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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70)화 (370/500)

370화. 고작 그 정도(1)

“내가 불러낸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어디 있냐고?”

“그래.”

단조로운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그거 하나 물으려고 우리 길드를 이 꼴로 만든 거야?”

내뱉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저세상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길드가 아니라 네 길드지.”

“저세상!”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나는 차오르는 욕지거리를 겨우 집어삼키고는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매망량은 내 길드다.

저세상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나의 길드.

그게 바로 이매망량이었다.

저세상 역시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거다. 그런데 왜 저 자식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말하는 걸까?

아무리 우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그러졌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저세상.”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고는 물었다.

“이매망량은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저세상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이어 말을 내뱉었다.

“아니잖아. 네가 암만 유랑단이라고 해도. 빌어먹을 탈쟁이랑 같이 움직이게 됐다고 해도.”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엉망진창이 된 길드 건물 안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불러낸 건 어떻게 안 거야?”

“너는 몰라도 돼.”

“아니.”

그림자를 움직여 검을 만들어낸 후 짓씹듯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알아야겠어. 도대체 어떻게 내가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불러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지. 그 거주자는 또 왜 찾는 건지 말이야.”

험악하기 그지없는 나의 기세 때문일까?

저세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가 입술을 뗀 건 한참 후였다.

“……윤리사.”

저세상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와는 좋게 넘어가는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내 길드를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했던 거야?”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웃기지 마.”

이를 으득 갈며 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안 놓쳐.”

“저번보다 기세는 좋네.”

철그럭-!

저세상의 주위로 사슬이 움직였다.

“하지만, 윤리사. 나랑 약속해.”

저세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도 나한테 잡히면, 네가 부른 미지 영역의 거주자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는 거야.”

목소리만 들으면 이미 나를 잡은 줄 알겠다.

어쨌든 우리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나와 저세상은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을 박찼다.

***

‘너는 네가 잘 났다고 생각하지?’

저세상이 이를 악물었다.

원래 이곳을 파괴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윤리오.

다른 이름으로는 백정.

그는 갑작스럽게 이매망량에 나타나서는 서차웅을 죽였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부상시켰다.

이매망량에 침입한 이유는 하나.

‘나는 네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윤사해의 총애를 받는 자신의 존재가 그의 신경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더라?’

분노했던 것 같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매망량을 이런 꼴로 만든 거냐고.

서차웅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만든 거냐고 분노를 토해냈던 것 같다.

‘내가 불러낸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어디 있냐고?’

‘그래.’

‘고작, 그거 하나 물으려고 우리 길드를 이 꼴로 만든 거야?’

그래, 윤리사와 똑같이 굴었었다.

분노하며 또한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렇게 백정을 대했고, 그를 죽이고자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와 똑같은 짓을 벌였다니.

“하하…….”

믿기지 않는 현실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미쳤어?”

날 선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저세상이 상념에서 깨어나 윤리사를 바라보았다.

바로 코앞에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는 그녀는 눈에 띄게 성장한 상태였다.

머지않은 날에 자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카앙-!

사슬을 쳐낸 검이 빠르게 자신의 목을 노렸다. 저세상이 날래게 몸을 움직여 윤리사의 검을 피해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칼날에 상처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날카롭게 베인 상처에 송골송골 피가 맺혔다. 윤리사의 흔들리는 눈을 본 건 그때였다.

‘바보.’

지금 자신은 적이다.

이매망량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적.

그런 적이 다친 것에 저런 식으로 동요하다니.

‘정말 바보라니까.’

저세상이 픽 웃고는 이전보다는 다른 속도로 사슬을 움직였다.

“윽……!”

저세상의 사슬이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윤리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포기해.”

“닥쳐!”

윤리사가 힘겹게 검을 휘둘러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슬을 쳐내며 소리 질렀다.

“그때처럼 순순히 당할 줄 알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듯, 윤리사가 이를 악물고서 외쳤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수 없어!”

죽으면 끝이건만, 윤리사는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세상은 금방 알게 됐다.

“윤리사……!”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공격은 적당하게 받아치면서, 그녀는 자신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날카로운 끝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윤리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눈에 광기를 머금고서 자신을 향해 다가올 뿐.

저세상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사슬의 움직임을 살짝 늦췄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윤리사가 땅을 박찼다.

“윽!”

결국, 저세상은 그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의 위에 올라탄 윤리사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는 잡았어.”

저세상이 헛웃음을 흘렸다.

몸 곳곳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망신창이의 꼴로 잘도 말한다 싶었기 때문이다.

윤리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웃음이 나와?”

“그러는 너도 웃고 있잖아.”

저세상이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는 정말 바보야.”

***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나는 내 밑에 깔린 저세상의 멱살을 잡아들며 노골적으로 그를 비아냥거렸다.

“바보는 너 아닐까?”

지금 저세상에게 있어서 나는 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물리쳐야만 하는 적에게 이렇게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 한다는 소리가.

‘너는 정말 바보야.’

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저세상이 내 손에 붙잡혔다.

감히, 나의 세상을 무너뜨린 그가.

감히, 유랑단에 붙어 이매망량을 무너뜨린 그가.

드디어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그림자로 꼼짝도 못 하게 묶어 AMO에 넘겨줄까?

아님…….

‘죽일까?’

귀수산에서 윤사희와의 일이 아니었다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선택지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세상을 죽이면 나의 세상은 분명 원래대로 되돌아갈 거다.

지금 이 세상은 『각성, 그 후』의 데이터에 뒤집어 씌워진 상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도 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니었다.

당장, 12공방에서의 일을 생각해 봐도 그랬다.

저세상이 해결했어야 할 일이 이 세계에서 벌어졌는데, 과연 우연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저세상이 천지해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차렸고, 그를 왜 찾는 건지 궁금하지만.

‘됐어.’

그거야 천지해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저세상이 그를 알고 있는 눈치이니, 천지해도 그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천지해가 무사히 윤사해를 데리고 돌아온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

그리고 그 가정이 현실로 이뤄지기 위해서면 저세상을 죽여야만 했다.

그는 천지해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는 저세상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그림자로 이루어진 내 검은 저세상의 목에 꽂히기 전에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으윽!”

무언가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바람에 내 손에서 검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손등에 꽂힌 단검에 얼굴을 찌푸리는 사이 저세상이 사라졌다.

“나참,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니 제가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습니까?”

선비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나타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비 씨, 말은 제대로 해야죠. 제가 아니었으면 세상 군은 정말로 죽었을걸요?”

선비의 옆으로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하지만 말투로 보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매!”

“오, 저를 아시나요?”

이매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빌어먹을 탈쟁이가 두 명이나 저세상의 옆에 서 있는 모습이라니!

“하하……!”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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