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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각성자의 딸이랍니다 (367)화 (367/500)

367화. 하늘과 땅, 바다(4)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 힘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다니!〗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도저히 신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유를 설명해 줬다.

“저기요.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계약 관계로 묶이지 않는 이상 본래의 힘을 사용하지 못해요.”

〖뭣?! 도대체 누가 그런 터무니 없는 짓을!〗

“그거야 저도 모르죠.”

어깨를 으쓱인 후 물었다.

“그보다 어떻게 할래요?”

나는 길드원들에게 눈치껏 자리를 비켜달라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길드원들은 두 눈을 빛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망할 인간들이 진짜!

나는 결국 그림자를 움직여 길드원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갔다.

하지만.

“우왓! 길드장님, 놀랐잖아요!”

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는 류화홍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짧게 혀를 찬 후 서차웅을 시켜 류화홍을 쫓아내 버렸다.

“길드장님, 그럼 저도 잠시 자리를 비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할게요.”

그런 후에야 나는 미지 영역의 거주자와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천지해 님.”

내가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을 오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그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해야, 신의 진명은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천지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왜 자꾸 자신의 이름을 부르냐고 묻는 듯했다.

그렇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달리 부를 이름이 없잖아요?”

〖그거야 네가 진명을 대신할 이름을 새롭게 지어 주면 되는 일이지 않느냐?〗

하긴, 랑야를 비롯한 다른 도깨비의 이름도 윤사해가 지어 준 거지?

그렇지만.

“당신이 저와 계약 관계가 되면 지어 드릴게요.”

그거야 윤사해가 그들과 계약을 맺은 관계이기에 그런 것뿐. 나와 눈앞의 거주자는 현재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주 맹랑한 녀석이구나.〗

“제가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제 장점이죠.”

〖단점이 아니라?〗

마음대로 생각하라며 어깨를 으쓱여 줬다.

천지해가 불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내 성질을 건드리는 게 실패해서 심통이 난 모양이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란 작자가 속이 저렇게 좁아도 되는 거야?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무엇을?〗

“모르는 척하실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천지해를 불러낸 피리를 손에 쥐고서 담담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계약은 없던 일로 하고 이 피리를 부술 수밖에요.”

〖안 돼!〗

천지해가 기겁했다.

〖내 생애 너처럼 포악한 아해는 처음 보는구나!〗

“그래요?”

이상하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보다 포악한 사람이 분명 존재했을 텐데요.”

〖아니, 없었다.〗

“거짓말.”

웃는 낯으로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향해 물었다.

“윤사희라고 있지 않았어요?”

천지해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

“그거야 윤사희는 제 증조할머니 되시는 분의 이름이니까요.”

천지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곧, 그가 까치발을 들어 내 턱을 잡았다.

〖이렇게 보니 사희 그 녀석과 많이 닮았구나. 그래,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싶었지. 느낌도 그렇고 기운도 그렇고 사용하는 힘도 그렇고.〗

이내 천지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사희의 자식 놈은 너 말고 또 있을 텐데? 내 아해들을 자기 좋을 대로 부리는 아주 못되어 처먹은 놈이 말이다.〗

못되어 처먹은 놈이라니.

‘윤사해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고 보니 그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렇게 밖에 나왔으면 그놈과 계약 관계로 묶여 있는 내 아해들의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말이다.〗

천지해가 말하는 못되어 처먹은 놈은 윤사해가 분명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빠는 지금 실종된 상태세요.”

〖아빠?〗

“네, 당신께서 말하는 사람이 바로 저희 아빠거든요.”

〖호오.〗

천지해가 입술을 오므렸다.

〖실종이라…….〗

그가 입가를 매만지고는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개념이다.〗

“네?”

〖네 아빠라는 그 못되어 처먹은 놈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 없다니.

“아빠는 살아 계세요!”

〖누가 죽었다더냐?〗

천지해가 키득거리며 웃고는 입을 열었다.

