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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76)화 (376/500)

376화. 찾는 것도 일이다(3)

성장이라니.

윤사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이 사라진 후, 딸아이가 홀로 겪었을 일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지끈거렸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감각에 윤사해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린, 너는…….”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에일린 리가 입을 열었다.

“안 찾아갔어.”

윤사해가 어떤 질문을 던질지 알고 있다는 듯, 에일린 리가 미소를 그렸다.

“찾아가 봤자 내가 우리 딸한테 뭘 해 줄 수 있겠어?”

뭘 해 줄 수 있겠느냐니.

“위로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에일린 리가 딸아이를 찾아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다못해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그런 흔한 위로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에일린 리는 그러지 않았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일이 잘 풀릴지. 아님, 잘 풀리지 않을지 어떻게 알고 위로를 해?”

“린!”

윤사해가 버럭 소리 질렀다.

에일린 리는 짜증 섞인 그 목소리에 싱긋 웃으며.

“자기야.”

그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무엇보다 내가 말뿐인 위로를 한다 해서 우리 딸이 고맙다며 받아들였을까?”

윤사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그를 보며 에일린 리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위로란 건 말이야.”

그녀는 윤사해의 손을 잡고서 깍지를 꼈다.

“상대방이 듣고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빛을 볼 수 있는 말이잖아?”

하지만 자신이 딸아이에게 위로를 전했다면.

‘빛은 무슨.’

오히려 그 속만 긁었을 거다.

저를 놀리는 거냐면서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인 일. 에일린 리가 윤사해의 손을 놓아 주고는 미소를 그렸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 봤어.”

잠든 첫째 아들을 깨우기 위해 세계 각지에 도움도 구해 봤고, 행방이 묘연해진 둘째 아들을 찾고자 제 휘하의 각성자를 부려봤다.

“보다시피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그렇지마는.

“나름대로 엄마처럼 굴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웃으며 묻는 말에 윤사해는 그저 물끄러미 제 전 부인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 답도 없는 그의 모습에 에일린 리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내가 해 줄 이야기는 이제 끝났어. 어서 먹기나 해. 우리 따님께서 곧 오실 것 같으니까.”

하지만 윤사해는 저녁을 들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기야, 좋은 말로 할 때 먹지?”

안 그러면 직접 떠먹여 주겠다는 듯 에일린 리가 능글맞게 웃었다. 저를 놀리는 그녀를 향해 윤사해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리오를 만났어.”

“우리 첫째 아드님을?”

에일린 리가 픽 웃었다.

“꿈에서 만났나 보네.”

그러지 않고서야 윤리오를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윤사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 세계에 없었던 건 알고 있겠지.”

몰랐던 사실이었다.

암만 찾아도 없어서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 건 아닐까 생각은 했었지마는 말이다.

어쨌거나 에일린 리는 그저 조용히 윤사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곳에서 리오를 만났다. 백정 탈을 쓰고 있더군.”

“백정 탈……?”

에일린 리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물었다.

“우리 첫째 아드님께서 유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거야?”

“그래.”

윤사해가 두 눈을 낮게 깔고서는 말했다.

“그 세상에서 나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더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사도.”

그리고.

“리타도.”

윤사해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리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죽었더군.”

에일린 리 역시 그 세계에서는 이미 죽은 존재였을 거다.

“린.”

윤사해가 놀란 듯, 멍한 얼굴로 있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런 세계가 반복되지 않은 건, 모두 리사 덕분이다.”

에일린 리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불만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윤사해가 서글프게 미소를 그렸다.

“우리 딸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니 내가 참 바보 같아서.”

그래서 허심탄회하듯 내뱉은 말일 뿐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 귀로 흘려듣는 중이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에일린 리가 미소를 그렸다.

***

그렇게 두 사람의 저녁 식사가 다시 재개될 때, 윤리사는.

“자, 이제 안내해 주시죠?”

에일린 리의 보좌관을 협박하는 중이었다.

“진달래 회장 대리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 길드장님은 원래 저렇게 폭력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절대로요.”

서차웅이 최선을 다해 진달래에게 변명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렇게 말해 줘서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에일린 리의 보좌관에게 위협적으로 그림자를 움직이며 말했다.

