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고작 그 정도(3)
“우와, 이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무사히 돌아왔네요.”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인간을 죽일 수 없습니다만?”
“알죠.”
이매가 싱긋 웃었다.
“그만큼 무서웠다는 거예요.”
거짓말하기는.
선비가 짧게 혀를 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눈을 떴을 때, 이매는 분명 웃었었으므로.
“그보다, 당신.”
선비가 저세상에게 물었다.
“그 미지 영역의 거주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저세상이 그를 흘긋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알 거 없어.”
선비가 얼굴을 찌푸렸다.
“알 것 없다니. 정황상, 그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처리하러 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맞아요.”
이매가 선비의 말을 거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매망량의 어린 길드장님께 시비를 걸러 간 것뿐인가요?”
그러면서 이매는 키득거렸다.
“성격 나쁘시네요.”
저세상이 말없이 그를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마음대로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저세상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선비가 그의 뒷모습을 쫓다 얼굴을 찌푸렸다.
“수장님께서는 도대체 왜 저런 놈과 손을 잡으신 건지 모르겠군요.”
“질투 나세요?”
“시끄럽습니다.”
짜증 섞인 목소리에 이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저는 수장님께서 왜 세상 씨와 손을 잡은 건지 알겠는데 말이죠.”
“그게 정말입니까?”
“네.”
입꼬리를 올리며 이매는 말했다.
“재미있어 보이잖아요.”
가족이나 다름없던 이매망량의 모두를 배신한 자의 말로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졌다.
선비가 이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당신, 정말 성격 나쁩니다.”
“칭찬 고마워요.”
그렇게 두 사람이 만담을 펼치고 있을 때.
“호기롭게 나가는 것 같더니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구나.”
저세상은 유랑단의 수장과 대면한 상태였다.
그가 원해서 이뤄진 만남은 아니었다.
도대체 자신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유랑단의 수장은 귀신같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당신은 알 거 없어.”
저세상이 차갑게 대꾸했다.
“어차피 내가 설계한 대로 세상은 흘러갈 테니까.”
설사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그러니 당신은 신경 꺼.”
저세상은 그 말을 남기고서 유랑단의 수장한테서 몸을 돌렸다.
“수장님…….”
그의 곁에 있던 각시가 우물쭈물 수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미소를 그리며 각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전 대의 각시와는 다르게 말을 잘 듣는 것이 정말이지, 곁에 오래 두고 싶은 아이였다.
유랑단의 수장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저세상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
“아빠는 아직 못 찾았어요?”
“네, 길드장님.”
서차웅이 전자 패드의 화면을 몇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국내에는 안 계신 듯합니다.”
청해진이 청해솔의 도움을 빌려 국내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윤사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며 서차웅이 말했다.
“국외로 수색 범위를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그만한 인력이 이매망량에 없다는 것.
저세상의 파괴 행위로 인해 무너져 버린 길드를 12공방의 도움으로 겨우 복구했다.
다만, 그 사고로 다친 길드원들이 너무 많았다.
중상자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사망자가 없다는 것도.’
죽은 사람이 나왔다면, 천지해가 암만 나를 방해해도 저세상을 잡으려고 들었을 거다.
내 가족에 이어, 감히 소중한 길드원의 목숨을 앗아간 죄를 어떻게든 물었겠지.
“다른 길드에 협력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돼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아래아’의 최설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녀라면 분명 믿을 만한 사람을 움직여 윤사해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윤사해의 정보가 지하 길드에 새어나가면?
‘안 돼.’
윤사해는 국내에서 최설윤과 함께 가장 많은 지하 길드를 괴멸시킨 각성자다.
그만큼 앙심을 품은 녀석들이 많을 터.
혹시라도 그들이 윤사해를 먼저 찾게 되면 여러모로 위험해지게 될 거다.
“그럼, AMO는 어떻습니까?”
“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무척 죄송합니다만, 이대로면 윤사해 전 길드장님을 찾지 못할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서차웅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빌어먹을 대도깨비.
윤사해를 데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그 손을 놓쳐 버리다니.
〖아해야.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는데, 아직 꽁해 있구나.〗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천지해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말했듯, 내가 놓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네 아비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 본체에 이상이 생겨 놓친 것뿐이지.〗
변명을 내뱉는 목소리에 와락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함부로 마음 읽지 마시죠?”
〖읽지 않았단다.〗
천지해가 억울하다는 듯 재잘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얼굴에 훤히 보여서 그리 말한 것뿐이지.〗
거짓말하기는.
나는 그에게서 휙 고개를 돌린 후 물었다.
“우리 아빠, 어디 있는지 확실하게 모른다고 했죠?”
〖그럼.〗
천지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적어도 이 땅에 없는 건 확실하니 바다 건너 먼 땅에서 찾아보도록 하거라.〗
“대한민국의 삼면이 바다인 걸 잘 모르시나 봐요?”
〖인간들이 사는 땅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느냐?〗
말을 말지.
아무래도 천지해와의 대화에서는 윤사해를 찾을 실마리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후 다시 서차웅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장난이다, 아해야.〗
천지해가 말을 걸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네 아비는 동해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구나.〗
동해, 그 먼 곳의 땅이라면.
“미국?”
〖그건 또 누구의 이름이느냐?〗
천지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내가 뭘 기대했겠어.
어쨌든 천지해의 말을 동아줄처럼 붙잡기로 했다.
“AMO 말고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네, 저 망할 도깨비가 말하는 땅이 아무래도 미국인 것 같으니.”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미국인에게 한 번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죠.”
더욱이 그 사람이라면 지하 길드와 내통을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몇 번의 신호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딸?
***
쏴아아-!
파도가 한 번 밀려왔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희게 포말이 일어나 햇빛에 반짝거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리 딸이 무슨 일로 이 엄마한테 전화를 다 했을까?”
에일린 리는 방파제 위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며 키득거렸다.
살아있는 동안, 제 자식에게 전화라고는 단 한 번도 걸려오지 않을 줄 알았더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20대라고 착각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물었다.
“네 첫째 오빠가 죽기라도 했니?”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 좀 친 것뿐인데, 화났니?”
-그럼, 화가 안 나겠어요?
“나겠지.”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한 건, 아직 감정에 서툴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사랑과 관련된 모든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습관들이 지워지지 않은 탓이다.
“미안.”
-답지않게 사과를 하시네요.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사과를 해야지.”
에일린 리가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니?”
-아빠가 돌아왔어요.
에일린 리가 표정을 굳혔다. 이내 그녀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우리 자기가 돌아왔다고? 살아 있었나 보네?”
그럴 줄 알았지만 말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응?”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에일린 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니?”
-네, 이 세상으로는 돌아왔거든요.
에일린 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리사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건 확실한데, 찾을 수가 없다는 거지?”
-네.
“내가 그걸 도와줬으면 하는 거고?”
-네, 아빠를 찾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릴게요.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준다니.
에일린 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뭘 원할 줄 알고?”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에일린 리는 픽 웃고는 말했다.
“원하는 건 없어. 아, 하나 있기는 하네.”
에일린 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려온 파도가 눈에 익은 사람을 토해내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다시 만날 때, ‘엄마’라고 불러주겠니?”
하나뿐인 딸한테 원하는 걸 말하며 말이다.
-뭐라고요?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그럼, 네 아빠 찾으면 다시 연락할게.”
에일린 리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지만 에일린 리는 무시했다.
그야, 그녀의 앞에.
“안녕, 자기.”
윤사해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