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하늘과 땅, 바다(1)
쏴아아-!
거센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비에 창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오랜만에 놀러 가려고 했더니 비가 오고 지랄이네.”
단아가 불퉁하게 말했다. 그런 단아를 도윤이가 말렸다.
“진정해. 오늘 아침부터 비온다고 그랬잖아.”
“누가?”
“기상청이.”
“그 자식들은 맨날 일기 예보 틀렸으면서 이럴 때만 맞아!”
단아가 성질을 부리고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윤리사랑 간만에 만나는 건데!”
간만에 만나는 거라니.
“단아야, 우리 저번주에도 만났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집에서 단아와 도윤이를 만난 후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중이었다.
“그래도!”
단아가 빼액 소리 질렀다.
“나는 일주일이 일 년 같단 말이야! 윤리사, 너는 안 그래?!”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단아가 나를 꼭 끌어안고는 활짝 웃었다.
“그보다 날씨가 저래서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가기 어렵겠는데.”
도윤이가 창밖을 보며 근심에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뭘 걱정해?”
단아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윤리사 집에서 하룻밤 더 자면 되지!”
“학교는?”
“안 가면 되지!”
당당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도윤이가 앓는 소리를 내고는 이마를 짚었다.
“단아야, 너희 할아버지한테 연락은 했어?”
“아직!”
“어서 해. 걱정 하실라.”
“걱정은 무슨.”
“한단아.”
나지막하게 부르는 도윤이의 목소리에 단아가 입술을 삐죽이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우리 도윤이, 못 본 사이에 단아의 고삐를 잡게 됐구나. 어릴 적에 맨날 단아한테 맞기만 하더니.
괜히 흐뭇해져 웃는데 단아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가 안 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도윤이가 묻는 순간.
콰광!
벼락과 함께 집 안의 모든 불빛이 꺼져 버렸다.
정전이 된 거다.
“으아악!”
단아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 단아야……!”
숨 막혀! 목 부러지겠어!
나는 살려달라며 단아의 팔을 여러 차례 두드렸고.
“아, 미안.”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단아가 나를 풀어 줬다.
“쿨럭!”
나는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겨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죽는 줄 알았다!’
단아의 힘이 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디 부러지지 않았지?’
나는 목을 어루만지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도윤이는 침착했다.
“리사야, 아무래도 이 근방이 모두 정전된 거 같은데 손전등이나 그런 거 없어?”
“손전등 찾을 필요 없이 네가 불 켜면 되잖아.”
단아의 말에 도윤이가 말했다.
“스킬은 위급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거라고 그랬잖아.”
“지금이 위험 상황 아닌가?”
주변은 모두 정전됐고 어디에서 적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날씨에서는 지하 길드 녀석들도 활동하지 않을 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단아에게 도윤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도윤, 너 지금 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지?”
“응? 아, 아닌데?”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맞네! 이 자식이!”
“아악!”
도윤이가 비명을 질렀다.
단아의 고삐를 쥐게 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전등 찾아서 올게.”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창고로 가 손전등을 찾아왔다.
손전등뿐만이 아니라 양초도 몇 개 챙겨 왔다.
먼지가 잔뜩 쌓인 표면을 털어내고 바닥에 그것들을 놓자 도윤이가 양초에 불을 붙였다.
“언제는 위급 상황에서만 스킬을 사용하는 거라고 하더니?”
“크흠, 흠!”
단아의 뾰족한 말에 도윤이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자자, 그만하고. 손전등은 양초 다 태우면 켤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렇게 있으니까 무서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단아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분위기기는 했다.
하지만.
“단아, 너. 귀신 무서워하지 않아?”
단아는 생각보다 겁이 많았다.
도윤이가 그 점을 정확하게 짚자 단아가 화들짝 놀라며 격하게 부정했다.
“아니거든?! 귀신 무서워하는 건 백도윤, 너잖아!”
“나는 아닌데.”
“어쨌든!”
단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된 거, 시합하자!”
“무슨 시합?”
“누가 더 무서운 이야기하는지!”
그러면서 단아는 말했다.
“진 사람은 다음에 만날 때,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한 사람이 원하는 간식 사 오기!”
다소 뜬끔없는 이야기였지만 단아다웠다.
