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Come Back Home(3)
침묵이 흘렀다.
그것을 먼저 깬 건 단아였다.
“오랜만이네.”
차갑게 날 선 목소리.
나는 우물쭈물하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러게.”
단아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아니.”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잘 못 지냈어.”
단아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왜 잘 못 지냈을 것 같아?”
“글쎄…….”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모르는 척 대답을 얼버무렸다. 단아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건 그때였다.
“너 때문이야.”
단아가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세상 때문이기도 하고.”
저세상.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그 이름에 깨달았다.
단아와 도윤이는 저세상이 벌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어쨌거나 단아는 일그러진 얼굴로 계속해서 내뱉었다.
“나는 너희가 걱정돼서 잘 못 지냈다고.”
가슴을 지끈거리게 만드는 말을.
“학교에서 사라진 건, 그래.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나 같아도 그런 일을 겪으면 학교 따위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여겼을 테니까. 하지만!”
단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다고 연락 한 번은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그것도 아니면!”
목소리를 높였던 아이의 얼굴이 곧 일그러졌다.
이제 열아홉.
누군가는 다 컸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단아는 아직 아이였다.
“많이 힘들다고, 곁에 좀 있어 달라고! 그런 소리 한 번쯤은 해도 되는 거잖아!”
“단아야…….”
“그런데 왜 바보같이 혼자서 짊어지려고 해?!”
단아가 내 어깨를 밀치며 고함을 터트렸다.
“나도 있고 백도윤도 있는데! 한단예도 한단이도 있는데! 그런데 왜 바보같이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는 우리 앞에서 사라진 거냐고!”
파르르 입술을 떨다, 단아를 외면하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 일이니까. 너희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
“이 바보가!”
단아가 손을 들었다.
쫘악!
날카로운 파열음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의 뺨을 때릴 줄만 알았지, 내가 뺨을 맞다니.
놀란 얼굴로 단아를 쳐다봤다가 입을 다물었다.
“멍청아. 친구 좋다는 게 뭔데? 그 부담, 함께 짊어질 수 있어서 좋은 거잖아!”
호기롭게 내 뺨을 쳤으면서 단아는 울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연락 한 번은 해 줄 수 있던 거잖아!”
단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떤 심정으로 네 연락을 계속 기다렸는데! 분명 너랑 나랑은 친구인데, 왜 네 이야기를 TV를 통해서 들어야 해?!”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는 내게, 단아가 황급히 눈물을 닦아 내고는 말했다.
“약속해.”
단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두 번 다시는 말없이 잠적하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단아야…….”
“약속하라고, 윤리사!”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단아가 금방에라도 다시 눈물을 흘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에 다급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단아가 왜인지 모르게 분하다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이내 와락 나를 끌어안았다.
“이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삼!”
단아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그렇게 욕했다. 나는 가만히 흐느껴 우는 단아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훌쩍거리며 코를 훔치던 단아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눈가가 붉어진 친구를 향해 약속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번 정도는 집에 돌아올 거야.”
단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때마다 만나자.”
“응!”
언제 울었냐는 듯 단아가 밝게 웃는 얼굴로 당부했다.
“나중에 딴말하면 안 된다?!”
“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인 후 단아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
단아가 새끼손가락을 걸며 활짝 웃었다.
“좋아!”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만남을 뒤로했다.
물론, 그러기 전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꽤 오랫동안 빈집에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이매망량으로 돌아가기 전, 단아와 있었던 일을 정리하기 위해 들렀던 공원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다.
“……도윤아.”
“안녕, 리사야. 오랜만이야.”
도윤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한 건지, 왜 학교에 안 나온 건지, 이매망량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또 저세상은 어디에 있는지 등등.
“잘 지냈어?”
도윤이는 그런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고 담담하게 내 안부를 물었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다 희미하게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응, 잘 지냈지. 너는?”
“나도 잘 지냈어.”
도윤이가 싱긋 웃었다.
“사촌 동생도 잘 지내고 있어.”
“아, 이제 한 살이지?”
“응. 곧 걸을 거래. 엄청 귀여워! 사진 보여 줄까?”
“그래 주면 고맙지.”
도윤이가 웃는 낯으로 사진을 보여 줬다.
“제인 선생님을 많이 닮았네?”
“우리 아빠도 그랬어. 삼촌은 제인 누나 닮아서 다행이래.”
그럴 만도 했다.
안 그래도 딸인데, 백시진을 닮았어 봐.
나중에 원망 많이 받았을 거다.
“종종 보내 줄게.”
“정말? 고마워! 나도 귀여운 사진 많이 보내 줄게! 이매망량에 있던 마수 기억나?”
“금강호라고 했던가? 호랑이 형태의 마수!”
“맞아. 걔가 요새 작은 모습으로 자주 다니거든. 엄청 귀여워!”
“우와! 꼭 보내 줘!”
도윤이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싱긋 웃었다.
“좋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실없는 이야기에 나 역시 방긋 웃으며 대꾸해 줬다.
“그러게, 좋네.”
그 말을 끝으로 나와 도윤이 사이에는 한동안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도윤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실, 나. 리사 너한테 많이 실망했었어.”
물끄러미 도윤이를 쳐다보자, 그가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며 변명하듯 말했다.
“삼촌이 그랬거든. 저번에 TV에서 크게 난 은행 강도 일에서 리사를 만났었다고.”
그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그런 일을 겪어도 나랑 단아한테 아무 연락도 주지 않는 게…….”
도윤이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더니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리사. 너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 텐데.”
아니야. 나는 일부러 너희와의 연락을 끊어 버린 거야. 그러지 않으면 계속 일상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이기적으로 굴었어.’
목구멍 바깥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겨우 집어삼킨 후 입을 열었다.
“나야말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도윤아.”
도윤이가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단아와는 만났지?”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도윤이가 배시시 웃었다.
“단아와 약속했지? 매일은 아니더라도 연락하기로.”
고개를 끄덕이니 도윤이가 말했다.
“나한테도 그래 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도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불렀다.
“리사.”
“응, 도윤아.”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부담 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도윤이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위로에는 소질이 없지만, 그래도 묵묵히 들어 줄 자신은 있거든.”
우리 도윤이, 이제 거짓말도 할 줄 아는구나?
당장 내가 그 말로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는데, 위로에는 소질이 없다면서 너스레를 떨다니.
미소를 내보이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도윤아.”
“나야말로 고마워.”
돌아와 줘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윤이는 그 뒷말을 삼킨 것처럼 보였다.
“그럼, 이만 가 볼게. 사실 심부름 중이었거든.”
“나도 가 봐야 해.”
“집으로?”
묻는 말에 머뭇거리다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이매망량을 집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그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고 여겼건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내 집은 더 이상 이매망량이 아니다.
“이매망량에 갈 거야.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려고.”
“그때마다 단아랑 만나기로 했지?”
“맞아.”
우리 도윤이는 정말 똑똑하다니까?
“연락할게.”
“그래.”
도윤이가 손을 내밀었다.
“언제든지 연락해.”
나는 그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다고 안 받아 주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럼, 단아한테 말할 거야.”
“절대로 안 그래!”
도윤이가 빼액 소리 질렀다.
열아홉이 되었어도 단아가 많이 무섭나 보다.
나는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다음에 보자.”
“응, 꼭 보자. 그럼, 가 볼게.”
처음 내게 인사를 건넬 때와 똑같이 도윤이는 담담하게 다음을 이야기하며 떠났다.
나는 도윤이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다 몸을 돌렸다.
오랜만에 과거를 추억하며 일상을 이야기했다.
과거를 추억하는 일 따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자조적인 웃음이 절로 나왔다.