〖네 아비는 다른 세상에 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있다는 소리지.〗

천지해의 금안이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내 아해들이 갑작스럽게 모두 사라져서 다들 사이좋게 바깥나들이를 간 건가 했지만…….〗

이곳에서 도깨비들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천지해가 말을 덧붙였다.

〖찾아보니 웬걸? 엉뚱한 세상에 가 있구나. 네 아버지와 함께 말이다. 불행히도 내 아해들은 잘못된 시간 속에서 잠든 모양이지만.〗

천지해가 두 눈을 휘며 접듯이 웃었다.

〖그래도 소멸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잠시만요!”

주절주절 늘어놓는 목소리를 다급하게 끊으며 외쳤다.

“다른 세상이니 잘못된 시간이니 알아듣게 좀 말해 주세요!”

〖머리가 나쁜 아해인가 보구나.〗

“천지해 님의 설명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흐음.〗

천지해가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게 물었다.

〖아해야,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느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내게 있어서 이곳은 『각성, 그 후』의 세계였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천지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초, 우리는 이곳의 신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가 보여 준 건 푸르게 빛나고 있는 별.

바로, 지구였다.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과 함께 존재하게 된 우리는 서로 화합했었지. 처음에는 말이다.〗

따악!

천지해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기 무섭게 푸르게 빛나던 별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명 속에서 태어난 우리는 머지않아 계속해서 다투게 됐다.〗

천지해의 금안에 그림자가 졌다.

〖그것을 보다 못한 우주가 우리가 태어난 문명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지.〗

지구 옆으로 또 다른 별이 등장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이다.〗

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믿기 어려우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지. 애초에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녀석들은 몇 없으니까.〗

“그 사실을…….”

잠시 말을 멈춘 후, 호흡을 골라 목소리를 내뱉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거죠?”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천지해가 씨익 입고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나는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에서 태어난 최초의 도깨비이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하늘이 있는 곳에서 보지 못할 것은 없고, 땅이 있는 곳에서 느끼지 못할 것은 없다.

또한 바다가 있는 곳에서 품지 못할 것 역시 없었다.

〖그렇기에 네 아비가 있는 곳을 찾은 곳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쫓아 그 흔적을 추적해서 말이다.

“잘못된 시간이라는 건…….”

〖쉽게 말해 네 아비 같은 경우를 말한다.〗

천지해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죽었을 녀석이 살아있는 것.〗

두 눈이 떨렸다.

윤사해가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각성, 그 후』

저세상에 의해 죽임을 맞이했던 그 세상에 있는 게 분명했다.

“……데리고 돌아와 줘요.”

윤사해를, 내 아빠를.

“데리고 돌아와 달라고요!”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에서 태어난 태초의 도깨비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이니 윤사해를 그 세상에서 쉽게 데리고 올 수 있을 터였다.

어린아이가 터무니없이 떼를 쓰는 것과 똑같이 내뱉은 목소리에 천지해가 반응했다.

〖그것이 네 소원이냐?〗

흠칫 몸을 움츠리며 천지해를 쳐다봤다. 보름달과 똑같은 색을 지닌 그의 두 눈이 나를 빤히 담았다.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할 거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와 계약이 이뤄지게 된다.

〖나는 네가 바라는 것은 뭐든 이뤄줄 수 있단다, 아해야.〗

천지해가 히죽거렸다.

〖마음만 먹으면 네 가족을 그렇게 만든 놈을 흔적조차 남지 않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으며.〗

저세상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그가 웃었다.

〖네 가족을 네가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영원한 잠에 빠진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있는 윤리오를 깨어나게 만들 수 있으며, <[S, 숙련 불가] 인지의 눈>로도 찾을 수 없는 윤리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도 있다.

〖자, 그러니 다시 물으마.〗

천지해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네 아비를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 그것이 네 소원이냐?〗

나는 파르르 떨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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