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돌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5)
“대도깨비님?”
“그래. 아버지께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면 그분을 찾아가야 하니까. 혹시 당신이 아는 다른 방법 있다면.”
“없어.”
서차윤이 장작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대도깨비님을 이용해 사해를 원래 세계로 보내려고 했는걸?”
윤사해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함께 가는 것도 아니고 보내려고 했다고?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일 때 서차윤이 입을 열었다.
“대도깨비님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어.”
〖그럴 리가!〗
랑야가 버럭 소리 질렀다.
〖우리도 모르는 그분의 위치를 네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알고 있다 하죠?”
서차윤이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출발할래? 당장 안내해 줄 수 있는데.”
그 말에 백정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듯 윤사해를 쳐다봤다. 윤사해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쉬고.”
지금까지 마음 놓고 푹 쉰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지 않다고 하지 않나?
미쳐 버린 거주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곳이라면야 푹 쉴 수 있었다.
그것이 암만 불타 버린 자신의 집이라고 해도 말이다.
윤사해의 대답에 서차윤이 물었다.
“그럼 내일?”
“그래.”
“좋아.”
서차윤이 장작에 불을 피우며 활짝 웃었다.
“그럼, 내일 대도깨비님을 만나러 가자. 여기서 안 멀어.”
랑야가 의심스럽다는 듯 서차윤을 쳐다봤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장작이 타들어 가는 중에 백정이 잠들었다. 랑야 역시 두 눈을 감고 잠에 빠진 듯 굴었다.
깨어나 있는 사람은.
“서차윤.”
윤사해와.
“왜, 사해야?”
서차윤이었다.
윤사해가 자신이 죽였던 그때와 변한 게 없는 친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금지.”
윤사해가 얼굴을 찌푸렸다.
서차윤이 그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지만 사해야. 나는 이 비밀을 지옥 끝까지 가져가기로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절대로 알려줄 수 없어.
서차윤이 나지막하게 뒷말을 중얼거리고는 물었다.
“다른 건? 다른 질문은 뭐든 대답해 줄게.”
“뭐든?”
윤사해가 두 눈을 빛냈다.
서차윤은 곤란하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보였다.
“서로 불편한 질문은 빼고.”
“아니.”
윤사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곧, 그가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나?”
서차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치 못하던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입가를 어루만지고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원망스럽지 않냐고?”
그럴 리가.
오직 친구의 행복을 위해 셀 수 없이 시간을 반복했다.
그런데 원망스럽지 않냐고?
“그럴 리가 없잖아.”
서차윤이 미소를 그렸다.
윤사해는 변함없이 젊은 모습이었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어 있었다.
서차윤은 단 한 번도 친구가 저런 식으로 나이가 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특수 스킬] : Prologue Story>를 포기한 후에야 보게 된 친구의 다른 모습이라니.
새삼스레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서차윤은 더없이 활짝 웃었다.
자신은 죽어 그와 함께 늙어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기뻤다.
“서차윤…….”
윤사해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곧 자리에 누워 버렸다.
“어? 뭐야? 잘 거야? 나한테 더 궁금한 거 없어?”
놀리듯 묻는 목소리에 윤사해는 침묵했다.
“사해야, 나 믿어?”
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말이다.
서차윤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야. 나 믿고 자. 혹시 모르니까 불침번 설게.”
“됐어.”
윤사해가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말했다.
“너한테 불침번을 맡길 바에야 그냥 잠을 안 자고 말지.”
“나에 대한 신뢰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닥쳐.”
날선 목소리에 서차윤이 무섭지도 않은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타닥타닥-!
그런 와중에도 모닥불은 계속해서 타들어 갔다.
***
“사해야, 일어나.”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윤사해가 놀라 두 눈을 떴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서차윤과 함께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피곤했었는지 어느 순간 눈 감고 자던데?”
“그럼 깨웠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왜?”
서차윤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작게 손뼉을 쳤다.
“자, 다들 정신 차려요! 대도깨비님 만나러 가야죠!”
〖시끄러운 놈.〗
“그러니까요.”
백정이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마음 놓고 푹 잤던지라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났다.
“이봐, 서차윤. 대도깨비님이 어디 계시는지 안다는 건.”
“확실한 정보야.”
서차윤이 백정의 말을 끊고는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 착한 리오는 삼촌 의심 그만하자.”
“뭐라는 거야?!”
백정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마음 같아서는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저 얼굴을 베어 버리고 싶었지마는.
‘참자, 참아.’
제 동생의 부탁에 의해 이곳까지 온 거라고 하지 않나?
