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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69)화 (369/500)

369화. 하늘과 땅, 바다(6)

천지해가 윤사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움직이도록 하지. 마음 같아서는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고 싶은데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그런……!”

윤사해가 탄식하듯 말을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백정이 비딱하게 웃었다.

“어서 가, 아버지.”

작별을 건네는 백정을 본 윤사해가 다급하게 대도깨비에게 물었다.

“리오를 데리고 갈 수는 없나?”

“아버지.”

백정이 얼굴을 구겼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어서 가. 대도깨비님도 말했잖아? 시간이 많이 있지 않다고.”

〖그래.〗

대도깨비가 백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계약자께서 아무래도 위험에 처한 것 같아서 말이지.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돌아가야한다. 혹여라도 잠든 내 몸이 공격당하면 이쪽 세계와 연결이 끊어질 테니.〗

윤사해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야, 대도깨비가 말한 계약자란 분명 제 딸을 말하는 것이었을 테니.

잔뜩 동요하는 그 모습에 백정이 말했다.

“어서 가.”

그가 윤사해의 어깨를 밀었다.

“내 동생들, 지켜 줘야지.”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이 이 세계를 떠나면 아들은 혼자 남게 된다. 모든 가족이 죽어 버린 이 세계에서 말이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윤사해가 대도깨비가 내민 손을 잡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 때였다.

“리오가 걱정돼?”

서차윤이 물었다.

그가 윤사해를 향해 싱긋 웃고는 백정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리오는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뭐?”

“왜 그렇게 놀라?”

서차윤이 키득거리며 물었따.

“설마, 나랑도 같이 돌아갈 생각이었어?”

윤사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서차윤도 함께 돌아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야, 서차윤 역시 자신과 똑같은 세상에서 온 이방인이지 않는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다고 하나 지금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윤사해는 알았다.

대도깨비와 함께 돌아갈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서차윤 역시 그것을 알 텐데도 그는 말했다.

“나는 안 가, 사해야.”

“서차윤.”

“원래 이러려고 온 거야.”

서차윤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나는 너와 함께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즉시 사라지게 될 거야.”

“그게 무슨…….”

“그러니까 여기 남을게.”

서차윤이 백정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팔을 들어 옅게 분홍빛이 도는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백정이 와락 얼굴을 구겼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차윤은 방긋 웃고는 윤사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쪽 세계의 리오는 걱정할 거 없어.”

윤사해가 서글프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차윤,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윤사해는 결국 몸을 돌렸다.

그렇게 대도깨비의 손을 잡으려는 찰나.

“사해야.”

서차윤이 그를 불러 세웠다.

윤사해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뭐든.”

나지막하게 들려온 대답에 서차윤의 얼굴이 환해졌다. 곧, 그가 입가에 미소를 한껏 걸치고는 말했다.

“나 잊지 마.”

윤사해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래.”

그에 서차윤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리고 ■■■ 만나면 한 대 좀 때려 줘. 이왕이면 주먹으로.”

“누구?”

묻는 말에 서차윤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제대로 안 들리나 보구나? 어쩔 수 없지.”

서차윤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부탁은 이것으로 끝!”

“서차윤.”

“어차피 너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거야, 서차윤이 한 가지만 부탁한다 했으니까 그런 거였다.

윤사해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멍청한 놈.”

나지막하게 그를 욕하면서 말이다.

윤사해가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분명 들었을 텐데도 서차윤은 웃는 얼굴이었다.

“잘 가, 사해야.”

작별을 건네는 인사에 윤사해가 입술을 꾹 깨물고 대도깨비의 손을 잡았다.

〖나참, 작별 인사 나눌 시간 없다니까.〗

대도깨비가 툴툴거리는 순간.

파아앗!

환하게 빛이 터지기 시작햇다.

윤사해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백정과 서차윤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서차윤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백정은 가만히 윤사해를 응시하다 입을 뻐금거렸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으나 윤사해는 아들이 전한 말을 알아 들었다.

‘안녕, 아버지.’

“리오……!”

윤사해가 뒤늦게 그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라졌군.〗

윤사해는 대도깨비와 함께 모습을 감춰 버렸다. 랑야의 말에 서차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이 이 세계를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니까요.”

그러고는 웃으며 물었다.

“막상 가니까 아쉬워요?”

〖시끄럽다.〗

랑야가 코웃음을 쳤다.

〖내게 있어서 아쉬운 건, 저 자식의 세상에서 살아 있는 내 딸의 자식들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다.〗

“하긴, 그렇겠네요. 랑야 님 손주 분들 엄청 귀여우니까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몰래 봤으니까 알죠.”

서차윤이 쾌활하게 웃을 때였다.

“서차윤.”

백정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 이곳에 괜히 남아 있기로 한 거 아니지?”

서차윤이 두 눈을 끔뻑이다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리 리오, 똑똑하네?”

“닥쳐.”

백정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목적을 밝히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죽여 버릴 테니.”

서차윤의 목에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이 겨눠졌다.

서차윤은 무섭지도 않은지 미소를 그리고는 백정을 향해 물었다.

“리오, 네 아버지의 세상에 있는 ‘윤리오’를 구해 주지 않겠니?”

백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

“으윽…….”

삐이!

시끄럽게 울리는 이명에 머리를 부여잡고서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굉음과 함께 귀수산이 크게 흔들렸다는 것뿐.

이후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작게 기침을 터트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

헛숨을 들이삼켰다.

이매망량의 건물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는 것 같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천지해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그를 찾았다.

“아……!”

다행히도 천지해는 무사했다.

그는 내 그림자에 둘러싸여 쿨쿨 잠든 상태였다. 아무래도 폭발에 휘말릴 때에 그를 보호하고자 움직인 모양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윤사해를 데리고 오기 위해 잠에 든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면 분명 큰일이 났을 테니까.

나는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고는 창을 쥐었다. 이제 이매망량을 습격한 적을 쓰러뜨릴 차례였다.

“길드장님!”

“류화홍 헌터.”

타이밍 좋게 류화홍이 나타났다.

“괜찮으세요?”

“류화홍 헌터는요?”

“보다시피요. 이매망량이 폭발에 휘말려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갔었거든요.”

“혼자서요?”

류화홍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 실없는 웃음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부상자를 옮기도록 하세요.”

“길드장님은요?”

“우리 길드를 이렇게 만든 빌어먹을 새끼한테 한 방 먹여야죠.”

폭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안개가 더욱 짙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서 앞을 쳐다봤다.

곧, 날카롭게 끝이 벼려진 것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류화홍 헌터! 저 도깨비와 함께 피해요!”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류화홍이 천지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신을 잃은 서차웅과 광혜원도 데리고 이동했다.

나는 창을 휘둘러 가까스로 내게 들이닥쳤던 것을 막아냈다. 내가 휘두른 창에 가로막힌 것들이 안개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나는 숨을 들이 마시고는 땅을 박찼다.

짙은 안개에 앞이 안 보인다고 해도 적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 있었다.

‘찾았다!’

적을 인지한 나는 창을 쥔 손에 힘을 주고서 그것을 휘둘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윽?”

무언가가 창을 꽁꽁 감싸 버렸다.

나는 어떻게든 창을 묶은 것에서 빠져나오려다가 결국 손을 놓았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무기가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다시 그림자를 움직여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냈다.

“소용없어, 윤리사.”

나지막하게 적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저세상?”

“그래.”

대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자욱하게 시야를 막고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저세상이었다. 그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불러낸 대도깨비, 지금 어디 있어?”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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