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아빠와 아들(1)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윤사해와 함께 윤리오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새 윤사해에 대한 소식이 알려졌는지 기사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제가 해결할게요.’
진달래 덕분에 쉽게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이매망량의 길드원인 서차웅과 광혜원이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 덕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도착한 병원.
나는 곧장 윤사해를 윤리오가 입원한 병실로 데리고 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야.’
누군가 우리를 알아봤다면 기자들이 이곳으로 달려왔을 테니까.
기자들만 달려오면 다행이지.
병원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을 거다.
‘안 그래도 윤리오가 이곳에 입원했다는 소식 때문에 한 번 시끄러워진 적 있는데.’
그때의 상황이 반복되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았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윤사해와 함께 윤리오가 잠들어 있는 병실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도착했다.
하지만 윤사해는 그가 누워 있는 병실 안에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죽은 듯, 잠든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아빠.”
윤사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리오 오빠 봐야지.”
윤사해가 파르르 입술을 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내 손을 잡은 그가 천천히 아들의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리오.”
나지막하게 아들의 이름을 부른 그가 이내 윤리오의 손을 꼭 잡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이렇게 말랐니?”
들려오는 대답 따위 없었다.
윤리오는 윤사해가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잠에 든 채였다. 하긴, 그는 윤사해가 실종됐던 것도 모를 테지.
나는 금방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윤사해를 뒤로하며 말했다.
“자리 비켜 줄게. 오빠랑 편하게 이야기 나눠.”
나도 안다.
윤사해가 윤리오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답이 들려오지 않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윤사해 역시 그걸 알고 있을 텐데 그는 말했다.
“고맙구나.”
“아니야, 아빠.”
넓은 어깨가 한없이 초라해 보여 성큼, 그에게 다가가서는.
“아빠.”
뒤에서 힘주어 끌어안았다.
“리오 오빠가 저렇게 된 거, 아빠 탓 아니야.”
“……그래.”
윤사해는 한참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팔에 손을 얹었다.
“정말 고맙구나, 리사.”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윤사해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슬픔을 못 들은 척, 애써 무시하며 그를 내버려 두고 병실을 나왔다.
***
달칵-!
자신을 찾으러 미국에 직접 왔던 딸이 병실을 떠났다.
떠났다고 해도 병실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윤사해는 그 빈 자리가 허전했다.
“리오.”
잠들어 있는 아들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처음이라 그럴 터.
윤사해가 아들의 마른 손을 끌어 잡고는 말했다.
“미안하구나.”
그 사과는, 눈앞의 아들에게 하는 사과이자.
“정말 미안하구나.”
이 세계로 함께 데리고 오지 못한 ‘백정’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다.
‘리오를 데리고 갈 수는 없나?’
‘아버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 대도깨비 님도 말했잖아? 시간이 많이 있지 않다고.’
그렇게 ‘윤리오’를 남겨두고 왔다.
윤사해가 아들의 손을 이마에 대고서는 흐느꼈다.
“정말 미안해.”
평소라면 왜 우는 거냐고, 누가 울린 거냐고 걱정 어린 목소리가 곧장 날아왔을 거다.
하지만 아들은 깨어날 생각을 않고 계속 잠들어 있을 뿐.
윤사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의 울음이 병실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은 마음 따위 없었다.
그렇기에 윤사해는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그것을 세게 깨물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어렵게 집어삼킨 울음이.
“아빠, 우네.”
윤리사에게 들릴 줄 말이다.
***
〖그래서 나를 또 불러낸 거냐?〗
“네?”
〖네 아버지가 우는 거, 같이 듣자고 나를 이렇게 불러낸 거냐고 묻는 거다.〗
그럴 리가.
픽 웃고는 말했다.
“대도깨비 님께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소원은 들어줬다만.〗
“알거든요?”
누가 그걸 몰라?!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이고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희 오빠, 깨어날 수 있나요?”
