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아빠와 아들(3)
“으윽…….”
백정이 앓는 목소리를 내다가 두 눈을 떴다.
“서차윤!”
날선 목소리를 토해내며 그가 이를 갈았다.
마지막 기억은 뒷목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런 짓을 벌인 사람이 서차윤이라는 거다.
“죽여 버리겠어.”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죽여 버리겠노라.
백정은 그렇게 다짐하며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형, 누구예요?”
맑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백정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아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마주친 시선에 백정은 곧장 헛숨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야, 자신을 부른 아이는.
“왜 그러세요?”
윤리오.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열 살은 되었을까 싶은 어린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백정에게 물었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눈앞의 아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세계.
즉 제 동생들이 모두 살아 있고, 망할 아버지 역시 살아 있는 그 세계의 ‘윤리오’인 것을 말이다.
백정이 파르르 입술을 떨다 이내 얼굴을 구겼다.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네?”
“나랑 다르게 네게는 가족이 있잖아.”
더욱이 모두가 살아 있다.
또한 모두가 화목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백정은 윤사해가 끊임없이 ‘가족’을 생각하는 걸 보며 그 사실을 진작 깨달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다그치듯 외치는 목소리에 윤리오가 올망졸망 두 눈을 떴다.
“형, 왜 그래요? 무서워요.”
눈가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에 백정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암만 눈앞의 ‘윤리오’가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얼굴이었다. 십수 년은 더 어려진 얼굴이라고 해도 자신의 얼굴이었다는 거다.
그런 아이가 당장에라도 울 것처럼 구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기에 백정은 퉁명스럽게 말을 뱉어냈다.
“울지 마.”
하지만 아이를 달래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윤리오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울지 말라고!”
신경질적으로 외친 목소리에 윤리오가 화들짝 놀라 울음을 삼켰다.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는 모습에 백정이 짧게 혀를 찼다.
어릴 적, ‘윤사해’의 외면을 받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시…….”
백정이 가까스로 욕을 삼키고는 무릎을 굽혀 윤리오와 눈을 맞췄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아?”
“몰라요.”
윤리오가 고개를 저었다.
“리타랑, 윤리타랑 같이 차윤이 삼촌 따라가고 있었는데…….”
윤리타.
그리고 서차윤.
들려오는 이름들에 백정이 표정을 굳혔다. 아이는 죽은 시체처럼 굳어 버린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리타가 저 버리고 갔나봐요.”
“그럴 리가 없잖아.”
백정, 그도 모르게 내뱉은 목소리였다.
단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진심이 물꼬가 트이자 철철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윤리타가.”
나를.
그리고 너를.
“버리고 갔을 리가 없잖아.”
자신이 버릴지언정, 윤리타는 단 한 번도 저를 놓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알아.’
자신들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아버지란 작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에.
‘아버지가, 너를! 너를 얼마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윤리타는 그 대화를 뒤로하며 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멍청한 삶을 마감했다.
그렇게 백정은 혼자가 됐다.
하지만 눈앞의 윤리오는 아니다.
“리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한테는 윤리타가 있다.
윤리사도 있다.
그리고 윤사해도 있다.
백정은 서글프게 얼굴을 구기면서 아이의 말에 대꾸해 줬다.
“몰라.”
내가 아는 윤리타는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없거든.
백정이 뒷말을 삼키고는 말했다.
“하지만 윤리타가 어디에 있는지 넌 알고 있겠지.”
“모르는데요?”
암만 찾아도 없어서 눈앞의 남자에게 물어보는 거였다. 백정은 윤리오를 물끄러미 보다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 위에 올렸다.
“……진짜 작네.”
“곧 클 거예요! 아빠랑 차윤이 삼촌이 많이 먹고 일찍 자면 쑥쑥 크게 될 거라고 했어요!”
서차윤은 자신을 ‘서커스’라는 지하 길드에 넘겼고, 윤사해는 그 죄를 물어 그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자신을, 아니. 모든 자식을 돌아보지 않았다.
백정이 픽 웃고는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자신이 이렇게 쑥쑥 자라 어른이 됐으니 눈앞의 아이 역시 똑같을 거다.
그러니까.
“이제 좀 돌아가.”
