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쌍둥이(2)
“우와, 진달래 회장 대리님. 엄청 바쁘게 사시는구나?”
비나리 고등학교에 직접 강연까지 오다니.
“듣기로는 비나리 고등학교 졸업생이래.”
“학교에 애정이 많다고 하던데?”
“전교 회장도 지냈다고 들었어.”
하긴, 진달래를 보면 학창 시절에 엘리트였을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런데…….
“리오 오빠, 왜 그래?”
윤리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서.”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랑?”
“응.”
윤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진달래가 윤리오의 병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라고 하던데.
“오빠,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랑 서로 친한 사이야?”
“아니.”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잠시 당황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진달래 회장 대리님은 오빠랑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고 하던데?”
“그럴 리가.”
윤리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 누나 별로 안 좋아했어.”
“왜?”
“틈만 날 때마다 윤리타 불러서 계속 일 시켰거든.”
윤리오가 불퉁하게 말했다.
“윤리타는 또 좋다면서 가고.”
“그러니까 오빠한테서 리타 오빠를 자꾸 뺏어가서 싫었다는 거구나?”
“리사!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윤리오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그런 거 아니야!”
도윤이와 단아는 신기하다는 듯이 윤리오를 쳐다봤다.
“리오 형은 리타 형을 엄청 아꼈나 봐요!”
“동생을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니. 한단예랑 한단이도 오빠를 좀 본받으면 좋겠네요.”
도윤이와 단아의 말에 윤리오가 얼굴을 붉혔다.
아이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여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리사, 가자!”
“응?”
“윤리타 대충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으니까!”
윤리오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끌어당겼다.
“잠시만, 오빠!”
도윤이와 단아한테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얘들아, 나중에 내가 연락할게!”
“응, 리사.”
“못생긴 오빠 꼭 찾기를 바랄게!”
도윤이와 단아의 인사를 뒤로하며 나는 그렇게 윤리오와 함께 비나리 고등학교를 나왔다.
***
“후우…….”
비나리 고등학교의 교문을 나오자마자 윤리오가 지친 낯으로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오빠, 괜찮아?”
“응, 괜찮아. 조금 쉬면 돼.”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지라 윤리오의 체력은 바닥일 거다.
“힘들면 돌아가자.”
“괜찮아, 리사.”
윤리오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윤리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고 했잖아.”
“그냥 해 본 말 아니었어?”
“응.”
윤리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어났다.
“아무래도, 윤리타. 진달래 누나랑 같이 있는 것 같아.”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랑?”
그럴 리가!
진달래가 암만 윤리타와 친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 자식을 숨겨주고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그 사실을 나한테 숨길 리도 없었고.
하지만 나는 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글쎄.”
윤리오가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리사, 네 친구들이 그랬잖아. 윤리타가 CW 강연을 끝으로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지.”
“윤리타한테 익숙한 장소라고 해 봤자, 비나리 고등학교와 청해진의 집. 그리고 이매망량뿐이야.”
그러나 윤리타는 청해진의 집에도, 이매망량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 말대로라면 윤리타가 지금 진달래 회장 대리님과 동거 중이라는 건데…….”
“그러니까 찾아가 봐야지.”
윤리오가 비딱하게 웃었다.
“정말로 두 사람이 동거 중인지, 윤리타가 그 집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말이야.”
“진달래 회장 대리님의 집이 어디인지는 알고?”
“물어봐야지.”
윤리오가 휴대폰을 들고는.
“아버지, 운조 누나한테 CW의 진달래 회장 대리님 집 주소 좀 물어봐 주실래요?”
윤사해한테 전화를 걸었다.
“윤리타가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랑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진달래 회장 대리님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면 병원으로 돌아갈게요.”
윤리오는 그 이후로도 계속 ‘네’를 연발했다.
이윽고 전화가 끊겼다.
“아버지는 너무 걱정이 많으셔.”
“그럴 수밖에 없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자신이 사라져 있던 동안, 죽은 듯이 누워 지내다 이제 일어났는데.
