믿어 줄 건데?”
“서약이라도 하면 믿어 줄게.”
대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서 윤리오가 말했다.
“못할 것 같으면 말아.”
“할 거야!”
“뭘 한다고 하는 거니?”
그렇게 말한 건 윤사해였다.
“서 비서.”
어서 윤리오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는 듯, 윤사해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그에 서차웅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윤리오를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나와 윤사해, 윤리타만 남게 됐다.
윤리타는 윤사해의 앞에서 무릎 꿇은 채 그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아버지, 저기, 그게…….”
윤리타가 쭈뼛거리다 윤사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윤리타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고서는 미소를 보였다.
“잘 다녀왔단다, 리타.”
감정이 복받치는지, 윤리타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리타 오빠는 아빠가 안 보고 싶었나 봐.”
“아니거든?!”
윤리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리타 오빠, 울어?”
“아니!”
“우는데?”
“아니라니까!”
윤리타가 그렇게 외치고는 거칠게 눈물을 닦아냈다.
“리타.”
그것을 윤사해가 막았다.
“그러다 피부 상하면 어쩌려고.”
“아버지…….”
“그리고 왜 갑자기 그렇게 부르는 거니?”
“네?”
“아버지라고 말이다.”
윤사해가 다정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리타가 ‘아빠’라고 불러주는 게 더 좋구나.”
윤리타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리타?”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리타, 왜 그러니?”
윤사해가 놀라 그의 어깨를 잡는 순간.
“아빠아아!”
윤리타가 윤사해를 끌어안았다.
“리, 리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윤사해가 웃음을 터트리며 윤리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항은 다 끝났니?”
“반항한 적 없어요.”
윤리타가 울먹였다.
“저는 그냥…….”
윤리오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못 이기고 집을 나가 버렸던 것뿐.
그러니까 윤리타가 저지른 건, 반항이 아닌 방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리타 오빠.”
나를 감히 그렇게 내버려 두고 간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진달래와 함께 있었다니.
“집에 돌아가면 내 손에 아주 죽을 줄 알아.”
“아, 아빠.”
윤사해가 윤리타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무시했다.
이번에는 그도 윤리타를 보듬어 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리타는 리사한테 잘못했다고 확실하게 사과하고.”
“사과했는데…….”
“더 확실하게 잘못했다고 제대로 사과하고.”
“네에.”
윤리타가 입술을 삐죽였다.
“리사는 그만 때리고.”
“때린 적 없어요.”
“윤리사, 너! 거짓말을……!”
윤리타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내가 그를 향해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인 탓이리라.
“그치, 리타 오빠?”
“으응?”
“리사는 리타 오빠 때린 적 없잖아. 그렇지 않아?”
“그, 그치. 맞아.”
윤리타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맞은 곳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길드장님! 저 왔어요!”
류화홍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때였다. 그의 등장에 나도 윤사해도 동시에 말했다.
“집으로 데려다줬으면 하는데.”
“집으로 데려다줘, 화홍이 오빠.”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이내 유쾌하게 웃으며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리사가 이제 이매망량의 길드장이었지.”
“아빠, 도로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도 돼.”
“아니, 괜찮단다.”
윤사해가 단호하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빠는 이제 좀 쉬고 싶구나.”
옅게 미소를 그리는 얼굴에 나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단, 돌아갈까?”
“응?”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윤리오가 부서뜨린 진달래네 현관문은 제대로 보상해 줬다.
***
“하나도 안 바뀌었네.”
윤리타가 두리번거리며 감탄한 듯 말했다.
“왜? 바뀌었으면 했어?”
“아니…….”
“그대로인 게 불만이면 지금이라도 말해.”
싱긋 웃으며 윤리타를 놀렸다.
“사실, 리타 오빠 방 굴착기로 밀어 버릴까 고민했었거든. 원하면 지금 오빠 방 없애줄게.”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윤리타가 빼액 소리 지르고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지금 뭐하자는 짓이야?”
“이 오빠가 동생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중이랄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당장 나한테서 떨어져. 불쾌하니까.”
“부, 불쾌하다니.”
윤리타가 시무룩 기가 죽은 얼굴로 슬금슬금 내 곁에서 떨어졌다.
윤사해는 정다운 우리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린 후 말했다.
“고생 많이 했겠구나.”
나를 향해 건넨 말이었다.
“이 넓은 집을 혼자서 지켰다니.”
“안 지켰어요.”
“응?”
윤사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머쓱하게 뺨을 긁적인 후 사실을 말해 줬다.
“사실, 이매망량에 계속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집이 싫었거든요.”
“아가…….”
윤사해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아빠가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윤사해가 다른 세계로 가 버리고, 윤리오가 쓰러진 그 모든 일의 원인은 단 한 사람.
‘저세상.’
바로 그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사.”
“괜찮다니까요.”
일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윤사해는 돌아왔다. 윤리오는 깨어났고, 윤리타 역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저세상, 그 빌어먹을 자식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었다.
“저, 아빠.”
“응?”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든 부탁하렴.”
윤사해가 내 부탁이라며 뭐든 들어주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고민하다 말했다.
“이매망량, 계속 맡아 줄 수 있을까? 당분간만.”
“뭐?”
윤사해가 놀라 물었다.
“윤리사, 그게 무슨 소리야?”
윤리타 역시 놀라 물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윤리타에게 물었다.
“내가 이매망량의 길드장인 건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당연하지 TV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누가 몰라?”
“하긴, 진달래 회장 대리님 집에 있는 TV가 꽤 좋아 보이더라고.”
“크흠.”
윤리타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을 돌렸다.
“아빠, 아무래도 리사가 이매망량을 이끌면서 많이 힘들었었나 봐요. 길드원들이 사실 제멋대로 구는 면이 없지 않아 있잖아요?”
“리타 오빠가 할 말은 아닌데?”
“어쨌든!”
윤리타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잘못했다니까? 그만 좀 놀려! 부끄러우니까!”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이 왜 그런 거래?
윤리타를 향해 혀를 내밀며 그를 계속해서 놀렸다.
“싫어. 평생 놀릴 거야. 오빠한테 애인이 생기고, 그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도 줄곧, 평생 놀릴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아.”
“윤리사, 너 진짜……!”
윤리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러니까, 문장으로 말이다.
“너 진짜 엄마 닮았어!”
어떻게 그런 심한 욕을!
에일린 리의 외모를 닮았다는 말이라면 몰라, 저건 분명 그녀의 성격을 닮았다는 말일 터.
“윤리타!”
나는 그의 머리를 쥐어 잡았다.
“아악! 아빠!”
윤리타가 고민에 잠겨 있는 윤사해를 비명을 지르며 찾았다.
그 비명에 윤사해가 상념에서 깨어나서는 말했다.
“그래, 리사.”
“응?”
“아주 잠시 이매망량을 내가 대신 맡도록 하마.”
윤사해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아악! 아파! 아프다니까?!”
윤리타의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