“어디로요?”
“네가 있어야 할 곳.”
백정이 일그러진 미소를 내보이며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 아버지가 있고, 네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윤리오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에 백정이 말했다.
“저세상, 그 빌어먹을 자식이 헛짓거리를 일으켜서 이렇게 된 거지? 아님, 장천의거나.”
“천의 삼촌이 왜요? 저세상은 또 누구예요?”
“오, 여기에서는 필터링이 안 되는 모양이네?”
백정이 키득거리며 웃고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세상도 장천의도 아주 못 돼 처먹은 새끼들이지.”
“못된 말…….”
“나는 어른이라서 써도 돼.”
어쨌든.
“빌어먹을 세계가 일으킨 오류 따위 무시하고 일어나.”
눈앞의 윤리오가 암만 자신과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윤사해의 핏줄.
“깨어나라고.”
그라면 분명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아버지가 너를 만나러 갔으니까.
네 동생들을 만나러 갔으니까.
백정이 치밀어 오르는 무수한 말을 억지로 집어삼키고는 윤리오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윤리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형은요?”
백정의 두 눈이 흔들렸다.
윤리오는 그런 그를 향해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제가 깨어나면 형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백정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한참 후 윤리오에게 대답을 들려줬다.
“……나도 깨어날 거야.”
“진짜요?”
“그래, 진짜.”
백정이 윤리오의 손을 잡고는 애처롭게 미소를 그렸다.
“나 역시 너거든.”
모두 죽어 아무도 기억해 주는 이가 없어졌던 이름.
“윤리오.”
백정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돌아가, 네 세계로.”
윤리오가 꿈에서 깨어나기를 기원했다.
***
“윽!”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윤리오가 앓는 목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는 순간 당황했다.
시야가 흐릿하며 앞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뭐지?’
시력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
윤리오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리오!”
누구인지 분명치 않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하지만 청력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윤리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안 돼, 오빠!”
누구인지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사…….”
내뱉은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져 버렸다. 윤리오는 뒤늦게 목이 타는 듯한 감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왜? 어디 아파?”
“목.”
“목이 왜? 목 말라?”
윤리오는 다급하게 묻는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아빠! 물!”
“여기. 아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렴. 저 상태에서 바로 물을 마시게 하는 건 좋지 않으니.”
윤사해가 물로 수건을 적셨다.
윤리오는 피곤한 기색으로 두 눈을 느릿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윤리사가 애가 탄다는 듯 외쳤다.
“의사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의사? 의사는 왜?
윤리오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쿨럭!”
나오는 건 마른 기침뿐이었다.
그때, 축축하게 젖은 수건이 입을 적셨다.
윤리오는 황급히 그것이 머금고 있는 물기를 빨아마셨다. 그만큼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죄송합니다, 길드장… 허업……!”
그건 곧 알게 되겠지.
왜 광혜원이 아닌 다른 의사를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아빠 보고 놀랄 시간에 우리 오빠부터 빨리 봐줘요!”
“혹여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네.”
윤리사의 말을 뒤이어 윤사해가 스산하게 경고했다.
나름대로 다급하게 달려온 의사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그러고는 황급히 윤리오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긴 진찰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혹시 쓰러지기 전의 상황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의사의 물음에 윤리오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쓰러지기 전?
‘내가 쓰러졌다고?’
당황하는 것도 잠시, 윤리오가 크게 동요했다.
‘윤리오. 돌아가, 네 세계로.’
그런 목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이건 자신의 마지막 기억이 아니었다.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
그때 분명…….
“리오.”
윤리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윤사해가 그런 아들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지금 당장 떠올리지 않아도 된단다.”
“맞아, 리오 오빠.”
윤리사가 윤사해의 말을 거들며 입을 열었다.
“시간은 많아.”
윤리오가 깨어났다.
그가 보고 들으며, 기억해낼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우선은 조금 쉬어.”
너무 오래 쉬지는 말고.
다시 잠에 들면 무서우니까.
윤리사가 치미는 말을 억지로 집어삼키고는 미소를 그렸다.
윤리오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동생의 웃는 모습을 힘겹게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리사의 말대로, 우선은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대로 잠에 들면.’
흐릿하게 지워진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윤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