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화. 고작 그 정도(4)
“여보세요? 엄마? 엄마?!”
에일린 리를 암만 부른다고 해도 이미 끊긴 전화.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하긴, 에일린 리와 이렇게 전화가 연결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녀는 윤리오가 잠들고, 윤사해와 윤리타가 사라진 걸 알면서도 내게 전화 한 번 하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아아악! 망할 에일린 리!”
머리를 부여잡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망할 여자한테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었는데!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대도깨비 님은 조용히 있으세요.”
천지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했다.
당장, 그에 의해 저세상을 놓쳤고. 또한 그 때문에 윤사해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으니까 말이다.
“간식거리 좀 챙겨다 드릴까요?”
“아니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곧장 말을 바꿨다.
“그냥 챙겨 주세요.”
에일린 리 때문에 화가 났기 때문인지 달콤한 게 먹고 싶어졌다. 내 말에 서차웅이 알겠다며 집무실을 나갔다.
그러자마자 나는 업무용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아해야, 많이 힘든가 보구나.〗
“알면 좀 도와주지 그래요?”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아무리 나라 해도 바다 건너에 있는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그럴 도리는 없어서 말이다.〗
“쓸모없어.”
〖말이 심하구나.〗
천지해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게 불만이면 직접 바다 건너로 날아가지 그러냐?〗
그러면 도깨비들의 흔적을 지금보다는 쉽게 쫓을 수 있을 거라며 천지해가 말했다.
〖아님, 내가 잠시 미지 영역으로 돌아가서 그 녀석들을 찾아 네 아비의 행방을 물어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는 어려울 거라면서 천지해가 말을 덧붙였다.
〖미지 영역은 생각보다 공간이 무척 넓거든. 더욱이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과 무척이나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서 말이지.〗
“서로의 계약자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또 달라지나 보네요.”
〖그래.〗
천지해가 기특하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 네가 바다를 건너가는 게 어떠하냐?〗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각성자는 곧 국력이나 마찬가지. 등급이 높은 각성자는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우리 가족이 주구장창 국내만 돌아다닌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A급도 아닌 S급 각성자인 내가 윤사해를 찾겠답시고 이 땅을 떠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뜻이었다.
〖세상에! 자유 대한민국이면서 이동의 자유도 없단 말이냐?〗
“이동의 자유가 없는 건 아니고, 아니. 그보다 그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어요?”
〖책에서 읽었지.〗
천지해가 보란 듯이 읽고 있던 책을 보여 줬다.
무슨 책인가 하니, 대한민국의 기본 헌법을 나열한 책이었다.
저런 재미없는 책은 또 어디에서 찾아 읽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빠가 정말 해외에 있는 거라면 그걸 구실로 찾으러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윤사해가 인질로 잡히거나 그런 식으로 되면 곤란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아빠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왜 없느냐?〗
“네?”
〖있지 않느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천지해를 쳐다보자, 그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힘.〗
“스킬이요?”
〖그래, 그거.〗
천지해가 순식간에 내 앞에 다가와서는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잘만 활용하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만?〗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놀라 입을 벌렸다.
“인지의 눈!”
“네?”
때마침 간식거리를 챙겨 들고 집무실로 돌아오던 서차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저는 바보예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한답니까!”
“제가요!”
나는 정말 바보였다.
아니,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인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잊고 있을 수가 있지?!’
암만, 최근 여러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누군가를 찾는 데 가장 제격인 스킬을 잊고 있었다니!
당장, 윤사해가 실종됐을 때 허구한 난 그 스킬만 사용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정말 바보야!’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자책했다.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니지.’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을 떠올린 이상, 당장 그 스킬을 이용해 윤사해를 찾아나서야 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를 찾아 나섰다.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이 발동됩니다.】
【각성자, ‘윤사해’를 인지합니다.】
된다!
윤사해를 찾을 때, 어떠한 반응도 없던 스킬이 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윤사해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그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
못 본 사이에 부쩍 수척해진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황급히 그것을 닦고는 윤사해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어디지? 어디에 있는 거야?’
다행히도 나는 윤사해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
그야, 윤사해의 옆에.
“에일린 리……?”
에일린 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저 여자가 왜 윤사해의 옆에 있는 거야?!
그것도 입다 만 것 같은 차림새로!
***
윤리사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 거란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로.
“자기야, 언제 일어날 거야?”
에일린 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딸이 자기를 엄청 걱정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녀가 윤사해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계속 자고 있을 거야? 확 잡아먹어 버린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지만, 윤사해의 눈꺼풀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에일린 리가 입술을 씰룩였다.
“잠자는 숲속의 왕자님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 눈을 뜰 생각일까?
“자기야, 어서 일어나.”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윤사해의 행방을 제 딸에게 알려주지 않을 에일린 리였다.
‘그 편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암만, 자신에게 걸려 있던 저주가 거의 해제됐다고 해도 에일린 리의 성격은 여전히 비틀려 있었다.
‘그래도 다른 부모처럼 애정이란 건 조금에나마 느끼게 된 것 같으니까 말이지.’
그걸 위안으로 삼으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물론, 자신이 아니라 윤리사를 비롯한 제 자식들이 말이다.
에일린 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뭐야?”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에일린 리의 비서가 황급히 안에 들어와서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네줬다.
“따님이십니다.”
“우리 딸이? 갑자기 왜?”
이런 상황에서 전화라니.
‘이거 좋지 않은데.’
에일린 리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전화를 받았을 때다.
“여보세요?”
-에일린 리!
고함을 내지르듯, 성난 목소리에 에일린 리가 미간을 좁혔다.
“우리 딸, 엄마가 암만 보고 싶다 해도 그렇지.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몇 번째 전화니?”
-알 바야?! 그보다 아빠한테서 어서 떨어져!
“뭐?”
-아빠한테서 어서 떨어지라고!
에일린 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윤사해와 있는 걸 윤리사가 어떻게 안 걸까?
“우리 딸, 재미난 스킬을 가지고 있나 보구나? 거리에 상관없이 발동되는 것 같으니, S급일 테지?”
-내 스킬에 대해 가르쳐 줄 생각 없으니까 어서 아빠한테서 떨어지기나 해!
“미안하지만 그건 싫은걸?”
에일린 리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윤사해의 옆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엄마가 네 아빠한테서 떨어지기를 원하면 여기까지 와 보렴.”
-아아악! 이 망할……!
뚝, 전화가 끊겼다.
스스로 끊은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가 제 딸의 체통을 생각해 억지로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재미있다니까?”
어떻게 자신과 제 옆의 남자 사이에서 그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리오는 나를 닮았고, 리타는 자기를 닮았는데.”
윤리사는 도대체 누구를 닮은 걸까?
“흐음.”
에일린 리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생각하다가 이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니 사희 님을 닮으신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자기야?”
윤사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에일린 리가 곤히 잠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뺨에 입술을 붙였다.
“그만 일어나.”
나지막하게 덧붙인 목소리와 함께 윤사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열렸다.
“자기야?”
에일린 리가 놀라 몸을 일으켰다.
윤사해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린?”
불린 이름에 에일린 리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응, 나야.”
잠자는 숲속의 왕자님께서 드디어 일어나셨다.
잠들어 있던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었지만 말이다.
“안녕, 자기야.”
어쨌거나 에일린 리는 웃으며 인사했고.
“네가 도대체 왜 여기에…….”
윤사해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