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돌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3)
“그보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서차윤이 물었다.
“이 비, 몸에 안 좋은 것 같은데.”
윤리오가 구겨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다 휙 몸을 돌렸다.
“시발.”
새된 욕을 내뱉으며 말이다.
윤사해가 그런 아들을 쳐다보고는 이내 서차윤을 향해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똑바로 말해.”
“우선은 비 좀 피하자.”
서차윤이 싱긋 웃었다.
“이대로 계속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 거라고?”
그것도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 거다. 그뿐이랴? 산성비를 맞아 머리카락도 빠질 거다.
윤사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차윤이 그런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가자, 사해야.”
다정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윤사해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팔을 매몰차게 뿌리치고는 아들이 향한 곳으로 걸어가 버렸다.
서차윤이 그 뒷모습을 보다 픽 웃음을 흘렸다.
“저 많이 미움받나 보네요.”
〖그걸 이제 알았다니, 너는 저 녀석과 다르게 내가 알고 있는 그놈이 맞나 보군.〗
“정답.”
서차윤이 어깨를 으쓱인 후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라서요.”
뜻 모를 말에 랑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랑야 님, 따라가도 될까요? 계속 비 맞으면서 서 있기 싫단 말이에요.”
〖마음대로 해라.〗
서차윤이 쾌재를 부르며 랑야의 뒤를 따랐다.
***
한편, 그 시각.
“리오! 멈추렴!”
윤사해는 다급하게 아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윤리오!”
철퍽! 철퍽!
웅덩이가 진 곳을 그대로 밟으며 걸어가던 백정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는 참 말을 안 들어.”
그 이름, 버린 지 오래라고 암만 말을 해도 들어 먹지를 않으니.
“왜 쫓아오는 거야?”
백정이 사납게 물었다.
“내가 아버지 버리고 떠날까 봐 그래? 걱정 마. 안 그래.”
버린다면 갑자기 나타난 서차윤을 버리지.
“약속했잖아. 아버지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그러니까 안 버려.
백정이 나지막하게 뒷말을 덧붙인 후 말했다.
“먼저 돌아가 있어. 나는 생각 좀 정리하고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아니.”
윤사해가 고개를 저었다.
“함께 있자꾸나.”
백정의 얼굴이 구겨지는 찰나.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든.”
윤사해가 서글프게 웃었다.
백정이 말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다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 대답에 윤사해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린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에서도 서차윤은.”
“나와 윤리타를 납치했었어.”
백정이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쪽에서도 그랬나 봐?”
윤사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였어?”
다시 들려 온 질문에 윤사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죽였지…….”
분명 자신의 손으로 죽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나는 몇 번이고 네 아이들을 노릴 테니.’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노릴 거라는데, 어떻게 죽이지 않고 살려 둔단 말인가?
“그럼, 우리가 만난 저 인간은 귀신인가?”
백정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구나.”
귀신은 형체가 없다.
그러나 서차윤은 자신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퍽 다정하게 굴었었다.
마치, 자신은 살아 있는 사람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자식은 도대체 뭔데?”
백정이 날카롭게 물었다.
“아버지가 직접 죽였던 인간이 대체 왜 우리 앞에 나타난 건데?!”
그것도 멀쩡하게 살아서.
다그치듯 묻는 목소리에 윤사해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차윤의 존재는 저 역시 궁금한 것이었다.
“아아, 몰라.”
백정이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다른 세계의 아버지도 나타난 마당인데, 그 인간도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거지. 그래.”
자문자답하며 혼잣말을 하던 백정이 이내 말했다.
“수상하게 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되는 일이니까.”
윤사해가 움찔거렸다.
그 동요를 놓치지 않고 백정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왜? 그래도 꼴에 친구라고 걱정되나 보네?”
윤사해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아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백정이 얼굴을 구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지 말라고 욕을 한껏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결국 그는 윤사해한테서 시선을 휙 돌린 후 말했다.
“안 죽여.”
윤사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꼭 의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백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서차윤, 안 죽일 거라고!”
시끄럽게 굴면 미쳐 버린 거주자가 찾아올지도 모르건만 그는 그랬다.
어쨌거나 그 외침에 윤사해가 옅게 미소를 그리는 찰나.
“그것 참 고마운 소리네.”
