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쌍둥이(1)
“리사.”
“그렇게 불러도 안 돼. 나랑 같이 안 간다면 오빠도 못 가는 거야.”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윤리오는 결국 나와 동행하기로 했다.
윤사해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리오, 나 역시 리사와 같은 생각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걱정된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리타를 찾겠답시고 혼자서 나가게 둘 수는 없단다.”
“……알겠어요.”
윤리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리오.”
윤사해가 윤리오의 어깨를 꼭 붙잡고는 말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돌아와야 한단다.”
“아빠,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그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준 후, 윤사해에게 말했다.
“리오 오빠의 상태는 내가 계속 살필 테니까! 고로, 아빠. 윤리타 찾아올 때까지 이매망량을 잘 부탁할게!”
“뭐?”
윤사해가 당황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말했다.
“그래, 당분간 내가 맡고 있으마.”
윤사해라면 저럴 줄 알았지!
“하지만 리사.”
윤사해가 돌연 내 어깨를 붙잡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아빠한테 이매망량을 계속 맡기고 있는 건 곤란하단다. 아빠는 이제 좀 쉬고 싶거든.”
그럴 만도 했다.
스무 살 때부터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윤사해는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매망량을 지켰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고생했을지, 이매망량의 길드장으로서 아주 잠시 동안 곳곳을 누빈 나지만 그럼에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물론, 윤사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어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마는.
“알겠어, 아빠.”
나는 모르는 척 환하게 웃어 줬다.
“걱정 마.”
윤리타 데리고 돌아와서, 다시 길드 일을 맡아 줄 테니.
윤사해가 내 말에 흐뭇하게 미소를 그렸다.
“그럼, 다녀오렴.”
들린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보자는, 가족의 인사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울컥, 치솟는 감정을 겨우 다스린 나는 해맑게 웃으며 화답했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윤리오와 함께 윤리타를 찾으러 나섰다.
***
그래, 호기롭게 나선 건 좋은데.
“리오 오빠, 리타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아니?”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리타 오빠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굴더니!”
“으음.”
윤리오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한국에는 있지 않을까?”
“리오 오빠!”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윤리오는 뭐가 좋은지 헤실거렸다.
“그래도, 리사. 윤리타가 한국에 있는 건 분명해.”
그거야 그렇겠지.
윤리타를 윤리오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본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스치듯, 지나가면서 본 거지만.’
어쨌든 윤리타를 본 건 확실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윤리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리사, 걱정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윤리타는 분명 찾을 수 있을 테니.”
반년이 넘도록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났으면서 잘도 말한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픽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윤리오라면 윤리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비나리 고등학교로 가 볼까?”
“비나리 고등학교에는 왜?”
“걔한테 익숙한 곳부터 가려고.”
윤리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잖아? 윤리타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자신한테 익숙한 곳에 숨어 있을 확률이 무척 크거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비나리 고등학교에 숨어 있을까?”
애초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있다면 몰라도.
‘하지만 얼굴을 숨기지 않는 이상, 어려울 텐데?’
내 의문에 윤리오가 싱긋 웃었다.
“물론, 비나리 고등학교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사실,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즉, 윤리오의 말은 이랬다.
윤리타라면 자신도 모르게 한 번은 비나리 고등학교를 찾아왔을 수도 있다고.
“윤리타는 기억 조작과 관련된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누군가 그 자식을 봤으면 분명 기억하고 있을 거야.”
“오…….”
그야말로 탐문 수사였다.
나로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왜?”
“리오 오빠는 리타 오빠를 정말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당연하지.”
윤리오가 배시시 웃었다.
“쌍둥이잖아.”
그것도 28년이란 시간을 줄곧 함께했던 쌍둥이.
윤리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나리 고등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금방에라도 넘어질 듯 위태로운 움직임에 나는 급히 택시를 잡았다.
“걸어갈 수 있는데.”
“그러다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으음.”
윤리오가 멋쩍게 웃고는 말했다.
“그래도 안 넘어질 수 있는데.”
“오빠.”