저쪽에 있는 ‘윤사해’와 다르게 눈앞의 남자는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분명했지만.
‘그래도 참자.’
백정은 마음을 다스렸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요? 참고로 가는 길이 조금 험할 거예요.”
미친 거주자들이 날뛰고 있는 곳을 지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갈 거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출발!”
서차윤이 밝게 외쳤다.
백정이 그 모습에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서차윤은 저렇게 등신 같은 놈이 아니었는데.”
“원래 저렇단다.”
윤사해가 말을 덧붙였다.
“항상 등신 같은 놈이었지.”
서차윤은 들리지 않는지 가볍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모두가 서로 눈치를 보다 그의 뒤를 따랐다.
서차윤을 따라 느긋하게 움직이던 몸이 순식간에 빨라지는 건 금방이었다.
〖이봐! 서차윤! 가는 길이 조금 험할 거라며!〗
“그러지 않나요?!”
〖그러지 않기는!〗
랑야가 형체가 일그러진 미지 영역의 거주자를 물어뜯고는 외쳤다.
〖이곳은 그냥 지옥이잖아!〗
“하지만 이쪽 길이 가장 빠른걸요? 돌아서 가면 일주일은 더 넘게 걸린단 말이에요!”
〖말은 잘하지!〗
랑야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서차윤은 배시시 웃고는 랑야가 물어뜯은 거주자의 사체를 자신의 스킬로 움직였다.
“오, 제 스킬. 거주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나 봐요.”
〖놀랄 시간에 어서 저것들을 처리하기나 해!〗
“제가 처리 안 해도 사해랑 리오가 잘 처리 중인데요?”
랑야가 제 말에 토 달지 말라는 듯이 서차윤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 서차윤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들이 그러고 있을 때에 윤사해랑 백정은.
“시발! 저 망할 서차윤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리오.”
“욕하지 말라니 그런 잔소리할 거라면 사양이야!”
백정이 거칠게 검을 휘둘러 거주자들을 쓰러뜨린 후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알고 있는 아들이 아니니까.”
윤사해가 입술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눈앞에 있는 백정은 어떻게 봐도 자신의 아들처럼 보였지만 윤사해는 알았다.
백정은 ‘윤리오’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백정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때, 윤사해의 시선에 백정의 뒤를 치려는 것이 보였다.
“리오!”
윤사해가 다급하게 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림자를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으니.
“안 되지, 안 돼.”
바로 서차윤이었다.
그가 백정의 뒤를 치려던 것을 가볍게 제압하고는 웃었다.
“누구를 노리려고 그래?”
서차윤이 너덜너덜해진 형체를 손으로 찢어버리고는 물었다.
“괜찮아?”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됐었어.”
백정이 불쾌하다는 듯 날 선 목소리를 내뱉고는 휙 몸을 돌렸다. 서차윤이 어색하게 웃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윤사해가 멍하니 보았다.
“서차윤.”
“응?”
“너는 도대체…….”
윤사해가 목소리의 끝을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서차윤은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을 거다.
그를 잘 알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서차윤이 말없이 윤사해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보다, 도착했어.”
“뭐?”
“대도깨비님이 계시는 곳.”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세찬 바람이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그 바람이 걷히고 드러난 건 커다란 나무였다.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까지 오면서 본 적 없는 나무였다. 저렇게 큰 나무라면 멀리서도 눈에 띄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때, 랑야가 뛰어갔다.
〖대도깨비님!〗
자세히 보니 나무에 묶여 있는 웬 남자가 보였다. 짙은 갈색 머리칼을 길에 늘어뜨린 남자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봐, 서차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뭐가요?”
〖대도깨비님이 죽은 듯이 잠들어 계시지 않나!〗
“네.”
서차윤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랑야 님, 제가 말했잖아요.”
대도깨비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대도깨비님이 멀쩡히 계시다는 소리는 한 적 없어요.”
〖네놈……!〗
랑야가 서차윤에게 달려들려 할 때, 윤사해가 그의 앞을 막았다.
“잠깐만, 랑야. 서차윤도 무슨 생각이 있는 거겠지.”
그렇지?
윤사해가 소리 없이 그렇게 물으며 서차윤을 쳐다봤다. 서차윤이 제게 닿는 시선에 두 눈을 끔뻑이다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서차윤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향해 성큼 다가서서는 말했다.
“대도깨비님은 깨어나실 거야.”
단.
“리사가 이분의 진명을 알아서 불러낸다면 말이지.”
“뭐……?”
윤사해가 멍하니 물었다. 서차윤은 그저 미소를 그릴 뿐.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