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82)화 (382/500)

382화. 아빠와 아들(4)

윤리오가 깨어났다.

그의 주치의는 기적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기적이라니!〗

천지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다른 세계에 있는 저 녀석이 깨어나게끔 도와준 거다.〗

다른 세계.

즉, 『각성, 그 후』의 백정이.

아니, 윤리오가 이곳의 윤리오를 깨어나게끔 도와준 거란 말이었다.

“생각보다 착한가 봐요.”

내가 읽은 소설 속에서, 그는 인정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는데 말이다.

천지해가 히죽거렸다.

〖착한 편이기는 하지. 그 녀석에게 목숨이란 모두 공평하니.〗

“무슨 말이에요?”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지위와 관계없이 공평하게 죽여 버린다는 소리다.〗

착한 거 맞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아가씨, 들어오셔도 돼요.”

광혜원이 나를 부른 건 그때였다.

윤리오의 주치의가 그를 살펴보고 떠난 후, 나와 윤사해는 급히 광혜원을 불렀다.

광혜원이 윤리오의 진료를 볼 때, 혹시 그녀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병실 밖을 빠져 나왔는데 그 진료가 이제 끝났나 보다.

천지해에게 눈치껏 빠져 있으라고 하려는데.

〖나는 잠깐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 있도록 하지.〗

그가 알아서 빠져 줬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천지해를 윤사해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많이 피곤하실 텐데.’

천지해라는 짐을 떠안게 할 수는 없었다.

뭐, 그 짐을 떠안은 건 나지마는.

하여튼!

“리오 오빠는 어때요?”

나는 광혜원에게 윤리오의 상태를 물었다.

“많이 좋아요. 시력이 많이 불편한 것 같지만, 일시적인 현상이니까 곧 돌아올 거고요.”

“오빠, 깨어났어요?”

“네, 진료를 보는 도중에 깨어나서요. 시력을 비롯해서 겸사겸사 다른 것도 확인했어요.”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활짝 웃었다.

“아빠는요?”

“괜찮으신 거 알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나참.”

광혜원이 픽 웃었다.

나 역시 헤실거리며 웃고는 윤리오의 병실에 들어섰다.

“오빠, 괜찮아?”

“리사.”

윤리오가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한결 편해진 얼굴로 나를 반겼다.

“많이 걱정했지?”

“응!”

그걸 말이라고!

한달음에 윤리오에게 달려가 그를 와락 끌어 안았다.

“리오 오빠, 뼈밖에 안 남았어.”

“그런가?”

윤리오가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퇴원하자마자 고기를 먹으러 가자꾸나.”

윤사해가 심각하게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윤사해 전 길드장님, 리오는 고기를 먹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에요.”

“그러니까 퇴원한 후에 먹이겠다는 소리였네.”

“퇴원한 후에도 이르다는 소리였답니다.”

광혜원이 너스레를 떨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광혜원이 가방을 챙겨들고는 크게 하품했다.

“당일치기로 미국을 다녀왔더니 많이 피곤하네요.”

그뿐이랴?

우리를 대신해서 진달래와 서차웅과 함께 공항에서 기자들을 상대하기까지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광혜원이 쾌활하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남은 사람은 나와 윤사해, 그리고 윤리오였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다.

“리타는요?”

윤리타, 그를 제외하고 말이다.

윤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리타는 어디 있어요?”

아무래도 윤리오는 자신이 쓰러질 때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리타는 곧 올 거란다.”

윤사해가 윤리오를 달래며 말했다.

“그러니 조금 더 누워서 쉬렴. 아직 밤이기도 하니.”

“하지만 잠 안 오는데.”

“그래도.”

“아버지한테 궁금한 것도 많은데. 리사한테 묻고 싶은 것도 많고요.”

윤리오가 칭얼거렸다.

아이처럼 구는 그를 향해 엄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오빠, 아빠 말 들어.”

윤리오가 입술을 삐죽였다.

“잠들 때까지 곁에 있으마.”

“제가 애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두 눈을 꼭 감는 윤리오였다.

윤사해가 자신의 병실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 안 온다더니.”

웃으며 중얼거리고는 윤리오의 이불을 정리해 줬다.

“아빠, 이제 가자.”

“하지만 리오가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를 찾을 텐데.”

“그러기 전에 또 찾아오면 되지!”

윤사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다.

“리오 오빠가 일어났는데 아빠 얼굴 보면 좋아할 것 같아?”

물론, 좋아할 거다.

하지만 걱정을 더 많이 할 터였다.

“아빠가 자기 때문에 병실에서 밤을 새운 걸 알면 오빠가 좋아할까? 오히려 미안해할걸?”