“오빠가 죄인이야.”
“죄인은 윤리타지!”
윤리오가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이렇게 일어났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다니! 아버지한테도! 그 자식, 아버지 가슴에 아주 대못을 박았어!”
“내 가슴에도 대못을 박았어.”
“그랬단 말이지? 만나는 순간 아주 쥐어박아 줄게.”
윤리오라면 정말 윤리타를 만나는 순간 쥐어패 버릴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오빠만 믿을게!”
“그래, 리사.”
윤리오가 싱긋 웃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만 믿어.”
***
윤리타가 흠칫 놀라 고개를 휙휙 돌렸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소름이 돋아서요.”
“춥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윤리타가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갑자기 이러네요.”
“감기 오는 거 아니야?”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윤리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안 나는데.”
“저는 걱정 마세요, 누나.”
윤리타가 자신의 이마 위에 얹어진 손을 조심스럽게 내리고는 말했다.
“그보다 어서 출근하셔야죠.”
“그래야지.”
여자가 겉옷을 챙겨입고는 미소를 그렸다.
“리타.”
“네, 누나.”
“리오에게 안 가 볼 거니?”
윤리타가 움찔거렸다. 그 동요를 보지 못한 척, 여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윤사해 전 길드장님께서도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던데.”
윤리타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 입을 열었다.
“계속 이렇게 있는 건.”
“누나.”
윤리타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고는 여자를 향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회사,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리타.”
진달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다녀올게.”
“네, 누나.”
윤리타가 그녀를 현관문까지 배웅하며 손을 흔들어줬다.
“퇴근할 때 전화 주세요.”
“데리러 오려고?”
“저녁 만들어 놓으려고요. 원하신다면 데리러도 갈게요.”
“그건 됐어.”
여자가 윤리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이내 집을 나섰다. 윤리타가 닫힌 문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리오에게 안 가 볼 거니? 윤사해 전 길드장님께서도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던데.’
여자가 남겨두고 간 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 역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윤리오가 쓰러지고, 윤사해가 사라졌을 때, 그렇게 자신과 윤리사만 남았을 때.
‘리사를 버렸으니까.’
윤리오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윤리사를 텅 빈 집에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그런 자신이 어떻게 가족의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러지 못해.’
윤리타가 자조적으로 웃던 때.
***
“윤리사 길드장님께서 저희 집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진달래는 현관문 앞에서 윤리사와 만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리오는 언제 깨어난 거니?”
윤리오와 함께 말이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일어났죠.”
진달래가 놀라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닌다고?”
“그러니까요.”
진달래의 말을 거들고는 말했다.
“리타 오빠를 찾겠다고 몸소 움직이더라고요.”
“그렇구나.”
진달래가 싱긋 웃었다.
“리타는 안에 있어.”
“네?”
나와 윤리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달래가 왜 그러냐는 듯 웃었다.
“리타 찾으러 왔다며? 리타는 집 안에 있어.”
“어, 음.”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순순히 가르쳐 줘도.”
“괜찮아요.”
진달래가 내 말을 끊고는 웃었다.
“다만, 리타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주셨으면 하네요. 생각보다 여린 아이라서.”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큰 것 아닙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네, 진달래 회장 대리님.”
그녀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진달래가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그녀의 집 앞에 멀뚱멀뚱 서 있던 우리는.
“리오 오빠, 어떻게 할까?”
“일단 쳐들어가자.”
“쳐들어가자고?”
“응.”
윤리오의 손가락 끝에서 벚꽃잎이 휘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검이 쥐어졌다.
“뭐 하려는 거야?!”
“그렇지만, 리사. 윤리타는 절대로 문 안 열어 줄걸?”
“진달래 회장 대리님인 척하고 문 두드리면 되잖아!”
“그런가?”
윤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립고 그립던 윤리타의 목소리에 놀라 헛숨을 들이마시는데.
“윤리타! 이 빌어먹을 새끼야! 당장 문 열어!”
윤리오가 버럭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