서차윤이 찾아왔다.
다 큰 성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란 우산을 손에 쥐고서 말이다.
서차윤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부자(父子)를 향해 활짝 웃었다.
“너무 안 와서 데리러 왔어.”
부자(父子)의 얼굴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단번에 구겨졌다.
***
“랑야님, 아무래도 저는 미움을 많이 받고 있나 봐요.”
〖그걸 이제 안 거냐?〗
랑야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린 후 말했다.
〖윤사해, 저 자식과는 다르게 너는 내가 아는 그놈과 똑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더니 아닌 모양이군.〗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목소리에 랑야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야, 그 녀석은 너만큼 뻔뻔하지 않았거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물론, 그 녀석도 뻔뻔하기는 했지. 하지만 지금 너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요?”
서차윤이 키득거렸다.
“그것 참 이상하네.”
〖내가 보기에는 네가 더 이상하다.〗
서차윤은 방긋 웃어 줬다.
곧, 그가 자신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 부자(父子)를 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 두 사람은 잘 지내요?”
〖보다시피.〗
랑야가 서차윤과 함께 윤사해와 백정을 보며 말했다.
〖처음에야 삐걱거렸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그런 것 같네요.”
서차윤의 눈매가 휘게 접혔다.
“다행이다.”
랑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이라니?
저 부자(父子)가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게 바로 서차윤이지 않나?
랑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정말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군.〗
“그런 이야기 자주 들어요.”
〖누구한테?〗
서차윤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랑야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뚱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다시 보니 너는 내가 아는 그 녀석이 맞나 보군. 자기 불리할 때는 대답하지 않는 모습이라니.〗
짜증이 묻어 있는 목소리에 서차윤이 헤실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웃기는 소리.〗
랑야가 콧방귀를 꼈다.
“그보다 랑야 님, 먹을 거 없어요? 저 배고픈데.”
서차윤이 기쁘다는 얼굴로 주린 배를 손으로 감쌌다.
〖먹을 것이라면 저기 많이 있다.〗
랑야가 턱짓으로 자신이 가지고 온 통조림 캔들을 가리켰다.
그에 서차윤이 울상을 지었다.
“차라리 죽으라고 하지 그래요?”
랑야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윤사해와 백정이 있는 곳.
자신이 움직이는 순간 두 사람은 살벌하게 저를 노려볼 것이다. 그냥 보기만 한다면 다행이다.
‘리오…….’
서차윤이 침음을 삼키며 백정을 쳐다봤다.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 세계의 ‘윤리오’가 얼마나 잔혹해졌는지 서차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라면 수틀리는 순간 자신을 죽여 버릴 거다.
‘안 되지, 안 돼.’
죽으면 그대로 끝.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친구의 딸이 간절히 바라던 것을 들어주고자 이곳에 온 것이지 않나?
‘죽을 수는 없어.’
서차윤이 백정의 옆에 앉아 있는 윤사해를 흘긋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냥 굶을래요.”
〖그러시든가.〗
랑야가 심드렁하게 말할 때였다.
툭.
무언가 서차윤의 앞에 던져졌다.
서차윤이 시선을 들어 자신의 앞에 던져진 것을 확인했다.
통조림캔이었다.
그가 두 눈을 빛내며 부자(父子)를 쳐다봤다가.
“뭘 봐?”
백정의 날선 목소리에 시선을 거두었다.
누가 던져 준 건지 모르겠지만 먹을 것을 얻었다.
서차윤은 활짝 웃으며 통조림 캔을 땄다.
〖무척 기뻐 보이는군.〗
“네!”
서차윤이 밝게 대답했다.
“무척 오랜만에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더욱이 이런 굶주림을 느껴본 것도 무척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서차윤은 그대로 통조림캔을 핥아 먹기 시작했다.
아예 손으로 퍼먹기도 했다.
〖숟가락 있는데.〗
열심히 손으로 통조림 캔을 퍼먹고 있던 서차윤이 울상을 지었다.
“그걸 이제 말해 주시면 어떻게 해요?!”
〖안 물어봤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 주셔야!”
〖시끄러.〗
서차윤이 불퉁하게 랑야를 쳐다봤다. 미지 영역의 거주자는 어쩌라는 듯이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친구에게 통조림 캔을 던져 준 윤사해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