실없이 말하는 목소리에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고했다.
“무리하면 바로 다시 병원에 집어넣을 거야.”
“집어넣을 거라니…….”
윤리오가 탄식했다.
“우리 리사, 못 본 사이에 입이 많이 험해졌어.”
“이게 뭐가 험해진 거야?”
픽 웃고는 말했다.
“그러는 리오 오빠야말로 자는 동안 사람이 너무 많이 유약해진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윤리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윤리타를 만나면 한 대 쥐어박을 수 있을 정도는 돼.”
“그렇다니 다행이네.”
윤리타라면 윤리오가 때리는 족족 모두 맞아줄 테니 말이다.
그때, 비나리 고등학교로 향하던 택시가 멈춰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거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린 후, 곧바로 교무실을 방문했다.
가는 길에 나를 알아보던 학생이 수군거렸지마는.
“리사,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평범한 학교 생활을 했겠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
그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괜찮았다.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안타깝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던 윤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줘.”
“응?”
“저기, 리사 친구들이 와서.”
윤리오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도윤이와 단아가 급히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리사야!”
“야! 윤리사!”
“도윤아! 단아야!”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리자 친구들이 내 품에 달려들었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제 학교 다시 나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친구들에게 비나리 고등학교를 찾아온 이유를 밝혔고.
“그렇단 말이지? 잠시만 기다려! 우리가 애들한테 묻고 올게!”
“맞아, 리사! 우리만 믿고 기다려 줘! 금방 리타 형에 대해 알아내서 돌아올게!”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게 됐다.
단아와 도윤이는 그렇게 괜찮다며 말릴 새도 없이 사라졌다.
“괜찮으려나?”
뒤늦게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괜찮겠지.”
친구들을 믿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리오가 교무실에서 나왔다. 간식거리를 품에 가득 안은 채로 말이다.
“리오 오빠? 그게 다 뭐야?”
“오랜만에 얼굴 봤다면서 하나씩 챙겨 주셨어. 왜 이렇게 말랐냐면서 많이 걱정하시더라고. 다행히 다들 내 이야기는 듣지 못했나 봐.”
“오빠 이름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도록 내가 필사적으로 막았거든.”
“우리 리사, 기특하네. 그런 일도 할 줄 알고.”
윤리오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보다 선생님들이 오빠를 환영했나 보네?”
“응, 다들 잘 컸다면서 많이 반겨 주셨어.”
하긴, 윤리오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다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긴, 문제아가 개과천선해서 학교를 방문했으니…….”
“리사! 내가 얼마나 학교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거짓말.”
내가 본 게 있고, 청해진한테 들은 게 있는데.
“거짓말은 아빠.”
윤리오가 할 말이 많다는 얼굴로 입술을 씰룩일 때.
“야! 윤리사!”
“리타 형에 대해서 알아왔어!”
단아와 도윤이가 뛰어왔다.
“정말? 정말이야?”
“응!”
다급하게 묻는 내 목소리에 단아와 도윤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하는 오빠, 그 못생긴 오빠 맞지?”
“가끔 운동장에 나타났었나 봐!”
“정확히는 운동장 근처 벤치!”
그러면서 단아가 말을 덧붙였다.
“너무 못생겨서 그런지, 애들이 기억하고 있더라고.”
윤리타가 너무 잘생겨서 기억하고 있던 건 아니고?
어쨌든 나는 물었다.
“그래서?”
아니, 윤리오가 대신 물었다.
“윤리타는 지금 어디 있는데? 학교에 계속 나타나기는 한대?”
윤리오의 질문에 단아와 도윤이가 눈치를 보다 말했다.
“아니요. 다들 그 못생긴 오빠 못 본 지 오래됐다고 하던데요?”
“3월인가, 4월에 CW에서 강연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다들 리타 형을 보지 못했대요.”
윤리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하지만 나는 물었다.
“CW에서 비나리 고등학교에 강연을 왔었다고?”
“응.”
“강연 온 사람이 누구였는데?”
단아와 도윤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CW 회장 대리, 진달래.
그녀의 이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