“제가 말했죠?”

오늘 중으로 윤사해에게 데리고 가지 않으면 ASMO에게 쳐들어갈 거라고 말이다.

에일린 리의 보좌관이 꿀꺽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윤리사 길드장님, 잠시만 진정해 주십시오.”

“싫은데요.”

에일린 리가 윤사해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을 줄 모르는데 계속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일정이 남아 있습니다.”

“몇 시간 전부터 계속 그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그, 그건……!”

에일린 리의 보좌관은 당황한 듯 두 눈을 데굴데굴 굴렀다.

변명할 거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

그를 향해 내세운 그림자의 끝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자.

“이번에는 정말입니다! 이 일정만 마무리하고 본부장님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에일린 리의 보좌관이 살려달라는 듯 간절하게 외쳤다.

그에 나는 소리 질렀다.

“에일린 리가 아니라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요!”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윤사해화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되도록, 아무런 분쟁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다니.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AMO 쪽에서는 미국이 윤사해 전 길드장님을 내놓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출국 전, 강산에에게 윤사해의 행방을 알려줬을 때 그녀가 일러준 말이었다.

에일린 리의 성격상, 순순히 윤사해를 만날 수 있게 하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내 말에 보좌관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길드장님, 협박도 잘 하시네요.”

광혜원이 그 모습을 보고 한 마디 덧붙였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때였다.

“제발,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정말 이번 일정만 마무리하고 본부장님께, 아니. 윤사해 전 길드장님이 있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말, 꼭 지키셔야 할 거예요.”

“물론입니다!”

에일린 리의 보좌관이 자신만 믿어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노렸던 그림자를 사라지게끔 만들고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다음 일정은 뭐죠?”

“넵!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보좌관이 군기가 바짝 든 태도로 앞서 나갔다.

나는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윤리사 길드장님.”

“아, 진달래 회장 대리님.”

진달래가 싱긋 웃으며 소곤거렸다.

“카리스마 넘치시네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칭찬하는 목소리에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아니에요.”

진달래가 미소를 그렸다.

“저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예요. 소중한 사람이 인질로 붙잡혀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어쨌거나 적절한 비유였기에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오늘 중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네요.”

“으음, 오늘 중으로 귀국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한국에 도착하는 건 내일이 될 테지만요.”

이미 오후 8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미국으로 오는 데 5시간이 걸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 출발해도 내일은 되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금방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어쩔 수 없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곳은 워싱턴.

그리고 워싱턴에서 가장 세력이 큰 기관이 바로 ASMO였다.

그러니 ASMO의 본부장인 에일린 리의 수작질에 어울려 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마를 뒤집어엎어서 그 법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죠.”

진달래가 두 눈을 끔뻑이다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요. 그런 방법도 있죠.”

앞서가던 에일린 리의 보좌관이 멈춰선 건 그때였다.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시죠.”

보좌관의 안내에 따라 진달래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윤리사 길드장님만요.”

그가 진달래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내 뒤를 따르던 길드원들도 멈춰 세웠다.

서차웅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맞아요. 댁이 우리 길드장님께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요?”

광혜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추궁하듯 물었다.

에일린 리의 보좌관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윤리사 길드장님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말했다.

“광혜원 헌터, 저는 괜찮아요.”

“길드장님!”

광혜원이 다시 생각해 달라는 듯 나를 불렀다. 그에 싱긋 웃어 주고는 보좌관에게 물었다.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는 함께 들어가도 되나요?”

“네? 네, 뭐.”

마수라도 부리려나 보지.

에일린 리의 보좌관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부리는 건 마수가 아니었다. 애초에 부릴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대도깨비 님.”

〖오냐.〗

천지해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웃었다.

〖바다 건너 이국의 땅을 밟아 보는 건 처음인데, 새롭군.〗

“나중에 실컷 구경하게 해 줄 테니 지금은 함께 움직여 주시죠.”

〖물론이지.〗

천지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렇게 그를 대동한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보좌관은 놀란 듯 굳어 버렸다.

어차피 그의 안내는 필요하지 않았다. 에일린 리가 건물을 통째로 빌린 듯,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건물 한구석에 서로 닮은 외모를 지닌 남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본 나는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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