〖흠?〗
천지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네 오라비는 둘이지 않느냐? 어느 오라비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이 망할 도깨비가?
내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구는 모습에 주먹이 울었지만.
“리오 오빠요.”
인내심을 발휘하며 내 주먹이 천지해를 강타하지 않게끔 했다.
그야, 아쉬운 사람이 머리를 숙여야 하는 법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협박하고 싶지만.’
저 망할 도깨비가 들을 것도 아니고 이를 갈며 말했다.
“리오 오빠가 저렇게 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요.”
〖의원은 뭐라 하더냐?〗
뭐라고 했냐고?
“모르겠다고 하던데요?”
날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언제 깨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만으로 끝났으면 다행.
의사는 내게 말했다.
“마음의 준비도 미리 해 놓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렇게 의식을 잃고 잠에 빠진 사람 중 깨어난 사람은 한 손에 꼽힐 정도라고 말이다.
〖네 성격에 용케 그 의사 놈을 내버려 뒀구나.〗
“어쩔 수 없잖아요.”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어도 윤리오의 주치의였다.
더욱이 내가 이매망량의 길드장이라는 것을, 윤사해의 하나뿐인 딸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됐다.
행동을 조심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잘못 행동하면 나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내 가족이. 그리고 이매망량의 모두가 욕을 먹게 될 테니까.
〖그런 생각도 할 줄 알았더냐?〗
“당연하죠!”
아니, 그 전에.
“대도깨비 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너 말이냐?〗
천지해가 히죽거렸다.
〖사희와 별 다를 바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 중이지.〗
그런 심한 욕을 하다니!
“사과해요!”
가 아니라.
“크흠, 흠.”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린 후 입을 열었다.
“어쨌든, 대답해 주세요.”
〖무엇을?〗
이 빌어먹을 도깨비가 또 모르는 척 물어보네?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말했다.
“리오 오빠요.”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달라는 듯, 천지해가 두 눈을 반짝였다.
그에 얼굴을 더욱더 구기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오빠, 깨어날 수 있어요?”
아니.
“깨어나게 해 주실 수 있어요?”
천지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먼저, 너희 오라비는 깨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깨어나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 천지해가 말했다.
〖그랬다가는 네 오라비는 망가지고 말 거다.〗
단호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천지해의 힘으로 윤리오를 깨어나게 만들 수는 없지만,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아해야.〗
그런 내게 천지해가 웃으며 재잘거렸다.
〖네 오라비가 깨어나려면 다른 세계에 있는 네 오라비가 힘을 좀 많이 써야 한단다.〗
“네?”
다른 세계에 있는 ‘윤리오’라니?
살포시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세상에 윤리오는 한 명뿐이었다.
‘아니, 잠깐.’
내가 알고 있는 ‘윤리오’가 한 명 더 있었다.
『각성, 그 후』의 백정.
놀라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지해를 쳐다봤다.
“거짓말…….”
『각성, 그 후』는 저세상에 의해 이 세계와 동기화되고 말았다.
그런데 백정이라니?
“거짓말하시는 거죠?”
〖설마.〗
천지해가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어떻게 보면 네 오라비가 저렇게 된 건 그놈 때문이니.〗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이 해결을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각성, 그 후』의 백정이, 아니. ‘윤리오’가 그런 일을 할까?
『각성, 그 후』에서 보여 줬던 모습을 조용히 떠올린 나는 천지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다른 방법은요?”
『각성, 그 후』의 ‘윤리오’가 남을 도울 리가 없었다.
더욱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윤리오를 돕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아예 죽이려고 찾아오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내 말에 천지해가 웃었다.
〖네 오라비를 믿지 않나 보구나?〗
“제 오빠는 저기 누워 있는 오빠뿐이에요.”
〖그 녀석이 지금 네 말을 들었다면 속상해할 거다. 뭐, 너와 직접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천지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믿어 보거라.〗
그러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끝마쳤다.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거든!〗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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