그걸 원하지는 않은지, 윤사해가 발걸음을 뗐다. 병실을 나서기 전에 몇 번이고 뒤를 확인했지마는.

“집으로 가자, 아빠.”

“그래.”

우리는 사이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매망량이 아닌, 우리 집으로.

새삼스레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지낸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다면 윤사해를 볼 낯이 없었을 거다.

윤사해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 집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바뀐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을 텐데 말이다.

“아빠.”

“응?”

“그게, 있잖아.”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오 오빠, 만났어?”

윤리오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각성, 그 후』라는, 내가 읽은 이야기 속의 세계에서 그를 만났냐는 질문이었다.

윤사해가 서글프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났단다. 정말 멋지게 자라 있더구나. 그곳의 리오도.”

‘백정’의 탈을 뒤집어쓴 채였을 텐데?

하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윤사해가 금방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없었을 거다.

“리타 오빠도 만났어?”

윤리타 역시 없었을 거다.

“그 세계에는 아빠도 있었지?”

없었던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

윤리오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다른 가족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천지해를 불러서 그 도깨비한테서 들은 이야기라고도 할 수는 있지만.’

말했듯, 윤사해에게 아직 천지해를 소개해 주고 싶지가 않았다.

어쨌든 윤사해는 말했다.

“그래.”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만났단다.”

거짓말을 내뱉었다.

“우리랑 똑같이 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단다.”

윤사해가 본 건, 행복과는 먼 진실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는 말했다.

내가 혹여나 걱정할까 싶어.

“아빠.”

“응?”

윤사해가 애써 눈물을 참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곧장 그를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리사?”

윤사해가 놀란 듯 나를 불렀지만, 못 들은 척 말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윤사해가 움찔 몸을 떨고는 손을 들어 내 등을 두드려 줬다.

“아빠도 고맙구나.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의젓하게 리오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니.”

“많이 힘들었어.”

“그래, 우리 딸.”

윤사해가 내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고는 말했다.

“아빠, 이제 어디에도 가지 않을게. 이 자리에 있을게.”

“정말이지?”

“그럼.”

윤사해가 싱긋 웃고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하마.”

“응!”

그에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활짝 웃었다.

***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우리는 윤리오를 찾아갔다.

그가 깨어난 사실이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은 탓에 기자들을 만나거나 하는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서 나올 때는 큰일이었는데.’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서차웅과 광혜원이 윤사해와 관련하여 모두 설명해 줬을 텐데 말이다.

‘진달래도 말을 거들었을 테고.’

결국, 나는 윤사해의 <[S, 숙련 불가] 장승 행차>를 통해 그와 함께 병원에 오게 됐다.

“기자들은 서 비서를 시켜 돌아가게끔 했단다.”

“기자들이 용케 서 비서님의 말을 들었네?”

“내 말을 그대로 전했다고 하더구나.”

“무슨 말?”

윤사해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계속 집 앞에서 얼쩡거리면 소속되어 있는 언론사를 찾아가 부숴 버리겠다고 했단다.”

“아빠…….”

안 그래도 기자들 사이에서 윤사해의 평가는 최악이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에 그가 자식들과 관련해서 기사를 싣는 언론사를 모두 하나같이 박살을 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기자들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윤사해가 허투루 말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잘했어!”

윤사해를 향해 엄지를 치켜주며 우리는 그렇게 윤리오를 찾아갔다.

그런데.

“리오?”

윤리오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있었다. 환자복은 침대 위에 널려 있는 상태였다.

“뭐 하는 거니?”

“퇴원하려고요.”

퇴원이라니!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퇴원은 아직 일러!”

“하지만, 리사.”

윤리오가 부드럽게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윤리타를 찾으러 가려면 내가 움직여야 해.”

“리타 오빠는…….”

“없잖아.”

우리 곁에.

윤리오가 나지막하게 뒷말을 덧붙이고는 물었다.

“윤리타, 그 바보 자식. 나 때문에 가출한 상태지?”

윤리오는 분명 자신이 쓰러졌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그 기억을, 간밤에 되찾은 상태인가 보다.

“멍청한 놈. 내가 그렇게 된 건 그 자식 탓이 아닌데. 분명 혼자서 땅 파고 있겠지.”

“리오 오빠…….”

“그러니까 내가 찾아올게.”

윤리오가 싱긋 웃었다.

“아버지, 저 이제 괜찮아요. 혜원이 누나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윤사해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내 아들을 막을 수 없단 판단이 섰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그에 경악하며 그를 불렀으나.

“리사.”

윤리오가 나를 막았다.

“내가 윤리타, 그 바보 데리고 올게. 오늘 중으로.”

오늘 중으로?

불가능한 소리였다.

하지만 왜일까?

“믿어 줘.”

이상하게도 윤리오는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도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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