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찾는 것도 일이다(1)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윤사해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피곤해서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기야, 정신 차렸으면 좀 일어나 보지?”
뺨을 콕콕 찌르는 손가락의 감촉이 너무나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사해는.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윤리사가 봤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격한 반응이었다. 그에 에일린 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렇게 놀라?”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윤사해가 버럭 소리 질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대도깨비 님은?!”
“대도깨비?”
에일린 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런 녀석은 못 봤는데?”
“뭐?”
윤사해가 당황하여 물었다.
에일린 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 발견할 때부터 자기는 혼자였는걸?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다에 쓸려온 거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전혀 놀란 것처럼 안 보이는데.”
“그때는 그랬다는 거야.”
에일린 리가 씨익 웃고는 윤사해의 팔에 매달렸다.
“뭐야? 안 떨어져?”
“응, 안 떨어질래.”
에일린 리가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갑작스럽게 터진 플래시에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우리 딸한테 보내려고.”
“뭐?”
“자기 걱정을 엄청 하더라고. 엄마가 된 사람으로 그 걱정을 좀 덜어줘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에일린 리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윤사해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 사이, 에일린 리는 윤사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윤리사에게 전송했다.
그러자마자 윤리사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에일린 리는 받지 않았다.
“자, 그럼.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이나 먹을까?”
저녁은 무슨!
윤사해가 질겁했지만, 그는 결국 전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없었던 동안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저렇게 말하는데, 듣지 않고는 못 배겼다.
“어차피 우리 딸이 지금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날아오고 있을 거야.”
미국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든지, 아님. CW가 소유하고 있는 자가용 비행기를 빌렸든지 등등.
윤리사는 어떻게든 미국으로 출발했을 거다.
그러니.
“그때까지 둘이서 시간을 보내자. 괜찮지?”
나긋하게 묻는 목소리에 윤사해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에일린 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진달래 회장 대리님.”
“아닙니다, 윤리사 길드장님. 윤사해 전 길드장님의 행방을 찾게 되어 다행이에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CW가 제공해 준 자가용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윤사해가 미국에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장 AMO에 달려갔다.
‘윤리사 길드장?’
최애님께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 게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본부장님! 미국으로 가는 데 협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빠가 지금 엄마와 함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기 그지없는 대사였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짜 맞춘 듯 그때 에일린 리로부터 사진이 도착했다.
윤사해와 찍은 셀카가 말이다!
놀라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들끓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윤사해의 위치를 강산에에게 정확하게 알릴 수 있어 이렇게 한국을 떠날 수 있게 됐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강산에 본부장님께서 동행인을 붙여 준다고 했는데, 진달래 회장 대리님이셨나요?”
“네, 윤리사 길드장님.”
동행인이 한 명 있다는 거다.
사실, 동행인은 그녀 말고도 여럿 더 있었지만 다들 이매망량의 사람들이니 제외하고.
어쨌뜬 CW의 회장 대리이자 윤리오와 친한 선후배 사이라고 밝힌 그녀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CW는 다른 유명 길드의 관계자분들과는 다르게 해외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죠.”
그거야 CW는 길드라기보다는 기업에 가까운 형태였으니 그랬다.
‘기업에 가까운 형태도 아니고, 그냥 기업이었지.’
지금에야 그 위세를 많이 잃어버렸다고 해도, 장천의가 CW를 지키고 있을 때는 확연하게 달랐었다.
백화점에 영화관, 놀이공원 등등.
CW가 손을 대지 않은 사업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진달래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손을 건넸다.
진달래는 CW가 지금의 형태라도 무사히 유지할 수 있게 줄을 잘 잡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진달래가 내 손을 맞잡고는 미소를 그렸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
“우와, 빠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떠나 버렸네요.”
류화홍이 CW의 자가용 비행기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저게 저렇게 빨랐던가요?”
“듣기로는 장천의 회장님께서 실종되기 직전에 성능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하더군요.”
사야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류화홍이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길드장님이 걱정되세요?”
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님 혼자 먼 곳에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 마세요!”
류화홍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 비서님이 계시잖아요! 혜원이 누나도 있고요!”
류화홍의 말에 사야가 걱정을 접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홍, 잠시 자리 좀 비킬게요.”
사야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류화홍이 붙잡을 새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그녀가 달려간 곳에는.
“도련님.”
윤리타가 있었다.
그가 사야를 보고는 낭패감 어린 표정을 보였다. 설마, 그녀에게 붙잡힐 줄은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
그에 사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지셨군요.”
친근하게 건네는 인사에 윤리타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그러는 사야 누나는 그대로네요.”
“거주자의 후손이니까요.”
“하긴, 누나는 예나 지금에나 변함없죠.”
변한 건, 그녀에게 동반자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생겼다는 거다.
사야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그렸다. 그녀와는 다르게 윤리타는 굳은 표정이었다.
그 딱딱한 얼굴에 사야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억지로 이매망량에 데리고 돌아갈 생각 따위 없거든요.”
사야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길드장님께서도 그런 일은 원하지 않을 것 같고요.”
윤리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를 찾았다고 들었어요.”
“네.”
“리사가 아빠를 찾으러 간다고도 들었고요.”
“맞답니다.”
사야가 윤리타의 말에 모두 순순히 인정하면서 덧붙여 말했다.
“길드장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윤사해 전 길드장님을 찾은 덕분에 일어난 기적이죠.”
기적.
그 단어에 윤리타가 헛웃음을 흘리고는 물었다.
“윤리오한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요?”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않는 자신의 쌍둥이 형제를 떠올리며 윤리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야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일어날 겁니다.”
윤리타가 흠칫 몸을 떨고는 사야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사야가 웃었다.
“그러니 도련님, 언제든지 편하게 이매망량으로 돌아오십시오. 이곳은 도련님의 집이니까요.”
윤리타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금방에라도 울 듯한 그의 모습에 사야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후 류화홍에게로 돌아왔다.
류화홍이 갑자기 왜 사라졌던 거냐고 물었지만 사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바랐다.
윤리사가 윤사해와 함께 돌아오기 전에 이매망량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말이다.
***
“도착했네요.”
낭랑한 목소리에 눈가를 꾹꾹 누른 후 창 박을 쳐다봤다.
한반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은 땅이 보였다. 진달래의 말대로 미국에 도착한 거다.
일반 비행기라면 10시간은 더 넘을 거리를, 5시간 만에 도착했다.
워낙에 빠른 속도로 이동한 터라 도중 몇 번이고 멀미가 났었지마는.
‘버텼지.’
악으로 깡으로 버텼었다.
나도 체면이 있지, 다른 길드의 대표 앞에서 멀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비행기는 곧 미국의 한 공항에 착륙했고.
“내릴까요?”
문이 열렸다.
나는 굳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길 짐은 없었다.
필요한 건 미국에서 사면 되고, 지금 중요한 건 윤사해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정황상, 미국이 아직 윤사해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은 듯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윤사해와 함께 귀국한다.
그게 내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의 귀한 분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