그보다 무서운 이야기라…….
‘내가 이기겠네.’
12공방에서 있었던 일이나 귀수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면 다들 비명을 지르며 뒤집어질 테니까.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데 단아가 말했다.
“윤리사, 나부터 이야기 시작할 테니까 무서운 분위기 좀 조성해 줘.”
“무서운 분위기?”
그림자를 움직여서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라는 건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양초에 의해 그려진 그림자를 움직이기 무섭게 단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도윤이도 함께였다.
“얘들아, 진정해! 그냥 그림자야! 그림자일 뿐이라고!”
내가 그렇게 말한 후에야 단아와 도윤이는 진정했다.
나참, 저렇게 겁이 많아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그때, 단아가 심장을 부여잡고서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피리 있잖아! 그거 불라고 했던 거야!”
“아, 그래?”
그보다 단아는 내가 피리를 가지고 있는 걸 도대체 언제 봤담?
나는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고는 피리를 꺼냈다.
“그런데 이거 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네.”
“피리잖아.”
“그렇기는 한데, 얘가 좀 특수한 피리거든?”
“특수해? 어딜 봐서?”
단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피리를 손에 쥐고는 말했다.
“이거 성유물이거든.”
“뭐?!”
단아와 도윤이가 놀라 물었다.
“성유물이라고? 그게?!”
“리사야, 정말이야?”
놀란 얼굴로 묻는 목소리에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로는 도깨비를 부를 수 있는 피리라고 하던데?”
“도깨비……!”
단아와 도윤이가 동시에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보니 둘이 아주 죽이 척척 잘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도깨비라니! 그럼 그건 미지 영역의 거주자들과 계약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거야?!”
“물건이 아니라 아이템!”
“아이템이든 물건이든 거기서 거기잖아!”
도윤이의 지적에 단아가 불퉁하게 구시렁거리고는 내게 물었다.
“불어 봐!”
“응?”
“지금 당장 불어 보라고!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왜 잡동사니처럼 두고만 있었던 거야?!”
단아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억울했다.
윤사희에게 받은 피리를 잡동사니처럼 두고만 있었다니!
‘그런 거 아닌데!’
피리를 불지 않고 두고 있었던 건 윤사희가 말한 도깨비의 이름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윤사희는 이 피리로 부를 수 있는 도깨비의 신명에 대해 힌트를 줬었다.
별 도움이 안 되는 힌트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보자, 윤사희가 힌트를 어떤 식으로 줬더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
그래, 그랬었지.
생각하니 새삼스레 화가 나는데 단아가 계속 재촉했다.
“윤리사, 뭐해? 어서 피리를 불어 보라니까?”
“그게, 나도 불고 싶은데.”
“그럼, 불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단아가 물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을 몰라.”
“이름?”
“응.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그 진명을 알아야만 불러낼 수 있잖아.”
“그런데 그 진명을 모르겠다는 거구나?”
도윤이가 정답을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골치 아프다는 듯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피리를 건네준 사람이 힌트를 주기는 했는데…….”
“무슨 힌트?”
단아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가르쳐 줘! 같이 찾아보면 되잖아! 혹시 모르지! 나나 백도윤이 정답을 찾아줄지도!”
“그런가?”
도윤이라면 몰라도 단아는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가르쳐 주기로 했다.
단아의 말대로 머리를 맞대서 좋지 않을 일은 없으니까.
나는 두 사람에게 윤사희가 가르쳐 준 힌트를 알려줬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
단아와 도윤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늘인가?”
“아님, 바다일 수도 있지.”
“땅을 말하는 게 아닐까?”
“혹시 사람?”
“사람이면 동물도 쳐야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스무고개도 아니고, 단아와 도윤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작 피리의 주인인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
저러다 날이 새도록 답을 찾아내려고 할 것 같아 나는 황급히 친구들을 말렸다.
“자자, 미지 영역의 거주자의 진명은 나중에 찾고 누가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들어나 보자.”
단아와 도윤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윤리사, 너는 따로 생각나는 거 없어?”
“생각나는 거?”
나는 골똘히 생각하고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진작 피리를 불어 도깨비를 부르려고 했을 거다.
어쨌든 우리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피리를 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